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시간과 거리
극과 극, 상반된 약 10년의 시간이었다.
그 기간 동안 내가 경험한 두 세계는, 같은 하늘 아래 있지만 완전히 서로 다른 행성이었다.
한쪽은 논리와 신뢰가 전제된 공간이었고, 다른 한쪽은 예측 불가능과 혼돈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그 낙차가 인간관계에 대한 나의 관념을 무너뜨렸고, 결국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상반된 두 세계
유학 시절,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방학이 되자 하버드·MIT 출신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된 보스턴의 콘텐츠 개발팀, NYU와 SVA 대학원생들이 모인 뉴욕의 멀티미디어 제작팀, 그리고 한국 투자자들을 연결하는 멀티미디어 영어교육 콘텐츠 개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나는 뉴욕 팀의 멀티미디어 총괄 디렉터로 일하며, 보스턴과 뉴욕의 회의와 제작 현장을 오갔다.
그 세계는 논리와 근거가 치열하게 날아다니는 공간이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약속은 곧 실행으로 이어졌다. 긴장감은 있었지만, 성취의 희열과 보람이 공존했다. 그 시절의 나는, 관계 속에서도 신뢰가 곧 힘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그러나 회사를 나와 시작한 사업 현장은 전혀 달랐다. 내 주변에는 스페니시, 흑인, 동남아 출신 이민자, 백인 하층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나는 전혀 다른 리듬과 마주했다. 편견을 가지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상식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행동들이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자 나는 혼란에 빠졌다.
그 세계에서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즉흥과 무책임이 일상이었다. 지금껏 내가 알던 관계의 정의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들이 이어지면서, 내 안에는 점점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와 혐오감이 쌓여갔다.
무너지는 인간관계
영화관 옆 가게 라는 위치상, 평소에는 한가했지만 주말이나 블록버스터 영화 개봉일이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개봉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하루를 버텼다.
몸이 고된 건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지치게 한 건 사람들의 배신이었다. 가장 바쁠 때 예고 없이 잠수를 타버리는 직원, 고객과의 다툼으로 경찰이 출동하게 만드는 직원, 그리고 백주대낮에 CCTV 앞에서 보란 듯이 현금통을 털어 유유히 사라진 절도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를 무너뜨린 건 매니저 에릭이었다. 그는 요리 문외한인 나의 스승이자 동생이고, 때론 친구 같던 존재였다. 가끔씩 술잔도 기울이며 서로의 속깊은 얘기를 나누기도 하는. 어느 날, 가족 문제로 급전이 필요하다는 그의 부탁에 나는 흔쾌히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어느날, "미안했다"며 사과 전화를 걸어온 그에게 “걱정 말고 잘 살라”고 했지만, 나의 상처는 깊었고 쉽게 아물지 않았다. 그 사건은 나로 하여금 “다시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겠다”는 쓸쓸한 결심을 남겼다.
관계의 기준
나는 한동안 ‘사람에게 질렸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미국에서의 충격, 한국에서의 불편한 시선은 내 인간관계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낙하산’이라는 꼬리표, 가족과의 긴장, 주변과 단절된 관계는 나를 더 깊은 침묵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인생은 결국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문제는 “어떻게 다시 사람 속으로 들어가느냐”였다. 그때 내가 세운 첫 기준은 단순했다.
“만나고 나면 기운이 나는 사람인가?”
이 한 문장은 내 인간관계를 구분하는 분별점이 되었다. 만나고 나서 에너지가 닳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만나고 나서 따뜻함이 남는 사람에게는 문을 살짝 열었다. 이제 나에게 사람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가, 나를 갉아먹는가’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나를 지키는 장치들
나는 관계 속에서도 일정한 ‘리듬’을 원했다. 너무 가까워지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외로워지는 리듬. 아마도 내 안의 토(土) 같은 성향이 안정과 균형을 갈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이 앞서고 감정이 뒤따르는 내 패턴은, 사람과의 거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 나는 ‘거리 두기’를 나만의 기술로 바꾸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점심시간에는 일부러 사람들 틈을 비켜 조용한 창가 자리를 택했다.
회의가 연달아 있을 땐 중간에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깊은 대화를 요구하는 만남 전후에는 늘 메모장을 열어 내 감정을 정리했다.
그 시간들이 내 에너지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 주었다. 거리 두기는 단절이 아니라, 자기 보호의 기술이었다.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
하지만 나는 동시에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도 포기하지 않았다. 운동 클럽과 글쓰기 모임은 비교적 안전한 재진입 통로였다.
운동은 몸을 움직이는 즉각적인 반응으로 마음을 달래 주었고, 글쓰기는 복잡한 감정을 구조화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두 활동은 함께 땀 흘리고 글을 나누는 과정에서, 무너졌던 사람과의 관계와 신뢰를 조금씩 회복할 수 있는 장이 되어 주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나는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완전한 고립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적당한 거리에서 사람들과 연결될 때, 삶은 다시 의미를 되찾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관계도 없다. 다만 어떤 인연은 나를 다시 숨 쉬게 하고, 어떤 인연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결국 사람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서로의 경계가 되어 주는 존재다.
�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
지금 당신과의 만남이 에너지를 주는가, 빼앗는가?
당신이 지키고 싶은 ‘관계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3개 써보세요)
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문을 열고, 어떤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