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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문을 여는 힘, '메모력'

메모력은 메모를 실행하는 힘이다

by 달공원

“조지와싱턴 브릿지를 건너자 처음 마주한 지역이 할렘이었다. 술과 마약에 취한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 모습들과 잠시 신호등에 차가 멈추기만 하면 어디선가 몰려드는 홈리스들. 지저분한 윈도우 브러쉬를 들고 차 유리창을 닦겠다며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윈도우 브러쉬를 켜거나 차를 조금 움직이기라도 할라치면 바로 튀어나오는 욕설 세례와 어김없이 내보이는 가운데 손가락…… 어둠이 내린 뉴욕에서 길을 잃고 잘못 들어선 할렘의 막다른 골목에서 드럼통의 불을 쬐고 있는 한 무리의 흑인들을 마주해야 했다. 길은 ONE WAY라 더 이상의 직진이 불가능한 곳이었고, 어둠 속에 우리를 바라보는 20여 개의 눈동자와 이글거리는 장작의 불꽃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은 물끄러미 우릴 노려보고 있었고, 그들과 마주하고 있던 순간 먹먹해진 머리와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미처 느낄 틈도 없었다. (중략)”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의 일이다. 병역 의무를 막 끝낸 20대 중반을 바라보던 나는 근자감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복학도 포기하고 영어 공부에 매달린 지 1년, 어렵사리 미국 유학의 첫발을 내디딘 곳은 샌프란시스코였다. 약 6개월간의 서부 생활을 마치고, 동부로 학교를 옮기면서 형과 둘이서 자동차로 대륙횡단에 도전했다. 그리고 이 글은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이동하던 차 안에서 틈틈이 끄적거렸던 11일간의 대장정을 기록한 색 바랜 메모지 내용의 일부다.


구덕 다리 포드 자동차의 뒤에, 또 위에 트레일러와 캐리어를 달아 얼마되지도 않는 살림살이를 빽빽이 싣고 뉴욕을 향해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태평양을 바라보며 출발하여 산맥과 사막, 강과 대평원을 거친 후 마침내 대서양에 이르기까지 총 4,500 여마일 (7,242 km)에 이르는 길이었다. 네바다 사막의 열기에 고무호스가 녹아내리고, 엎친데 덮친다고 탈수증에 의한 탈진으로 문턱을 오락가락 하기도 했고, 씨에라 산맥에서는 가파른 경사에 무거운 짐과 사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스 링이 부서져 버려 어려움을 겪었다. 또 와이오밍의 어느 대평원에서는 자동차 타이어 펑크 사고로 한동안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의 연속이었다. 열흘 남짓한 대륙횡단 기간 동안 5kg의 체중을 토해낼 정도로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으니까 말이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도착한 뉴욕의 모습은 숨이 막힐 듯한 거대함과 웅장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길을 잃고 들어선 할렘의 막다른 골목 전경은 나의 뇌리 속에 강렬하게 각인을 남겼다. 이젠 꽤 시간이 흘러서인지 그때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지금도 당시의 메모를 보면 긴박했던 순간들이 또렷하게 되살아 나곤 한다. 어쩌면 이런 것이 바로 메모의 힘이 아닐까?



‘메모’란 ‘잊지 않기 위해서나 남에게 전하기 위해서 간략하게 요점만 글로 적음’


이다. 그리고 ‘메모력’이란 ‘그런 메모를 실행하는 힘’이다.


며칠 전 책장 깊숙한 곳을 살피다 한 무더기의 수첩들을 발견하고는 책상 위에 가지런히 세워 보았다. 커버에 쓰인 다양한 년도만큼이나 그 내용도 실로 다종 다양했다. 평소 메모가 습관화되어서인지 1년에 사용하는 수첩이 보통 3권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수첩들은 현재 회사에서의 약 10여 년을 기록한 내 치열한 삶의 흔적들인 셈이다. 어차피 년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이미 지난 년도의 수첩을 주변에서 틈틈이 끌어모아 사용한다. 회사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개인적인 일상과 생각이 들어 있는 경우도 상당하다. 또 게 중에는 특별한 주제나 목적을 위해 사용한 수첩도 있다. 나의 정성과 손때가 묻어서인지 쉽게 버리지 못하고 보관했던 게 현실에서도 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메모하며 산 증거들인 듯하여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하긴 하다.


매일 아침, 내 업무는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수첩에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중에는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일도 있고, 오늘 새롭게 시작하는 일도 있다. 또한 오늘 중으로 반드시 마쳐야 할 일도 있고, 정해진 기한 내에 끝을 내야 하는 일이나 중장기 계획하에 차근차근 진행해야 하는 일도 있다. 아침마다 이런 항목들을 정리하는 데는 보통 약 10~15 분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회사 업무가 대부분이지만, 독서나 운동, 글쓰기 같은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기도 한다. 아! 최근에 추가한 Having List도 있다. 하루 일과를 마감할 때면 아침에 계획했던 일들이 잘 처리가 되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한다. 이렇게 하면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하더라도 빠뜨리지 않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억의 부담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있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점점 떨어지는 기억력 보완 차원에서도 적극 권장할 만하다. 완료한 항목을 리스트에서 지워나갈 때 느끼는 성취감은 보너스다. 이처럼 메모를 활용하면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면서 깔끔한 마무리까지 모두 살릴 수 있다.


보통 어떤 사건이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면 그 감흥은 몇 배로 오래간다. 글을 쓰면서 당시 상황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으로서 또 제삼자 적 입장에서 미묘한 심리 변화와 미처 챙기지 못했던 주변 환경까지도 다시 한번 살펴보면, 또 다른 기록과 도전을 위한 디딤돌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활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성공이나 실패담, 각종 경험을 메모나 일기로 간단히 정리해 보라. 점과 점이 연결되어 하나의 선이 되듯 이어짐이 느껴질 것이다. 이 선과 또 다른 선이 연결되면 면이 되고, 또 면과 면이 이어지면 입체적으로 내 삶이 그려져 더 풍성함을 느낄 수 있다.


카이사르, 다빈치, 이순신, 정약용, 에디슨, 뉴턴, 링컨, 잭 웰치, 류비세프, 박정희, 김대중, 이병철...

역사상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메모광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메모력은 성공의 문을 여는 힘이라 할 만하다.


오늘 아침, ‘탁월한 머리보다 무딘 연필이 앞선다’는 격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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