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바다에 몸을 던져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불안전한 존재임을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주변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려 드는 종족……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외로운 존재, 고독한 존재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1950년대에 출간한 그의 저서에서 ‘고독한 군중’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는 대중사회 속에서 타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내면의 고립감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을 말한다.
그는 사회 구조 변화에 따른 세 가지 타입의 인간 유형을 제시하였는데, 전통사회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중요시하는 ‘전통 지향형(tradition directed type)’, 가족에 의해 학습된 내면적 도덕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하는 ‘내부 지향형(inner directed type)’, 동료나 이웃 등 또래 집단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외부지향형(other directed type)’이 그것이다.
고도 산업사회에서 탄생한 ‘외부지향형’ 인간들은 타인들의 생각과 관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집단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사교성과는 달리 내면적으로는 고립감과 불안으로 언제나 번민하는 ‘고독한 군중’이다. 이는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런 인간의 본성이 가장 잘 투영된 문화적 현상이 바로 SNS(사회관계망)이다.
SNS의 등장은 ‘고독한 군중’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인스타그램 등등…… 엄청난 열풍을 몰고 온 SNS는 이제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문화로 완벽히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아침에 기상해서부터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쉼 없이 울려대는 알림음에 귀를 세우고, 빨간 깃발에 눈길을 준다. 본격적으로 판이 벌어지면 손가락들이 자그마한 핸드폰 자판 위를 춤추듯 날아다닌다. 그뿐인가?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대화의 흐름을 놓칠까 전전긍긍하기 일쑤다. 뭐 그런다고 핸드폰이 폭발할 것도 아닌데.....
이러다 보니 부작용도 발생했다. 관계망이 강화될수록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드러나는 SNS가 오히려 족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씨줄 날줄로 빽빽이 연결되어 있는 인간관계망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자유의지를 갈망하게 된다. 물론 나 역시 가끔 카톡이나 밴드를 통해 가족이나 친구들과 소식을 나눈다. 즐거움과 반가움, 그리고 정보교류 등 의미를 찾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대화의 상당 부분이 시간 때우기 내지 돌아서면 헛헛한 그런 얘기들로 채워졌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생각 때문일까? 내 핸드폰의 알림음 사운드는 꺼진 지 꽤 오래되었다. 게다가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엎어 두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완전히 나의 시야나 관심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수시로 다시 뒤집어 눈팅을 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최근 ‘혼자류(類)’ 서적과 관련한 신문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등 유독 ‘혼자’가 강조된 책들이 강세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고독의 힘’, ‘고독이 필요한 시간’ 등도 같은 맥락에서 독자의 선택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 혼자 ~’ 관련 3종 책을 가장 많이 구입한 구매층은 전체 구입자의 47.5%가 40대라 한다. 40대 여성을 필두로, 30대 남성이 그 뒤를 따랐다. ‘시간을 좀 더 생산적으로 쓰려는 30, 40대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고, 이 연령대의 1인 가구 증가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 표정훈 한양대 교수의 부연 설명이었다.
마치 ‘고독한 군중’들이 군중 속에서 다시 고독을 찾아 나서고 있는 꼴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벽히 자신을 군중과 격리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선택적 고독인 셈이다.
영어에는 고독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두 단어가 있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
고독(Solitude)은 스스로 관계에서 물러나 자신과 더 깊어지는 자의적이고 능동적인 홀로 있음을 뜻한다. 이와는 달리 외로움(Loneliness)은 의도하지 않게 주변과 단절되어 절망과 공허함을 느끼는 감정이다.
자의적인 선택에 의한 내적 충만의 결과가 고독이라면, 외로움은 타의적 제한에 따른 내적 공허함이 결과로 돌아온다.
결국 고독은 외로움도, 도피도 아니다. 고독은 자신의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며 삶을 채워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어쩔 수 없이 홀로 된다면 외로움에 빠지지만 스스로 홀로 있음을 선택하면 더욱 충만한 삶과 해후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길들여지지 않는 꿈을 간직한 이라면……
만약 끊임없이 자신의 테두리에 도전하는 이라면……
만약 내일을 위해 오늘의 시간을 고민하는 이라면……
고독의 바다에 과감히 몸을 던져보자.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내면의 심연을 찬찬히 바라보자.
처음엔 휘휘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니체의 말처럼, 내면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심연 속에서 벌거벗은 스스로의 내면을 보고, 듣고, 느끼고…… 그러다 어느 순간 살아 있음에,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현실을 깨치고 나갈 지혜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내가 나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 BG: 군중속의 고독, 박미숙, 아시아 영아티스트 축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