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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Mar 11. 2016

‘자화상’ (自畫像)

자기 자신을 아는 능력

자신의 얼굴을 그려본 적이 있는가? 

‘자화상’ (自畫像)이란 스스로 그린 자기의 초상화다. 


자화상을 제대로 그리려면 거울이든 사진이든 내 꼴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얼굴 라인이 네모인지 세모인지 아님 마름모인지, 눈코 입은 어디에 어떻게 붙었는지, 전체적인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알아야 실물에 근접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조금 더 가보자.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이 드러난다. 이름하야 관상이다. 성격과 건강, 살아온 환경 등등 일생의 희로애락이 그 사람의 얼굴을 척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내공이 차고 넘치는 고수들이 그렇다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잘 생겼던, 2%가 부족하게 생겼던, 견적이 안 나오던…… 이유야 어쨌든 간에 내가 그 얼굴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나이 40이 된 후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미국 대통령이었던 링컨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하지만 책임소재는 어느 시점이 되어서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엄마 뱃속에서 사고가 시작한 때부터 목표를 갖고 꾸준히 가꾸고 관리해야 멋진 얼굴 즉, 폼 나는 자화상을 그려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화상을 잘 그린다는 건 자신을 잘 안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이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해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자신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놀라운 능력이다. 역설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잘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의 미래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우선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정확한 자신이라 자신할 수 있는가? 이런! 출발부터가 간단치 않은 명제다.


심리학자 조 루프트와 해리 잉햄이 주장한 ‘마음의 4가지 창’ 또는 ‘조해리의 창’이라 불리는 이론에는 네 영역이 등장한다. 


‘나와 남이 모두 알고 있는 나’를 의미하는 공개적 영역(Open Area),

‘남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행동이나 습관, 독특한 성격’과 같은 맹목의 영역(Blind Area), 

‘남은 모르는 나만의 비밀’인 숨겨진 영역(Hidden Area), 

‘나도 남도 알지 못하는 나를 의미’하는 미지의 영역(Unknown Area)


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어마 무시한 얘기다. 게다가 무의식 수준의 방어기제에 따라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시도하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은 쌩얼의 자신을 바라보는 걸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상상외로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구석이 많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나’를 바로 알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연구는 심리학이나 철학, 역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줄기차게 시도되고 있다. 특히 성격 형성에 대한 심리학 연구는 정신분석학 이론, 현상학 이론, 특성 이론, 사회학습이론, 사회관계 이론 등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이 노력과 연구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이다.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명제는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요즘 유난히도 명리학이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다. 


당신이 그리는 스스로의 모습은 어떠한가?




BG: 이헌정의 자화상(95x46x160cm). 사진 아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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