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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Dec 23. 2023

슈퍼 을이 뭐길래

최근 기사거리에 자주 등장한 ASML은 네덜란드의 반도체장비 생산업체다.

윤대통령이 네덜란드를 방문하며 내세운 대의명분은 ‘세계 반도체 동맹’이었다. 세계적인 종합반도체 회사(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로 인정받는 삼성의 이재용, SK의 최태원 회장까지 대동하여 양측의 구색을 맞추고자 했다. 협력을 넘어 동맹 차원까지 끌어올렸다는 홍보는 나름 거창했지만 결과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차차 알게 될 일이다.


ASML은 세계 최대 노광장비 제조사로, 특히 7mm 이하 미세공정에 사용되는 EUV 장비를 제작할 수 있는 세계 유일 업체로 알려져 있다. 대당 가격이 2~3천억 원에 이르는 초고가 장비이지만 연간 생산량은 50대 수준에 불과하다. 생산량은 적은데, 대기 물량은 차고 넘치다 보니 그 영향력은 가히 상상불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난다 긴다 하는 슈퍼 갑들도 찍소리 못하고 대기 순번 들고 갑갑해할 뿐이다. ASML이 '슈퍼 을 기업'의 대명사로 통하는 이유다.


물론 한계도 있어 보인다. 장비 가격이 원체 다 보니 구입 능력이 되는 업체가 제한적이다.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몇몇 유력 업체나 해당업체가 있는 특정국가에 매출이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신규공장 증설이나 제품 교체 시점 등과 같이 반도체 산업의 업황에 따라 매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중 갈등 상황도 큰 변수다. 최근에는 미국 발 최신 EUV의 중국 수출 금지의 여파로, 중국의 화웨이가 범 국가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노광장비를 직접 생산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여기에는  ASML의 중국계 직원이 기밀자료를 유출하는 등, 치열한 스파이전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슈퍼 을이 되고 싶은 이는 많겠지먄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 비록 분야나 방식, 규모에서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본질은 유사하지 않을까? 만약 내가 슈퍼 을의 위치를 지향한다면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지 한번 생각해 보았다.


첫째, 역시 독보적인 기술력일 것이다.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는 그 한계 또한 분명하다. 결국 가격으로 승부하는 치킨게임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레드오션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피 튀기는 진흙탕 싸움을 벌여야만 한다. 그러므로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탄탄한 기술력은 슈퍼 을의 필수조건이라 할 것이다. 지속적인 R&D를 통해 차별화된 기술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둘째, 시장을 장악하는 독점력이다.

그런 아이템이 있다. 대기업이 판을 펼치기엔 시장 규모가 너무 작고, 그렇다고 규모가 작은 기업이 뛰어들려면 나름의 기술력과 경험이 받쳐줘야 가능한 그런 아이템. 이른바 니치마켓이라 불리는 시장이다. 비록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니치마켓이라도 그 분야에서 독점적인 시장 장악력을 갖추고 있다면 슈퍼 을이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물론 압도적인 스케일이거나 물량공세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시장을 독점하는 기업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슈퍼 을이라기보다 차라리 슈퍼 갑이란 호칭이 어울리지 않을까?


셋째, 확장력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두 가지 포인트가 떠오른다. 먼저, 제품이 사용되는 분야다. 새로운 프로세스나 적용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을 찾아 연계시킬 수 있다면 확장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또한 협업이나 M&A 등을 통해 제품 구성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방법도 슈퍼 을에 가까워지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넷째, 역시 조화력이다.

살짝 옆길로 빠져서 갑과 을의 본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오행에서 갑을은 나무다. 곧게 하늘로 솟은 나무도 있지만, 옆으로 뻗는 넝쿨 나무도 있다. 마찬가지로 갑기업과 을기업은 겉으로는 대칭 관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한데 어울렸을 때 더 조화롭고 아름다운 법이다.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나만 잘났다고 기고만장하면 종국에는 파국에 이른다. 갑과의 상생과 협력을 잘 하는 을기업이 결국 슈퍼 을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을 품고 있다.


기업이던, 제품이던, 사람이던 탁월한 경쟁력을 갖춘 슈퍼 을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슈퍼 갑으로 등극할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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