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야구에서 ‘왼손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말이 있다. 희소성이 높은 좌완에다 강속구까지 장착한 투수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어린 야구 꿈나무가 왼손잡이에 어깨까지 좋으면 십중팔구는 투수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투수의 볼이 빠르다는 말은 타자가 홈 플레이트에서 날아오는 볼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걸 의미한다. 18.44m 떨어진 마운드에서 투수가 최대한 팔과 다리를 앞으로 뻗어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뿌린다고 가정할 경우, 타자는 공을 보고 반응하는 0.2초를 제외한 나머지 0.2초 안에 배트를 휘둘러 주먹만 한 공을 맞춰야 한다는 계산이다. 평소에 운동 좀 했다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일반 사람들은 당최 상상조차 쉽지가 않다. 게다가 상대가 왼손 투수라면 그 희귀성 때문에 평소 경기에서 자주 만나지 못하므로 실전에서 볼을 맞추는 타이밍을 잡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자랑스러운 ‘무대뽀 5초 신공’을 펼치고 있는 류현진 선수다. 같은 팀의 에이스이며 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1인으로 손꼽히는 클레이튼 커쇼도 왼손잡이다. 또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SK의 김광현 선수와 KIA의 양현종 선수도 왼손 에이스로 맹활약하고 있다.
좌완 투수를 이야기했으니 좌타자 얘기도 잠시 해보자. 좌타자는 스피드에서 확실한 이점이 있다. 홈플레이트에 서있는 위치상 우타자들은 한 수 접고 갈 수밖에 없다. 좌타자의 경우 1루 베이스까지의 거리로 볼 때 적어도 0.1초 정도는 이득인 셈이다. 또한 좌타자 들은 병살타를 칠 확률도 우타자에 비해 현저히 낮다. 게다가 상대방 포수의 시야를 가리는 위치 덕분에 1루에 있는 동료의 도루 저지 송구를 자연스럽게 방해하는 역할도 한다.
중학교 때 아마추어 야구를 잠시 경험하면서 우투좌타를 시도한 적이 있다. 원래 왼손잡이는 아니었지만 왼쪽 타석에서 배트를 드는 게 그냥 편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좌타라기보다 양쪽을 다 쓰는 스위치히터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그래서인지 고교시절 친구들과 동네에서 떡볶이 내기 야구 공치기 시합을 하면 양쪽 타석에 다 들어서는 위용(?)을 뽐내기도 했다.
매일 아침을 여는 수영에서 호흡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든다. 이유? 나도 모른다. 은연중에 뭐든 반대로 가려는 청개구리 성격 탓인가? 그냥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호흡을 하는 게 좀 더 편하다. 강습 첫날, 그렇게 헤엄치는 날 본 강사 왈 “왼손잡이세요?”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럼 고개를 왜 왼쪽으로 돌리세요?” 이거야 원,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리 되는 건데요……” 그리고 연이어 나오는 볼멘소리. “아니, 오른손잡이는 꼭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잠시 정적이다)…… “편하실 대로 하세요” 강사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데 그 뉘앙스가 마치 ‘니 맘대로 하세요’로 들린다.
괜히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되는가 싶어 몇 번씩 남들과 동일한 오른쪽으로 호흡을 시도해 보았으나 여전히 뭔가가 어색하다. 한 바퀴를 돌았더니 목도 아프고 어깨까지 뻐근하다. 그래서 그냥 몸 가는 대로 맘 가는 대로 계속 왼쪽으로 쭉~가기로 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밀려온다. ‘나 혹시 원래 왼손잡이였나?’
문득 대부분의 왼손잡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이유에 의해 오른손잡이로 바뀌도록 강요를 받아왔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전 세계적으로 성인의 약 10% 정도가 왼손잡이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비율이 좀 더 낮아서 5.8% 정도라 한다. 대한민국 국민 중 3.9%가 왼손잡이지만 식사나 필기를 하는 비율은 더 낮다. 아무래도 제품이나 도구, 각종 시설물들이 오른손잡이 위주로 되어 있는 영향이 크다 할 것이다. 결국 왼손잡이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고심 끝에 선택하는 차선안이 양손잡이로 변신하는 길이다.
양손잡이로의 변신에서 왼손잡이들이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들이 얻은 것은 거짓된 동질감과 불편한 편안함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이 잃은 것은? 그건 아마 자존감과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 그것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다수의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불편해 해야하는 소수가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다양성이 뿌리를 내리기가 힘들다. 마음 한구석에 아픔을 숨기고 살아가는 왼손잡이로 대변되는 이 세상의 소수자들이 자신의 의지와 역량을 마음껏 펼치고 사는 다채로운 세상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
어느 가수가 노래한 ‘왼손잡이’에서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가사는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인식되는 왼손잡이와 같은 소수자들의 간절한 외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