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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Oct 24. 2021

길(street)에서 길(way)을 찾다

메라비언의 법칙

미국 뉴욕시의 어느 도로 모습이다. 평소 같으면 오고 가는 자동차들로 가득 차있을 거리가 가판대와 트럭, 그리고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다. 뉴욕의 명물인 ‘STREET FAIR’라고 불리는 난장의 모습이 딱 이렇다.


‘STREET FAIR’는 주말마다 자동차가 다니던 대로를 막아놓고 여는 일종의 임시시장이다. 이동 트럭이나 가판대에는 다종다양한 국적의 음식과 특이한 제품들이 등장하고, 라이브 공연에 신나는 음악이 더해진 요란한 축제가 한바탕 벌어진다. 엄청난 수의 뉴요커와 관광객들이 길거리에 몰려나와 도심 한복판에서 시끌벅적하게 벌어지는 축제를 즐긴다.


1991년 여름 어느 날, STREET FAIR에서 한 동양계 청년이 중년 백인 부부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 영어가 영 시원찮다. 발음이나 문법은 엉망진창이고, 쓰는 단어도 기본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기본 단어 몇 개를 어순 무시하고 억지로 어겨 붙여 설명을 이어 가는데도 본토 미국인과 대화가 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엥~! 그런데 그 짧디 짧은 영어로 용케 가죽 지갑 하나와 휴대용 포켓주머니 하나를 팔아 낸다. 그것 참 용하다! 잠시 더 지켜보았더니, 이 친구, 손짓 발짓에 얼굴 표정까지, 그야말로 온 몸을 총동원해서 설명을 하며 물건을 팔고 있다. 이 청년이 바로 20대 중반 시절의 내 모습이다. 




지지부진하던 나의 토크 열정이 다시 시동을 걸게 된 건 미국 유학 기간 때였다. 군대 제대 후 복학도 포기하고 도전한 미국 유학, 설레임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는 새발의 피였다.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이 대학 내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공개적으로 바보 취급을 당하고, 말 한마디 못하고 눈을 피하거나 실실 웃기만 하는 멍청이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치열하게 생존 영어를 익혀야 했다. 솔직이 그땐 영어로 듣고 말하는 게 무서웠다. 길에서도, 학교에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두려웠다. 이런 주제에 토크라니…… 한국어로도 의문 부호가 붙은 토크 능력인 주제에 감히 영어로? 하, 이건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허접한 수준이었던 내 영어 토크 실력이 좀 나아진 이유가 바로 길(street)에서 길(way)을 찾았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주말이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문광고를 보고 찾았던 Village (빌리지)의 작은 가죽제품 가게에서 내 첫 역할은 세일즈 보조였다. 유명한 관광지라 주말이면 늦은 밤까지 흥청대는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었다. 방문자의 대부분이 관광객인 외국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다는 것, 그것도 어쭙잖은 영어 토크 실력으로? 그것은 엄청난 도전이자 색다른 경험이었다. 찰나에 방문 고객의 얼굴 표정이나 시선, 그리고 순간의 몸짓 움직임을 보고, 이 고객이 물건을 살 생각이 있는지 여부를 재빨리 판단해야 했다. 때론 분위기를 봐가며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과감하게 디스카운트를 외쳤다. “OK~ok. How much?”  이러면 나가려던 고객 중 십중팔구는 발걸음을 멈춰 섰다. 물건 하나를 놓고 벌이는 고객과의 밀당은 재미있는 게임 같은 것이었다. 결국 작은 가죽 동전 지갑 하나라도 손에 쥐어 내보냈을 때의 성취감이란…… !! 



내가 일하던 가게도 주말이면 ‘STREET FAIR’에 참가하곤 했다. ‘STREET FAIR’에서의 영어 토크 구사 포인트는 눈치와 순발력이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객이야 그래도 약간은 관심이 있어서라지만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누가 누군지 도통 알 도리가 없다. 이 사람이 고객인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전수받은 노하우가 바로 눈 맞추기 전략이다. 일단 지나가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하면 무조건 반갑게 인사부터 한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듯이 말이다. 여기에 과장된 제스처와 해맑은 (해맑은 척하는?) 웃음은 필살기다. 

“Hey man, what’s up!” 

“Hey, long time no see!” "What's going on?" 

