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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은 작고 사적인 루틴에서 시작된다

작은 습관이 다시 나를 세운다

by 달공원

경기 한 달 전부터 내 안에서는 알 수 없는 경보음이 울렸다.
일을 하다가도, 잠시 쉬는 와중에도, 대회 생각만 하면 심장이 쿵 하고 요동을 쳤다. 호흡은 가빠지고, 온몸이 순간적으로 긴장되면서 뭔가 속에서 툭 내려앉는 듯한 느낌. 그 감각은 때로는 불안으로, 때로는 아드레날린의 폭발로 찾아왔다.


듀에슬론, 첫 번째 철인 도전


처음 마라톤이나 핀수영 대회에 나섰을 때도 약간의 긴장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그래서일까? “과연 네가 이걸 해낼 수 있어?” 하는 낯선 속삭임이 나의 멘털을 수시로 흔들어댔다.


대회 당일, 밤새 내리던 비는 멈췄지만 칼바람이 몰아쳤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출발선 앞에 섰다. 5km 달리기는 가볍게 통과했지만, 두 번째 종목인 자전거에서는 맞바람이 발목을 잡았다. 30km를 넘어가자 허벅지가 뻣뻣해지며 간헐적인 경고음이 올라왔다.


그리고 마지막 10km 마라톤. 한 2km쯤 달렸을까. 오른쪽 허벅지 상단이 갑자기 굳어오더니 순식간에 마비 증세가 밀려왔다. 순간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든 고통이 이어졌다. 뛰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상황. 그러나 차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나 자신에게 소리쳤다.

“제발, 이번만큼은 낙오자는 되지 말아야지!”

“걸어서라도 끝을 보자!”

“지금 이 순간, 네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차가운 도로 위에서 허벅지를 주무르며 숨을 고른 끝에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나는 힘겹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전기에 감전된 듯 계속해서 찌릿거렸지만, 느리게라도 걷다 보니 차츰 경련의 풀림이 느껴졌다. 그렇게 조금씩 속도를 올려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다.


철인 경기 컷오프 타임인 3시간 30분을 단 몇 초 남겨놓고 돌파한 순간, 나의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철인 도전이었다. 그리고 단독으로는 마지막 도전이기도 했다.


빌드업의 기억들


애초에 내가 이런 체력을 가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언감생심. 내 주제에 철인이라니……


가볍게 수영으로 아침을 열던 습관이, 조금씩 달리기로, 자전거로 확장된 것뿐이었다. 처음엔 25m 레인 한번 왕복하기도 벅찼다. 그러나 꾸준히 루틴을 반복한 끝에 어느새 마스터반 훈련에 합류해 있었다. 스스로를 ‘꽁지마스터’로 부를 만큼 늘 맨 뒤에서 헉헉거리며 겨우 쫓아가는 수준이었지만, 그조차도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었고 성취였다.


달리기도 가벼운 조깅부터 시작해서 5km, 10km, 다시 20km로 차츰 거리를 늘려갔다. 훈련이 쌓일수록 자존감도 덩달아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홀로 달리는 양재에서 팔당까지의 자전거 길은 숨 막히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였다. 거친 숨결과 페달질 속에서도 마음은 도리어 고요히 가라앉았다.


운동은 몸을 단련했을 뿐 아니라, 내 마음의 결을 다듬는 훈련이었다. 생각이 과열될 때마다 나는 땀으로 불을 식혔고, 몸이 고갈될 때는 오히려 정신이 충전됐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회복은 직선이 아니었다. 또다른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철인대회를 준비하던 중, 무릎 연골이 찢어졌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달리기와 등산은 절대 금지. 조건부로 허락된 자전거와 수영으로 간신히 훈련을 이어갔다. 그리고 철인 릴레이에서 자전거 파트를 맡아 팀원들과 함께 결승선을 넘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자전거 전국일주 첫날, 큰 사고로 쇄골이 부러졌다. 수술 후 1년 넘게 철심을 박은 채 지내야 했다. 운동은커녕 팔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절망 속에서 스스로를 자책했다.

“난 왜 이렇게 무모할까?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절망의 문턱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나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불처럼 타오르던 내 열정이, 흙처럼 단단한 버팀을 잃었을 때 무너졌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 균형을 찾자,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멈췄던 에너지는 서서히 순환하기 시작했다.


회복이란, 성향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기운의 흐름을 되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작은 루틴의 힘


회복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루틴, 소소한 반복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짧은 수영, 내일의 1km 달리기, 모레의 자전거 한 바퀴. 그 사소한 루틴이 나를 다시 세웠다.


루틴은 강박이 아니라, 무너진 나를 천천히 복원시키는 ‘생활의 리듬’이었다. 메모와 기록이 마음의 훈련이었다면, 운동은 몸의 훈련이었다. 두 가지 루틴이 맞물리며 나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톱니바퀴’가 되었다.


거창한 결심보다, 작게 움직이는 몸이 나를 다시 살렸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루틴은 강박적인 반복이 아니다. 작은 습관이 쌓여 삶을 바꾼다.

메모와 기록이 내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이었다면, 운동은 내 몸을 다스리는 훈련이었다.

생각해 보자. 당신은 어떤 작은 루틴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

당신의 작은 루틴은 무엇인가요?

그 루틴이 몸과 마음을 어떻게 지탱하고 있나요?

오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습관 하나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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