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으로 바라본 우리의 삶, 그리고 직장생활
며칠 전 1일, 부산 해운대, 광안리, 충남 대천을 비롯한 전국의 여러 해수욕장들이 일제히 개장을 알렸다. 물론 이미 지난달 문을 연 마음 급한 지역도 있다. 또 이달 중순 혹은 내달 초에 개장을 기다리는 여유만만인 곳도 있다. 상황이야 어찌 되었던 지역 상인들이 괜스레 마음이 급해지게 생겼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 탓이다.
푸른 해변에서의 멋진 바캉스를 애타게 기다려온 선남선녀들의 마음도 더불어 설렐 듯하다. 매년 이맘때면 내가 매일 아침 출근 도장을 찍는 수영장은 한바탕 몸살을 앓곤 한다. 이른 새벽부터 벌어지는 수강 등록 전쟁 때문이다. 평소 문제가 없던 주차도 빈자리를 찾지 못해 삥삥 돌다 결국은 남의 가게 앞에다 두고 와야 할 정도다. 초급, 중급, 고급…… 레벨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현상이다. 평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하다. 그나마 인원 제한을 해서 이 정도니 그조차 없었다면 그냥 콩나물시루 같은 여름 동네 풀장이 될 지경이다.
그런데 새로 수강 등록을 하는 상당수가 곧 마주할 여름해변에서 드러낼 폼 나는 몸매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이들이다. 떡 벌어진 어깨에다 왕(王)자가 새겨진 복근이나 미끈한 S자 곡선을 꿈꾸면서 말이다. 수영의 가장 기초인 보드 잡고 물장구치는 연습을 하는 처지임에도 상상 속의 자신은 이미 바닷가 모래사장을 거니는 건장하고 미끈한 구릿빛 몸매다.
헌데 이를 어쩌나! 이 몸매라고 하는 것이 워낙 정직한 놈이 되어 나서 하루아침에 ‘뚝딱~!!’하고 만들어지질 않는 것을. 전신 성형을 하거나 근육을 키우는 스테로이드를 주야장천 들이마시지 않는 이상 그런 상상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이다. 상당기간 공을 들이고 꾸준히 단련을 해야 전체적인 몸 균형도 잡히고, 근육도 적당하게 오르는 법이다. 따라서 그 상당수의 꿈은 그냥 한여름 밤의 꿈으로만 남는다. 그리고 그 상당수의 거의 대부분은 ‘메뚜기도 한철’ 이란 말처럼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적시기 시작하면 수영장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바다를 낀 지역 출신이라 일명 생존수영이라 일컫는 바다수영을 먼저 실전으로 익혔다. 그러다가 수영장에서 기본부터 다시 배운 케이스다. 바다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머리를 물속으로 잘 담그지 않는다. 파도도 있고, 방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소위 말하는 음파, 즉 입안에 드는 물을 내뱉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 물이 농익은 소금물이라면 더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머리를 물 밖으로 쳐들고 자유형이나 평형을 주로 한다. 그런데 수영장에서는 바다에서처럼 머리를 통째로 치켜드는 법이 거의 없다. 연습을 위해서라면 모를까 어떤 영법이든 호흡이 가능한 최소한의 높이만 물 위로 드러낸다. 입 속으로 들어오는 물은 자연스럽게 내뱉기를 반복한다. 게다가 수영장에서는 바닥 라인이나 물 위에 떠있는 레인을 보면서 수영을 하므로 전방으로 똑바로 나아갈 수 있지만 바다에서는 주변에 기준으로 삼을만한 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똑바로 나가려면 6~8 스트로크에 한 번 정도는 고개를 들고 방향을 확인해야 한다.
