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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Dec 14. 2015

무대뽀는 집요함이다

‘넘버3’의 송강호


“옛날에 최영의라는 분이 계셨어. 최영의….. 그분 스타일이 그래. 딱! 소 앞에 서. 너 소냐? 나 최영의야! 그러고 소뿔을 딱!잡아. 그리고 ㅋㅋㅋ 내려치는 거야. ㅋㅋㅋ! 황소 뿔 뽀개질 때까지! 코쟁이랑 맞짱 뜰 때도 마찬가지야. 존슨이면 너 존슨? 로버트 존슨? 그리고 걸어가. 뚜벅뚜벅. 그럼 코쟁이는 갑자기 걸어오니깐 뭐, 뭐, 뭐야, C8! 하고 뒤로 물러서게 되어 있어. 그러다 팍! 이봐봐봐! 사람이 당황하면 손이 올라오게 되어 있어! 이때 팔을 딱! 잡고! 아이, C8!  이, 이건 니 팔 아냐?  
그리고 또 ㅋㅋㅋ 내려치는 거야. ㅋㅋㅋ! 손이 빠개질 때까지!
무대뽀! 무대뽀 정신!”



무대뽀 정신!

대한민국 무대뽀의 대명사 하면 단연 ‘넘버3’의 송강호가 꼽힌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송강호가 ‘넘버3’라는 영화에서 연기했던 불사파 두목 조필덕이다. 조필덕이 잔뜩 무게를 잡고 부하들을 가르치는 이 대목은 무식하고 폭력적이지만 뭔지 모를 유쾌함이 베어 있다. 영화에 등장했던 이 대사는 다양한 버전으로 패러디 되어 오랜 시간 우리 곁에 회자되는 등 꽤나 유명세를 탔다


당시 국제기금통화(IMF)의 구제금융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격동에 휘말려 고통 받던 상황에서 이 무대뽀 정신은 어렵던 한 시대를 돌파하는 시대정신으로까지 격상되었다. IMF 위기마저도 무대뽀 정신, 헝그리 정신으로 깨부수고 싶었던 대중들의 절절한 마음이 송강호라는 배우의 감칠맛 나는 연기와 대사를 통해 대변되었던 것은 아닐까? 무대뽀 정신의 송강호, 그는 IMF가 탄생시킨 최고의 스타였다.




IMF가 벌어졌던 당시, 난 모 케이블 방송국에서 컴퓨터 그래픽팀 팀장으로 일을 하던 중이었다. 경제 상황이 점점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많은 기업과 은행들이 강제로 구조조정을 당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피가 마를 듯한 고통스런 나날들이 계속되었고, 눈물 젖은 애틋한 사연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러던 어느 날. 경영진의 긴급 지시사항이 하달되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새로운 방송물 제작을 일체 중지하니 각 부서 담당자들은 참조 바랍니다.”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냥 죽은 듯이 있으라 한다. 정규방송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기제작물을 반복적으로 돌려 메운다고 했다. 그리곤 갑자기 들여놓은 몇 대의 탁구대에서 전임직원이 참가하는 생뚱맞은 탁구대회가 열렸다. 탁구 열풍이 꽤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서간, 개인간 경쟁심리까지 생겨 틈틈이 하는 집중 연습은 물론이고, 개인 레슨을 받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을 정도로 그 열기는 사뭇 뜨거웠다.


그렇게 직원들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놓고 경제 흐름을 냉철히 주시하고 있던 최고경영진은 어느 시점이 되자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구조조정이었다. 부서장으로부터 감원조치 결정과 각 팀 별 할당인원을 전해 듣고 나오는 나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드디어 올게 왔구나…… 몇 년간 함께 동고동락하던 내 팀원들인데…… 날 믿고 따라와 주던 이 친구들을 내 손으로 내보내야 하다니…… 밖은 아직 저리도 추운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떠날 이와 남을 이가 결정되고, 눈물의 면담까지 마치고 나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미안하다…… 그리고 그동안 수고했다……” 우린 넘버3 송강호의 무대뽀 대사를 안주 삼아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불운한 시대를 원망하고 좋은 날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면서……


그러고서도 한참 동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깨지고 부딪치며 고통에 신음했지만 우리들은 무대뽀 정신으로 한데 뭉쳤다. 그리곤 마침내 새로운 미래의 시작을 세계 만방에 알렸다.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 불굴의 무대뽀 정신이 바탕이 된 집요함이 이루어 낸 결과였다. 물론 그 과정에는 수많은 대한민국의 가장들과 선후배, 동료들의 피눈물과 희생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정해놓은 각본처럼 등장했던 ‘넘버3’라는 영화와 ‘무대뽀 정신’을 외치는 대사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넘버3’의 불사파 두목은 무식하고 폭력적이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요함을 트레이드 마크처럼 내세웠다. 목표한 바를 이룰때까지 거침없이 몰아치는 그 집요함. 그에겐 바로 그 집요함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었고 세상을 사는 진리였던 것이다. 이 불사파 두목역을 연기한 송강호는 한 시대를 관통한 배역 선택과 출중한 연기덕에 대종상 신인남우상과 청룡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송강호가 걸어 왔던 배우의 길도 어쩌면 무대뽀스럽다고 할 정도로 우직하고 고집스럽다. 배우의 꿈을 품고 무대 막일부터 시작하여 주인공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집요함 그 자체다. 그의 연기생활 제 1계명이 “나태와 타협하지 말라”란다. “능력이 안되면 어쩔 수 없지만, 게을러서 제 몫을 못하는 건 참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다른 욕심은 없어도 자신의 연기에, 그리고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욕심만큼은 집요할 정도라고 한다. 아마 그 집요함이 그의 연기와 캐릭터에 생명력을 더하여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은 아닐까?  


시대를 관통하는 힘이자 진리인 무대뽀 정신, 그것은 집요함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렇다. 

무대뽀는 집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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