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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Feb 13. 2016

나무야 나무야

나이테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호박과 토마토는 몇 주 만에 자라 며칠, 몇 주 동안 열매가 열리지만  첫서리가 내리면 이내 죽어버린다. 반면 나무는 서서히 몇 년,  몇 십 년, 몇 백 년까지 자라고 열매도 수십 년 동안 맺는다. 건강하기만 하면 서리나 태풍, 가뭄에도 끄떡없다. 
                                            존 맥스웰,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에서 


부름켜란 식물이 세포분열을 일으키는 곳이다. 일종의 성장 컨트롤 타워라 보면 된다. 봄에는 세포 분열이 활발하게 일어나지만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분열 속도가 느려지고 세포의 성장도 긴 겨울잠에 빠져든다. 그래서 오행에서 나무는 봄과  찰떡궁합이다. 세포분열이 왕성해지는 계절인 봄에 나무는 한 해의 결실을 꿈꾸며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대부분 7월을 고비로 분열이 둔화되고 9월이 되면 분열활동을 멈춘다. 그 속도와 밀도의 변화에 따라 세포벽의 크기나 색깔이 달라지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테다.  


나이테는 한 해에 한 개씩 생기기 때문에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일 년 내내 동일한 속도로 나무가 성장한다면 나이테는 생기지 않는다. 열대지방처럼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는 나이테가 나타나지 않거나, 1년 또는 수년에  한 번씩 나타나기도 한다. 


물고기의 연령대를 알아내는 방법에도 유사한 나이테 방식이 적용된다. 물고기는 나무의 나이테와 비슷한 이석(otolith)이라는 탄산칼슘 결정체를 귀 속에 가지고 있다. 이 조직을 통해 물고기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데, 2013년 11월 호주에서 발견된 레드 피쉬라는 물고기의 나이가 84세로 알려져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물고기는 단박에 최고령 물고기로 등극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도 나이테가 있다. 아마 지구 곳곳에서 살짝 속살을 들어낸 지역들이 저마다 지구 나이테의 원조를 주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히 어떤 곳도 이곳 나이테의 규모나 깊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미국 애리조나 주의 그랜드 캐니언은 20억 년의 역사를 추정케 하는 지질층들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원체 규모가 크고 깊다 보니 그 감응을 입에 올리기조차 버겁다. 그냥 바라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1990년대 초 내가 마주했던 그랜드 캐니언은 장엄함과 경건함, 그 자체였다. 한동안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조각하듯 곧추세워놓은 절벽들과 그 사이를 유유히 굽이쳐 가로지르는 콜로라도 강, 기암괴석들과 바위산들, 폭포와 급류가 즐비한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곳이 그랜드 캐니언이다. 443킬로 미터에 이르는 미로 같은 협곡을 알록달록하게 수놓은 수평단층들은 20억 년을 거쳐오며 새겨진 지구의 나이테인 셈이다. 지구의 나이를 46억 년이라 가정한다면 그랜드 캐니언은 그 반평생을 함께 한 것이 된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참으로 엄청난 영겁의 세월이다. 수많은 수평 단층들, 지구의 나이테 속에는 물과 공기와 바람을 견뎌 온 지구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도 나이테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어림잡아 100년 정도가 우리에게 나이테를 만들도록 주어진 시간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훨씬 짧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 또한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인 셈이다. 인생 나이테의 간격이 큰 변화 없이 선명하고 꾸준하게 이어졌다면, 기후도 알맞고, 비와 영양분 역시 적당해서 부름켜의 활동이 왕성했음을 의미한다. 또 간격이 좁고 어두운 색깔을 띤 나이테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가 거쳐온 환경이 만만치 않았음을 뜻한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인생 나이테 역시 상당히 창의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결국 한정된 시간 동안 만들어질 인생 나이테의 모습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음양오행에서 목(木)은 단어 그대로 나무를 의미한다. 나무의 성격은 직선이던 곡선이던 퍼지고 솟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뿌리가 깊어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가뭄에도 견딜 수 있는 법이다. 이는 외면보다 내면이 더욱 중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목(木)인들은 화려한 외형이나 보여주기 식 행동보다는 실속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힘써야 한다. 우리 각자가 한정된 시간 동안 창조해가는 인생 나이테의 모습. 그것은 적절한 때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 나무를 심고 가꾸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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