물속에서 발이 닿지 않아 허둥대 본 적이 있는가? 이른바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공중 부양하듯 허우적대기. 어떤 이에겐 그것은 공포다.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해수욕장이 있었다. 그리 깊지도 않은데다 바다 한가운데 다이빙대까지 갖추고 있어 우리들의 신나는 방과 후 놀이터가 되었다. 팬티바람으로 연신 다이빙 대위에서 뛰어놀다 해가 다이빙을 시작하며 온 바다를 붉게 물들일 때쯤이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 바다에는 더 이상 넘어가지 말라는 부표들이 여기저기 떠있었다. 일종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우린 그 부표를 향해 죽을 둥 살 둥 헤엄쳐 가서는 부표를 붙잡고 가쁜 숨을 몰아 쉬곤 했다. 발도 닿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서 만약 부표마저 없었다면……
바다에서 수영을 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넘치는 혈기로 호기롭게 먼 바다를 향해 헤엄쳐가는 것까지는 좋지만 돌아올 힘은 비축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원래 헤엄쳐 나가긴 수월해도 해류 때문에 다시 돌아오기는 더 힘이 드는 법이다. 힘 조절 못하고 멀리 나갔다가 ‘아차~!’ 하면 이미 늦다. 잔뜩 어깨 힘주고 폼 잡다가 애인 앞에서 뭇남성과 입을 맞추는 뻘쭘한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이안류 같은 해류의 흐름에 휩쓸리면 까딱 잘못하다간 한 순간에 불귀의 객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두 종류의 수영을 보면 언뜻 우리의 삶, 특히 직장생활이 보인다.
우선 첫째,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S자 곡선의 환상적인 몸매나 복근에 왕자를 새기려면 기본자세부터 제대로 배우고 쉼 없이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프로가 되려면 오랜 시간 몰입하여 기초부터 잘 다지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분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결국 믿을 구석은 싫던 좋던 내 몸뚱어리 하나다.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직장생활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를 수영장이라 치면, 직장생활은 바다다. 때론 예기치 못한 폭풍우에다 높은 풍랑과도 싸워야 한다. 그나마 안전선이 쳐져있고 지켜보는 라이프가드도 있는 신입시절이라면 선임들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고, 가끔 사고를 쳐도 보호막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조직에서의 위치가 올라가면 결국 믿을 구석은 나 자신밖에 없다.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받게 되는 것이다. 기회와 시간이 주어졌을 때 부지런히, 그리고 치열하게 기본을 탄탄하게 하고 실력을 가다듬어야 하는 이유이다.
셋째, 보호막을 준비하라.
작년인가? 유난히 해안선을 따라 출몰하는 해파리에게 당했다는 소식이 많이 들렸다. 해파리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장애물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헤엄을 치다 갑자기 수온이 뚝 떨어지는 곳과 마주치는 경우도 흔하디 흔하다. 그래서 바다수영 대회 시 필수 품목 중 하나가 슈트다. 해파리의 공격에 대비하는 역할뿐 아니라 체온 유지나 부력을 높이는데도 슈트는 대단히 유용하다. 이처럼 직장 생활에서도 일단 유사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호막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그게 나만의 필살기여도 좋고, 확실한 인맥도 분명 도움이 된다.
넷째, 완주가 목표인가? 아니면 순위에 드는 것이 목표인가?
레인이 나눠져 있는 수영장과 달리 바다 수영대회는 한마디로 먼저 가는 놈이 임자다. 그러므로 순위에 드는 대회에서 입상이 목표라면 출발부터 맹렬한 몸싸움도 각오해야 한다. 게다가 헤엄치는 중에도 치열한 눈치싸움과 힘 조절이 필요하다. 막판 스퍼트를 위해 최후에 쏟아낼 힘을 아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긋하게 “난 참가와 완주에 의미를 두겠다”는 마음이라면 접근방식부터 달라진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다. 누가 뭐라 해도 뚜렷한 자신만의 방향성을 갖고, 다양한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는 사람과 눈치껏 몸을 사리고 대충 시키는 일만 마지못해 하는 사람. 이 두 부류가 받아드는 결과는 천양지차가 날수 밖에 없다. 바다에서 그렇게 몸을 사리다간 완주는 고사하고 지지부진하다 순식간에 잠수함 처지가 될 수도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다만 우리네 삶이, 그리고 직장생활이 100M 단거리가 아니고 장거리 경주이니만큼 자신의 체력과 호흡을 잘 관리하면서 헤엄쳐 나가시기를 바란다.
사진 GettyImages / Multib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