7.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
#7.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첫 풀코스 대회에 임했다. 한 차례 대회의 취소로 인해,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해를 넘겨 맞이한 첫 풀코스였다.
대회 참가만으로도 어찌나 기쁘고 설레였던지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태어나 언제 이렇게 긴장하고, 이 모든 순간들을 기념하고 싶었었나?‘ 좀처럼 이런 감흥이 기억이 나지 않을정도였다.
힘겹게 살다가 어머니의 노력으로 생애 첫 주택에 입주하던때? 대학에 합격했을때? 출가했을때? 첫 책을 출간했을때? 모든 행복한 순간들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 기억만 있지 그 생생함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런데 이 나이에? 스님이 되어서? 이런 설레임이라니, 너무 과분하게도 벅차올랐다. 완주가 아니라 참가만으로도 이런 기분인걸 보면 잘한 선택인가보다.
내 평생에, 내 능력밖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마라톤 완주를 이미 이룬 듯, 온통 그 순간을 기념할 생각만으로 출발선에 서 있다.
어떤 옷을 입을까, 카메라로 찍어야할까? 완주자체에 대한 이순간을 어떻게 남길지가 가장 중요 사안이었지, 각 킬로수마다의 속도나 급수대의 활용, 심박수를 어찌 유지해야 하는가 등의 레이스 과정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가장 지금과 다른 점이다. 나는 완주만 이뤄내고 증명하면 되는 자리였다.
달리기를 아주 잘하진 않더라도 경험이 쌓이면, 완주자체는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이제 과정을 어떻게 꾸미는가로 관심사항이 변하게 된다. 과정을 어떤 계획으로 채우고, 실행하느냐로 말이다.
완주에 과정이 녹아있고, 과정에 완주가 결정되지만, 그 당시 내 첫 풀코스의 시선은 완주에 있었다.
3월이라 출발시간이 9시여도 차가운 냉기가 서려있다. 입에서는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운 날씨인데, 그럼에도 다들 반팔, 반바지, 민소매 등 짧은 복장들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인파들이 참가해 있었는데, 평소 동네에서 연습때는 달리는 사람들을 보기가 어려웠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지 흥미로웠다.
처음 접하는 대회장의 분위기는 흡사 축제의 장이였다. 가족들이, 연인이, 친구들, 동료들이 함께 와서 즐기고 있고, 격력와 응원이 넘치는 곳이다.
우리 절집에서 이런 문화가 있었나 싶게, 다들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해 했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고, 달리는 시간을 수행의 시간으로 말하지 않던가. 그런 ‘장’에서 이렇게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니, 내 주변의 모습과 비교하며 아쉬움과 반성, 부러움이 동시에 일어난다.
사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법이라, 우리 안에 좋은 것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이런 생각들로 첫 마라톤의 감흥을 각인하고 있었다. 흥미로움이 번졌고, 기억을 쓰다듬다보니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 사실 내 시선은 경주마의 눈가리개처럼 좌우를 보지 못하고 일부분만 보고 있는 셈이다. 긴장해서 눈은 떴으되 인식수준은 바로 코앞의 길만 밟고 나아가고 있었다.
로버트 하우스 교수가 동기이론 중 하나인 기대이론에 근거하여, “목표이론”이라 칭하며, 목표를 달성하고 획득하기 위한 행동의 방향과 방법을 설명했다. 내 시선의 좁아진 느낌이 목표달성을 위한 흔들림없는 다짐의 자세, 방법이라기보다는 긴장으로 인한 시선의 좁아짐이었다. 긴장하면 근육이 굳고, 유연한 사고가 불가능한 것처럼 나에게 있어서 ‘오로지 완주’는 목표달성을 위한 능동적 다짐이라기 보다는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에, 모든 힘과 기능이 한 곳으로 쏠리는 본능적 전환으로 주변 상황에 대한 폭넓은 사고가 현저히 저하된 상태다.
출발 카운트 다운에 호흡이 가빠진다. 뛰지도 않았는데 이정도라니, 뛰게되면 심장이 폭발할지도 모르겠다. 출발 신호와 함께 사람들이 몰려나간다. 그 흐름에 휩쓸려 나도 밀려나갔다.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
‘후후파파’ ‘후후파파’
변명같은 초보러너의 외침과 거친 호흡만이 나를 구성하고 있는 유일한 요소인듯, 오로지 그것뿐이다. 우리가 좌선수행을 할때 호흡을 중요시 한다. 그 호흡은 고요해서 작용을 하지 않는듯 해야 하고, 그정도로 잔잔해져야한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수행자가 경계했던 그 거친 호흡으로 몰아쉬고 있다.
