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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자였다

그때 나를 내려놓을 뻔했다

by 달공원

나는 한때, 인생의 실패자이자 낙오자였다.
그 시절의 나는 모든 걸 잃어버린 자포자기의 상태였다. 두 번째 미국행에서의 환호는 그리 길지 못했다. 무모한 창업과 실패,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 그것은 마치 바닥의 끝을 확인하려는 듯한 끝없는 추락의 연속이었다.


무너짐의 순간


2006년 겨울, 필라델피아의 한 어두컴컴한 식당 2층 사무실. 핸드폰 너머로 어머니의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얘들 잘 키우고, 가족들 잘 보살피거레이.”


그 목소리는 힘겨웠지만 애틋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엄마, 곧 보러 갈게요, 빨리 일어나이소”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게 이승에서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몰랐다. 다음 날 새벽, 어머니는 급성 간암으로 입원하신 지 일주일 만에 먼 길을 떠나셨다.


그렇게 나는 불효자가 되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길조차 함께 할 수 없는. 불안정한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에 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은, 나를 절망으로 내몰았다. 분노, 수치심, 후회, 비참함은 내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집에서도, 달리는 차 안에서도, 가게 한 구석에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한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가게도, 가정도, 꿈도 모두 잃어가고 있었다. 경험 없이 뛰어든 사업은 알고 보니 교묘히 감춰진 사기와 부실 덩어리였고, 온갖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쥐 출몰로 인한 고발과 단속, 직원의 도둑질과 무단결근, 세금 문제로 IRS에 불려 가기까지…… 그야말로 숨 돌릴 틈도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침내 내린 결단. 살던 집을 팔고, 가족들은 한국으로 먼저 떠나보냈다. 부동산에 가게를 매물로 내놓고, 필라델피아 어느 대학 근처에 후줄근한 꼭대기 방한 칸을 빌렸다. 매일 밤 좁은 통로와 계단을 거쳐 3층 꼭대기 방에 오르면 어둠과 적막만이 가득했다.


한밤중이면 양 모퉁이 구멍으로 마치 자신들의 운동장인양 거침없이 달리기 경주를 벌이는 서생원들과 닥치고 헌혈을 강요하며 매트리스를 향해 높이뛰기 경쟁을 해대는 이와 벼룩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통로 너머로는 술과 마약에 취한 인간들이 뿜어대는 쾌락의 신음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렇게 버틴 5년 남짓한 시간은 매 순간이 생존 전투였다.


질문, 나를 살린 끈


지긋지긋했다. 끊임없는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그 무너짐 속에서, 단 하나의 질문이 내 안에 남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내게 남겨진 유일한 구조 신호였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의 언어가 있다. 어떤 이는 불처럼 치받고, 또 어떤 이는 흙처럼 버틴다. 나는 그때, 내 안의 기운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무작정 세상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스스로를 해석하기 위해 뭐든 붙잡기 시작했다. 종교든, 철학이든, 미신이든, 아니면 운동이라도…… 난 무엇이든 붙잡아야 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아니 살아내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나를 해석하기 위해 기를 썼다.


나의 시선은 ‘도구’로 향했다. 혈액형, 바이오리듬, 사주와 오행, MBTI…… 모두 허망한 장난감 같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상처와 기질을 비춰주는 작은 거울이었다. 어쩌면 그것들은 내 삶의 흔들리는 나침반을 다시 잡아준 실마리였는지도 모른다. 도구는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을 더 깊게 만드는 열쇠가 되어 주었다.


실패가 남긴 것


돌이켜보면, 내가 무너진 건 단순한 실수나 실패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늘 무대뽀 정신을 강조하곤 했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는데 익숙했다. 하지만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었고, 애초에 방향 자체가 틀린 경우라면 제대로 된 답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실패는 나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다시 묻게 만드는 계기라는 것을.


새로운 시작의 예고


그 고난의 시간 이후, 내가 체험으로 습득한 ‘나를 읽는 법’을 본격적으로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주와 오행은 내 기질의 틀을, MBTI는 내 사고의 패턴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의심스럽고, 때로는 낯설었지만, 결국 그것들은 나를 이해하는 언어가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도구들은 내면의 지도를 그리는 ‘언어’로 바뀌었다. 강한 토(土)는 나를 버티게 했고, 분석적인 사고는 무너진 조각들을 다시 맞춰주는 틀로 작용했다.


또한 나는 글쓰기, 운동, 사색 같은 작은 루틴들을 도구 삼아 무너진 자존감을 아주 조금씩 회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책은 그때부터 이어진 나의 여정, 다시 말해 나를 읽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실패와 무너짐에서 시작해, 다시 회복하고 설계하며 통합해 나가는 과정. 나는 그 길 위에서 다양한 도구들을 만났고, 그 도구들을 삶 속에서 다양하게 시험해 보았다.


사소한 언어, 작은 도구들이다. 그때의 나는 사주나 MBTI에 의지한다기보다, 나를 해석할 언어가 필요했다. 그 도구들은 내 상처를 비추는 작은 거울이자, 내 혼란을 정리해 주는 좌표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더 오래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생존을 위한 단서이자 최후의 보루 같은 존재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거울이 될 수도 있다.

비록 내가 걸어온 길과 내가 붙잡은 도구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무너진 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 생생한 흔적이다.


사주든 MBTI든, 그것들은 결국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거울을 통해 내가 나를 어떻게 읽어내느냐였다. 도구는 답을 주지 않았지만, 질문을 더 깊게 만드는 열쇠가 되어 주었다.


무너짐에서 성찰로, 성찰에서 회복과 설계로 이어진 이야기.
그 이야기가 지금의 당신에게, 작은 불씨 하나쯤은 건네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다음 장에서는, 내가 나를 읽기 위해 어떤 도구들을 처음으로 만나고, 어떻게 활용했는지 풀어내려 한다.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

당신이 경험한 가장 큰 실패는 무엇인가요?

그때의 감정과 냄새, 소리, 풍경을 지금 떠올려본다면 어떤 장면이 가장 선명한가요?

혹시 그 경험 속에서 지금의 당신을 설명해 주는 단서는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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