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 성장 분투기 5 - 전문 투자자란 어떤 힘의 소유자일까?
주린이로서 좌충우돌하며 성장해 나가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남겼던 게 어느새 반년이 훌쩍 넘어섰다. 직장인으로서의 주 업무 때문에 바쁘기도 했지만, 솔직이 주식시장 자체에 대한 회의감과 체력적인 부담이 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딸이 잘 쓰는 ‘토할 것 같았다’가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 빠른 결과를 좇던 조급함은 좋은 성과 대신에 다크서클을 나에게 선사했고, 내가 받아 든 성적표 또한 낙제점을 벗어나질 못했다. 이러다간 이도 저도 모두 ‘폭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한동안 주식이란 존재 자체를 잊고 살고자 했다. 주식 관련 책 읽기, 관련 글쓰기도 자연스럽게 멈춰 섰다. 물론 어쩌다 주가나 이익률 변동 추이를 살펴보거나, 아주 간간이 매도 또는 매수 버튼을 누르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의도적으로 머릿속에서 지우고자 노력했다. 주식창을 열어보지도 않고, 그냥 잠자리에 직행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참고로 나는 서학개미다)
그런데 그 시도가 도리어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왔다. 마치 금단 현상 같은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자 몸도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게다가 수개월 전 마지막으로 매수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주식이 상한가를 쳐 한결 나아진 중간결과까지 받아 들게 되었다. "이럴수가....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ㅎㅎ!!" 비록 현재진행형이고, 속살을 들여다보면 제삼자가 보기에 별 볼 일 없는 결과치로 평가절하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체 악몽 같았던 시작에다 그 손실을 극복하는 과정이 너무도 치열하고 고단했기에 나에겐 충분히 의미가 깊다. 이 모든 과정이 주린이가 겪어야 할 성장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치열한 성장통을 겪으며 내가 얻게 된 것들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둔감력
첫 번째는, 이제는 시장이나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고, 조금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주식 시장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처럼 매일 밤마다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주가 그래프를 바라보며 조급해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은 매일 밤마다 주식창을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어떤 때는 수일, 수주 동안 아예 잊고 사는 때도 허다하다. 어차피 하루 이틀하고 관둘 것도 아니고, 장기전을 위해서는 약간의 둔감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와타나베 준이치의 역발상으로 만들어진 책 ‘둔감력’에서 등장하는 ‘항상 야단맞았던 명의’라는 글에는 ‘지혜로운 둔감함’이란 표현이 있다. 그가 정의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에는 재능의 바탕에 반드시 좋은 의미의 둔감력이 있다.
“때론 둔감함이 자신의 본래 재능을 더 크게 키우고, 자신의 능력과 힘을 널리
퍼뜨리는 최대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분명 관심을 갖고 항시 주시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현명함이 필요한 곳이 바로 주식시장이 아닐까? 덜 중요한 사항에 둔감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하는 능력은 뛰어난 재능 임이 분명하다.
‘당신이 투자가 재미있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돈을 전혀 벌지 못할 것이다. 좋은 투자는 굉장히 지루하기
때문이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말한 주식 시장의 격언을 새삼 대뇌이게 된다.
그래도 관심을 완전히 꺼지는 않는다. 매일 두 종류의 경제신문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이유기도 하다. 요즘 내가 주의 깊게 주식창을 들여다볼 때는 조정장이나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다. 간간이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순발력 있게 행동해서 목표물을 낚아챌 수 있으려면 깨어 있어야 한다. 실행력, 학습력, 분석력, 발견력, 상상력과 같은 앞서의 글에서 열거했던 여러 능력들과 둔감력 이외에 판단력, 결단력, 순발력, 행동력 등이 총체적으로 발휘된다면 훨씬 더 나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까?
균형력
두 번째는, 주식 종목 선택과 배분에 있어서 개인적인 기준이 좀 더 명확해졌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소문이나 뉴스, 누군가의 말에 따라 너무 쉽게 매수, 매도를 반복했다면 이제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한결 무뎌졌다. 그래도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당신의 돈은 절대 5배, 혹은 10배, 20배로 불어날 수 없다”는 랄프 오웬의 명언을 좇아 가능한 주식 시장에 발을 빼지 않고 사업 투자자의 관점에서 길게 호흡하며 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의 주식 선택은 초우량 배당성장주와 인덱스 투자, 그리고 현금(채권) 비율 10~20% 유지라는 세 가지 기준을 최대한 철저히 지키려 애쓰는 중이다. 우선 마치 슈퍼마켓 진열장을 방불케 하던 보유 종목을 대폭 조정했다. 기존 보유 종목의 1/2 내지 1/3 수준까지 수를 줄여,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분야의 핵심 주식 5~10 종목(Ticker) 선에서 계좌별로 조정을 단행했다. 스타일상 장투를 기본으로 하고, 매수와 매도 시점에 대한 나름의 기준도 확실히 세웠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 그리고 균형 유지가 핵심 키워드다. 단, 워낙에 변수가 많은 곳이다 보니 어차피 내가 세운 계획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은 잘 인지하고 있다. 혹시 발생할지 모를 급격한 변동성에 대한 마음 다지기인 셈이다.
“만약 당신이 무엇을 좀 아는 투자자여서 기업이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있고, 장기적인 경쟁적 우위를 지닌 동시에 주가가 적절한 기업을 다섯 개에서 열 개쯤 찾아낼 수 있다면 전통적인 분산투자 기법은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이는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의 말이다.
버핏은 한해 고수익률을 올려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저평가된 적절한 수의 종목을 장기 보유함으로써 세계적인 부자이자 구루가 되었다. 변화무쌍한 주식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오르는 주식을 사고 싶고, 흘러 다니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하루하루 주가 등락에 신경을 쓰는 인간의 본성을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본다. 삶이 기니까 천천히 하라는, 그러면 그 끝에 꿈의 낙원이 가득할 거라는 BTS의 노래 가사처럼, 투자의 긴 여정 끝에 있을 낙원을 믿자. 자신의 호흡과 페이스에 맞게 때론 달리기도 하고, 때론 멈춰 서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낙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내 기준이 사시나무처럼 가차 없이 흔들릴 때가 온다면 "악수를 두지 않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체스 세계 챔피언의 아래 답변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가만 있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