이래서 수행이 되겠나 싶을때, 호흡이 살짝 가벼워진다. 뭘 하지 않고 힘겨웠던 호흡을 참고 꾸준히 달렸을뿐인데 호흡이 가벼워진다. 이걸 러너들은 호흡이 트인다고 한다. 호흡이 트인상태로 달리기 위해 출발 전 웜업으로 러너들은 짧은 조깅과 질주를 하고나서 대회에 임한다.
호흡을 경기에 이용하는 지혜는 달리기의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수행자라면 호흡에 대한 자각이 조금 달라야 한다. 호흡이 사라져 내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삼매의 경우 뿐아니라, 거칠다 못해 몰아쉬는 호흡 순간에도 고요를 품고 있는 것을 알아차려야, 진정한 고요를 알게 된다. 단순히 거친호흡은 명상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제 한결 가벼워진 호흡을 통해 첫번째 반환점을 돌았다. 초반이라 주변을 느낄 여유도 있고, 달려가고,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러너들의 표정과 자세도 눈에 들어온다. 레이스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인데, 러너들의 패션과 경기를 위해 단련해온 모습들은, 다음 경기 레이스의 나를 계획하기도 한다.
‘나도 저렇게 멋지게 뛰어야지, 저 러너는 폼도 멋있고, 복장도 멋지다. 저 러너는 근육이 뛰기 위해 무지 애쓴 몸 같다’ 등등.
러너들이 어찌나 멋진지, 세상에 멋있는 사람들은 이곳에 다 있는것 같다. 그렇게 보면 우리 수행자들도 각각의 멋이 있다. 단순히 외형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그 분들의 성품과 행동거지, 앉아있는 태, 수행력이 녹아있는 음색 등 어린 시절 나는 그 분들의 모든걸 닮고 싶었다.
지금도 그 닮고 싶음이 마라톤 레이스에도 투영된다. 그 마음들이 나를 러너로, 수행자로 만들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어느새 레이스는 중반을 넘기고 서서히 힘에 겨워진다. 이젠 그 어떤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지경에 다다랐다. 다리가 천근만근이고, 호흡이 가쁘진 않은데, 숨쉬고 내딛는 모든 순간이 힘겹다. 호흡이 왜 가쁘지 않은가하면 현저히 느려졌기 때문인데, 이제부턴 호흡이 아니라, 몸의 기력을 전부 쥐어 짜내야하는 순간이다. 초보러너는 속도를 위해 나를 쥐어 짜내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기 위해 모든걸 쏟아내야한다는 말이다.
얼굴마저 오만상으로 찡그려가며 마지막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미 많은 러너들이 반환점을 돌아 마주치면서 뛰고 있었고, 서로를 바라보며 응원과 안쓰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힘이 들어 시야마저 희미한 상태였다. 그때, 눈이 번쩍 뜨이며, 아니지 귀가 먼저 반응했고, 그다음 눈에 확 들어오는 주자가 있었다. 그 분은 저 멀리서 부터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 마지막 반환점 돌았고, 곧 얼마있으면 들어갈거야!”
세상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핸드폰으로 전화 통화를 해가며 달리는 것이 아닌가. 나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바로 옆사람과 눈 인사조차 하지 못할 만큼 힘겹고, 짜증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레이스 말미에 저런 힘찬 모습이라니 말이다.
그 충격과 동시에 내 안에 일어난 깨우침은 나를 진정 반성케 했고, 마음가짐을 곧추세우게 했다. 우리는 수많은 스승들은 만나왔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얼마나 그 분들을 스승으로 대해왔고, 그 가르침들을 수용해서 스스로를 변하게 했던가.
돌이켜보면, 교만한 나를 변하게 했던건, 늘 남이 아닌, 내 스스로 감동을 받았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이 그랬다. 그 분의 나이와 기량을 보고, 직접적인 대화는 없었어도, 순간의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다.
피니쉬를 하고, 절뚝이며, 공원 안의 카페에 앉아 방금전의 깨달음을 복기한다. 다음을 위한 앞으로의 일상을 계획하고 있다. 매일이 담보되야, 대회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행이 연속적이어야 지혜가 현현한 것이다. 끊임없는 자세와 끊김없는 주시가 러너와 수행자의 가장 중요한 파워젤인 셈이다. 이제 한동안은 달라질 것이다. 내 자세와 신발끈을 조여매게 해준, 그 선지자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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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글은 여기까지 올립니다.
이제 책이 나오면 많이 사서 읽어주세요^^
오늘 계약했습니다.
내년 3월에서 4월 출간이 목표입니다.
에세이는 처음이라 부족한 문장력을 정성으로 커버할 수 있을지ㅎ 그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