"Hey, good to see you man!' (언제 봤다고... 하이파이브까지 한다) 


또 좀 젊잖은 중년의 신사나 숙녀를 보면, 무조건 칭찬부터 하고 본다. 

“How are you doing, sir?”, “Nice hat~” “Hey, you look great~!” 

"Beautiful shirts~ madam!"


 적어도 눈인사라도 한번 나눈 사람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원래 사람 심리가 그렇지 않은가? 체면치레 괜스레 눈빛을 진열대 쪽으로 한번 돌리거나 물건을 뒤적이기도 한다. 여기까지만 가면 일단 30%는 성공이다. 그러면 이런저런 얘길 둘러 대어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고, 혹시 관심이 있을만한 제품이 있는지 넌지시 떠보기도 하고 권해도 보고 그러는 것이다. 현금박치기가 대부분이므로 할인을 대폭 해주더라도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사방이 뚫려 있는 상황이라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고객’이 되어버린다. 



길거리에서 손짓, 발짓에다 온갖 몸짓 언어를 총동원해서 물건을 파는 모습, 또 매장 안에서 방문 고객의 얼굴 표정이나 시선, 그리고 순간의 몸짓 움직임을 보고 판단을 내리는 행동. 이 행동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맞다. 바로 '비언어적 표현'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아르바이트 체험을 통해 비언어적 표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행동의 소리가 말의 소리보다 크다”는 '메라비언의 법칙'이 자리하고 있다. 


메라비언의 법칙은 1971년 캘리포니아 대학 UCLA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앨버트 메라비언이 커뮤니케이션이론을 한 단계 발전시켜 주창한 법칙이다. 커뮤니케이션의 3대 요소는 시각(몸짓) 55%, 청각(음색, 목소리, 억양) 38%, 언어(내용) 7%라는 비율로 이루어진다. 즉, 이는 대화 시 언어적 표현으로 7%의 전달력이 있는데 반해, 비언어적 요소가 나머지 93%를 차지한다는 의미다. 상대방의 인상이나 호감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목소리는 38%, 보디랭귀지는 55% (표정 35%, 태도 20%)의 영향을 미쳤다. 또한 전화 상담 시에는 말하는 내용이 7%인 반면 목소리의 중요성이 82%로 상승함을 보여 주었다.


나의 행동에 본능적으로 ‘S.O.F.T.E.N 기법’이라 명명된 설득의 법칙에 골고루 등장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S.O.F.T.E.N 기법’의 ‘S’는 미소와 웃음(SMILE)이다. 고급스런 토크 한마디 보다 환한 미소와 따뜻한 웃음이 더 강력하다는 뜻이다. ‘O’는 열린 몸짓(OPEN Gesture)이며, ‘F’는 앞으로 기울이기(Forward leaning)이다. 이는 상대의 토크에 관심이 있다는 의미로 몸을 열고, 약간 앞으로 기울인 상태에서 듣는 것을 의미한다. ‘E’는 눈길 나누기(Eye contact)다. 대화할 땐 상대의 눈을 보며 토크를 하며, 끄덕이기(Nodding)인 ‘N’은 상대방에게 동의의 의미를 전하는 것이다. 결국 ‘SOFTEN하게 말하라’는 토크의 내용보다 토크하는 자세에 더 신경을 쓰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차피 길게 말하지도 못하는 영어 구사 능력이었다. 몇 마디 단어와 짧은 문장, 그리고 다소 과한 미소와 바디랭귀지가 당시 내가 가진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간절해서 그랬는지 그게 통하더라. 그때 한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몸짓 언어는 만국공통어라는 사실을. 그때 내가 판 것은 나의 시간과 온몸으로 표현한 노력이었고, 그로 인해 내가 얻은 것은 소중한 경험과 무대뽀 자신감이었다. 간결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짧은 구절 위주의 영어를 구사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 것은 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핵심이 무엇일까? 그것은 보디랭귀지와 목소리, 그리고 토크의 내용이 조화를 이룰 때, 설득력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설령 그게 한국어나 영어, 또 다른 언어라고 하더라도 동일하다. 토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문법이나 발음, 고급 단어가 아니라 소통이다. 나를 무섭게 하고, 쪽팔리게 만들고, 화나게 했던 영어 토크. 나는 몸짓 언어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영어 토크를 잘 하려면 약간의 무대뽀 자신감과 뻔뻔함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건 나에게 유레카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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