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리고 반드시 끝이 나는 때가 온다.’
매일 나의 아침을 여는 인터넷의 바다에서 빼놓지 않고 들리는 포구 중 하나에 스포츠가 있다.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선호하는 국내외 팀과 선수들의 멋들어진 활약상은 활기찬 아침에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대한민국 출신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소식은 이유 없는 뿌듯함으로 이어진다. 그렇잖아도 그들 양 어깨에 걸쳐진 ‘대표’라는 적잖은 무게에 나까지 짐을 보태고 싶진 않지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동질성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9월,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컵스의 한 선수는 대한민국 국민의 공적이 되었다. 2015년 한국 야구의 자존심이자 자긍심의 한 축으로 급부상했던 피처버그 파이러츠의 강정호 선수를 시즌 아웃시킨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선수가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허슬플레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상도 경기의 일부다. 하나 이유나 과정이 어찌 되었던 결과론적으로 그는 강정호의 맹활약에 열광하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되었고, 더불어 ‘MOST WANTED’로 이름을 올렸다.
사실 사람의 운명을 누가 어찌 알겠는가? ‘인생사 새옹지마’란 어귀가 스포츠의 세계에서 흔하디 흔한 현실어인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LA 다저스에서 2년간 우리에게 기쁨을 전해주던 류현진 선수가 어깨 수술과 함께 작년 한 해를 통째로 재활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이적 후 한창 주가를 올리던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가 부상으로 한 템포 쉬어가는 사이 펄펄 날아다니는 경쟁 선수 덕분에 복귀 후에도 후반 교체 멤버로 전락한 상황도 그렇다. 물론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것이고, 언제고 실력 발휘를 통해 자기 자리를 되찾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뭐 굳이 몇몇의 예만 놓고 예민하게 굴 필요는 없을 듯하다. 스포츠에서 부상이나 슬럼프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참 잘 나간다 싶을 때 전혀 뜻하지 않은 일로 낙마하는 상황이 그리 낯설지가 않다.
지난 시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 선수였다. 시즌 초반 바닥을 기는 성적으로 ‘역대급 먹튀’ 소리를 들어야 했던 그는 후반기 들어 ‘역대급 성적을 올린 선수’로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지구 우승에 기여함을 물론이고 ‘이달의 선수상’까지 받는 등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이 된 그다. 그야말로 극과 극, 반전 인생이다. 이런 결과가 나올지 누가 예측이나 했을까? ‘열심히만 하면 잘 된다’면야 그래도 골치가 좀 덜 아프겠지만 어디서든 예측하지 못한 또 다른 변수들이 항시 존재하는 법이다.
“올 시즌을 치르며 개인적으로 인생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그게 전부가 아니듯, 아무리 나쁜 일이 생겼다고 해도 그 또한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추신수 선수의 이 말은 울림이 크다. 짧은 시간 동안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절절하게 느꼈던 소회를 가감 없이 전하기 때문이다. 그가 겪었을 몸과 마음의 고뇌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기에 기꺼이, 묵묵히 그러나 든든히 그를 지켜보고 응원하는 팬이 되었다.
이처럼 스포츠 선수들의 롤러코스터 같은 여정은 ‘인생사 새옹지마’의 본보기이다. 여러모로 ‘스포츠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은 충분히 공감이 된다. 때로는 부상이나 슬럼프의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다. 나만 외톨이로 남겨졌다는 낙오자의 마음이 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몸값이 꽤 나가는 스타플레이어라면 전방위로 쏟아지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흔히 우리네 삶에서 고통의 시기에 빗대 ‘터널’을 언급하곤 한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고난과 고통의 시간…… 한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터널 속에서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땐 어떤 온도의 위로도 위로로 들리지 않는 법이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현실에서 무작정 때를 기다리며 버티기를 계속해야 하는 인고의 시간. 아마 누구나 인생에서 이와 유사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던 암울한 현실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라는 속담처럼 견디면 어떤 식으로 든 결론이 나게 되는 날이 온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터널 속 암흑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다음 진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금 무진장 힘들어도 참아내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가다듬어야 하는 이유이다.
명(明)과 암(暗), 또 다른 터널(暗)을 맞이할지 아니면 새로운 기회(明)를 얻을지는 지금의 터널 속에서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암흑의 터널 속을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