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 관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공원 Jul 28. 2016

처음으로 커피 로스팅하던 날...

우리집 부엌은 폭탄을 맞았다

집에서 손수 커피 로스팅을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수년전 개인적인 관심과 인연으로 재야의 고수(?)로부터 사사 받은 아내 덕분에 맛깔 난 커피를 마음껏 즐기던 중이었다. 더불어 귀동냥으로 듣는 커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성화로 함께 참가한 커피 로스팅 교육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제껏 이미 가공된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던 내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원두 이름과 원산지를 논하고, 맛과 향을 음미하며 평가를 하다니…… 이것은 실로 엄청난 진보다. 물론 아직은 걸음마 수준으로 “그냥 무지 쓰다”, “조금 신맛이 나는 듯”, “그놈이 그놈 같다”는 커피 맛 평가도 낙제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커피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생긴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대단한 변화임에 분명하다.

처음으로 집에서 커피 로스팅을 하던 날, 우리 집 부엌은 폭탄을 맞았다. 냄새는 둘째치고 타다만 껍질과 검은 가루들이 바닥과 싱크대 위를 뒤덮었다. 게다가 생두의 색깔과 형태가 변해가는 동안 발생한 연기가 온 집안을 가득 메워 화재경보가 울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로스팅을 마친 원두의 색깔이나 상태도 다들 제각각 이었다. 덜 구워진 놈, 적당하게 익혀진 놈, 까맣게 타버린 놈 등등.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당연히

불 세기와 시간 조절이 제대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로스팅에 도전한 낮은 경험치를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다. 막 입문해서 불을 다루는 기본은 배웠으나 따라 하기도 벅찬 하수(下手)이니 불의 세기나 시간에 대한 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 문제는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치를 끌어올리면 해결된다.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다 보면 불의 세기와 시간에 대한 나름의 법칙과 기준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운 기본을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응용이 가능한 수준이 바로 중수(中手)다.


하지만 더 어려운 문제가 앞을 막아섰다. 이게 두 번째 이유다.

커피 로스팅은 생두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불의 세기와 시간을 달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리차와 파푸아 뉴기니 블루마운틴, 그리고 멕시코 라스 치하라 스는 각기 로스팅하는 불의 세기와 시간이 다르다. 이걸 잘못 맞추면 결과도 제멋대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정말 난제다. 웬만한 경험자라도 여러 조건을 모두 감안하여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꽤나 까다로운 듯 하다. 이곳은 고수(高手)의 영역이다. 고수(高手)는 활동 분야에서의 다양한 지식을 적용하고 응용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나름대로 상황과 문제를 대처해 가는 자신만의 방법과 절차가 있다. 커피 로스팅에서도 생두의 종류와 상태에 맞게 불의 세기와 시간 조절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는 경지가 되어야 고수(高手)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어떤 분야든 고수(高手)가 되는 길은 멀고 험한가 보다.


생산 지역별 또는 연도별, 건조방식이나 보관 상태, 원두의 신선도나 분쇄 입도, 그리고 로스팅 조건과 방법, 물의 온도와 추출 시간, 추출 도구와 여과 방법 등등 한잔의 커피 맛과 향을 결정짓는 요소는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커피의 맛과 향, 그 속에 스토리를 펼쳐 내는 것은 결국 커피를 만드는 이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겠는가?

커피의 세계는 그 다양한 생산지와 원두의 종류만큼이나 매혹적인 천의 맛을 가졌고,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 그러니 너무 어렵게 생각 말고 각자 자기의 방식대로 즐기면 되지 않을까? 간편한 자판기 커피나 봉지커피에 익숙해도 되고, 카페나 편의점 커피를 사 마셔도 관계없다.


그래도 뭔가 좀 아쉬움이 있다면.... 만약 내가 직접 고르고 로스팅한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는 수고를 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도전해 보시길 권한다. 물론 커피 로스팅이 꽤 손이 많이 가고,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커피 한잔에 담긴 작지만 심오한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충분히 가치 있는 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어느 책에서 본 ‘커피를 공부하는데 어울리지 않는 10가지 유형’이 있어 잠시 소개할까 한다.


1.    게으른 사람

2.    연구심이 없는 사람

3.    미각이 둔한 사람

4.    소극적인 사람

5.    매사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

6.    침착하지 못한 사람

7.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

8.    창조성이 없는 사람

9.    마음이 정갈하지 못한 사람

10.  특별히 위장이 약한 사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인 듯하다.

그런데 문득, 이 10가지 유형들이 비단 커피뿐 아니라 다른 공부나 일상에도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사항이 아닐까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무더운 여름, 매력적인 아이스 커피 한잔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