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힘
“노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 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누르고, 자리에 돌아온 내가 전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의 첫 구절을 그렇게 시작했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법한 가곡의 도입부였다.
두런두런의 시작
공개석상에서 나를 자극한 직원에게 곧장 화를 쏟아내기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글로 정리해 메시지를 전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를 저어야 배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비유와 함께, 불평과 불만만 늘어놓을 거라면 차라리 다른 배를 타라는 직설적인 경고도 담았다.
처음엔 일회성으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박전무의 두런두런’은 해를 넘기고도 계속 이어졌다.
책에서 얻은 문장, 강연에서의 울림, 개인적 경험이 녹아든 짧은 에세이들. 설령 누군가에겐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지 모르지만, 내게 그것은 진심을 전하는 통로이자 나 자신을 회복시키는 루틴이었다.
글쓰기 수업, 또 하나의 점
매주 글을 쓰는 습관이 자리를 잡자, 어느 순간 갈증이 찾아왔다. 글쓰기 모임을 찾아 나선 이유다. 낯설고 긴장됐지만, 첫 수업의 감흥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나는 ‘점 하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사실 글쓰기를 언급하기엔 조잡하기 그지없는 내 글재주를 알기에 행동하나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솔직히 심금을 울리는 글벗들의 짱짱한 글발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이런 처지에 책 쓰기를 입에 올리는 것은 언감생심이 아닐 수 없는 일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 머릿속 죽은 세포를 깨워주는 이 만남이 좋고, 지금 이 순간의 지적 유희가 너무도 상쾌할 뿐이다. 비록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거라 누군가 타박하더라도 난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아마도 난 또다른 나를 찾기 위한 비상구를 찾고 있었나 보다.”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건 나를 구조화하는 훈련이었다. 일상에서 쏟아지는 감정과 압박을 글로 내려놓으면 혼란이 잠잠해지고, 거리를 두고 바라볼 힘이 생겼다.
글쓰기는 내 감정을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자, 무너진 자존감을 복원하는 도구였다. 평소 메모와 기록이 씨앗이었다면, 글쓰기는 그것을 집약하고 꽃 피우는 힘이었다.
원칙을 다시 배우다
이후 나는 글쓰기의 기본 원칙을 배우며 다시 알게 되었다.
“창조란 철저한 기본 위에 선다.”
글의 구조는 인생의 구조와 닮아 있었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해, 서로 연결된 선이 되고, 그 선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며 결국 하나의 면을 만든다. 글이 그렇듯, 인생도 점과 선, 면으로 이어진다.
점은 한 시점의 나를 의미한다. 그 순간의 선택과 감정이 모여 나의 ‘선’을 만들고, 그 선들이 모여 나의 인생이라는 ‘면’을 채워간다. 그렇게 모인 면들이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입체가 된다. 그 입체는 곧 나의 '삶의 구조'였다.
삶의 스토리라인
삶도 글쓰기와 같다. 시작과 전개, 몇 번의 위기와 클라이맥스, 그리고 퇴장까지 누구에게나 스토리라인이 있다. 누군가는 순탄하게 항해하고, 누군가는 폭풍 속을 헤치며 살아간다. 하지만 공통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책임은 오롯이 자신에게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인 동시에 감독이다.
점과 점을 이어 나가려면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도전력, 열정력, 추진력, 결단력, 집중력, 창의력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글쓰기는 그 힘을 되살리는 연습이었다. 한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내 안의 방향이 조금 더 명확해졌고, 내 인생의 스토리라인도 다시 그려졌다.
글쓰기와 나
사람마다 그 구조를 세우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는 물(水)처럼 유연하게, 누군가는 금(金)처럼 단단하게 자신을 세운다. 사주의 오행이 다르고, MBTI의 성향이 다르기에 각자가 강점을 발휘하는 방식도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글쓰기는 자신을 읽고 세우는 가장 확실한 도구이며, 내 안의 기질이 어떤 방향으로 작동하든 결국 나를 다시 ‘중심’으로 세우는 힘이다.
글쓰기는 내 본성과 닮아 있었다. 세상을 구조화하려는 성향과, 사람을 이해하고 연결하려는 마음이 동시에 작동했다. 그래서 글은 내 안의 질서를 세우는 동시에, 타인과의 연결을 회복시키는 다리(bridge)가 되어주었다. 즉, 글쓰기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타인을 연결하는 매개체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글쓰기는 나를 다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운동이 몸을 세웠다면, 글쓰기는 마음을 세웠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 자신을 설명했고, 용서했고, 설득했다.
글쓰기는 나의 강점이자 회복의 가장 든든한 도구였다. 나는 다음 장에서, 그렇게 다시 세운 글이 어떻게 ‘말’로 확장되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 독자에게 건네는 질문
나는 어떤 일을 반복해도 잘 버티는 사람인가요?
나의 강점은 어디에서 가장 빛을 발했나요?
지금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구조화하고 있습니까?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과 감정을 글로 옮겨보세요.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되찾는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