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스토리텔링 구조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스토리가 감동적이야, 참 잘 만든 영화 같아”
“주인공들의 연기가 정말 훌륭했어”
“뭐지? 이 아쉬움은 뭐지?”
“아 찝찝해, 돈만 버렸네”……
때로는 잔잔한 여운이 오랜 시간 곁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또 영화를 보는 내내 오감이 충분히 즐거웠음에도, 막상 극장 문을 나서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나의 경우, 휘황찬란하고 삐까번쩍하는 특수효과로 가득 찬 오락영화를 보고 나온 뒤가 좀 그렇다.
이런 아쉬움이 남는 이유가 무엇일까? 배우가 연기를 못해서? 아니면 무대 장치나 소품들이 시원찮아서? 또는 의상이나 분장이 어울리지 않아서? 그것도 아니라면 특수효과나 CG가 부족해서? …… 아니다. 핵심은 바로 스토리에 있다. 특수효과나 CG로 가득 찬 오락영화이든 작가의 예술적인 관점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 영화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스토리는 사람의 이해를 이끌어내는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스토리텔링은‘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구조를 가진다. 이는 인간의 감정적인 레벨에서 작동하는 구조다. 관객들은 캐릭터와의 감정이입과 사건들이 제시해주는 정보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토리 속으로 빠져든다. 사건이 발생하고 발전해 가다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되고, 모든 갈등 요소들이 해결되면서 현실로 돌아오는 구조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 시대의 전통적인 고전작품이나 동화의 스토리 라인이다. 그리고 모든 영화나 드라마 구조의 기본 바탕이기도 하다.
스토리텔링의 구조는 우리네 삶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한 평생을 산다. 본인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그건 아무 상관없다. 어차피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누구나 자기만의 삶의 스토리라인이 있다. 시작해서 발전하고 클라이맥스에 달했다가 서서히 무대에서 사라진다.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은 동일하지만 시기나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게다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운명적인 스토리라인도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기엔 흙수저, 금수저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한다. 누구는 일생 동안 탄탄대로를 달리는 이도 있고, 누구는 벼락을 맞아 승승장구하거나 패가망신을 하기도 하고, 누구는 단명살로 사건, 사고에 연루되어 비명횡사하기도 한다. 일생을 무탈하고 무난하게 살아가는 이도 있고, 좌충우돌에 악전고투를 거듭하며 근근이 연명하는 이도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나름대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면서 일생을 살다 간다.
넓게 보면 한 사람의 큰 인생 스토리라인이 있고, 운명 같은 각각의 사건, 사고도 원인과 결과가 있다. 작고 다양한 수많은 스토리들이 모여 인생 줄기를 이루고 결국 한 사람의 인생 스토리로 완결된다. 인생에서 우리 자신은 주인공이자 감독이다. 감독은 영화에서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다. 감독으로서 나의 인생극장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의미다. 내 영화가 만들어지고 난 후 다른 요소들, 예를 들어 상대편 주인공이나 프로듀서, 조명이나 의상 책임자를 탓한다고 해서 내 인생 스토리가 바뀌지는 않는다. 내가 서있는 현재의 점에 충실하면서 미래의 점을 그리고, 그들을 선으로 잘 연결해 스토리라인을 성공적으로 완결해 가는 과정. 그게 주인공이자 감독이 해야 할 역할이다.
어쩌면 인생은 점과 선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점이란 작고 둥글게 찍은 표를 뜻한다. 명리학에서 점이란 중요한 용어다. 팔괘, 육효, 오행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과거를 알아맞히거나 앞날의 운수, 길흉 등을 미리 판단하는 일이다. 삶에서 보면 점이란 말 그대로 한 지점이다. 흔히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나의 운세를 판단해 보는 일을 ‘점을 본다’ 혹은 ‘점을 친다’라고 한다. 점은 한 곳으로 기운을 모은다는 의미기도 하다. 역학에서는 온 신경을 한 곳으로 모아 어떤 사람의 과거나 현재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다. 정신을 집중하여 어떤 무아지경에서 신적인 능력을 보이는 무속인들의 행위도 이와 유사하다.
점이 이어지면 선이 된다. 우리네 인생도 순간의 점들이 모여 선으로 연결된다. 선과 선이 이어지면 면을 이룬다. 면은 입체다. 면은 사물의 겉으로 드러나, 일정한 넓이를 가진 부분이다. 인간의 삶은 입체로 깊이가 있다. 그래서 삶은 단순하지 않다. 입체가 되면서 다양한 주변 환경이나 상황과 병립하게 되는데, 그 방법이 서툴면 서로 부대낄 수밖에 없다. ‘따로 또 같이’의 가치를 항시 염두에 두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 이유다.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움직이려면 힘이 필요하다. 힘을 내고 유지하려면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보충되어야 한다. 에너지가 공급되면 내면에서부터 새롭고 다양한 힘이 솟아난다. 도전력, 열정력, 추진력, 결단력, 집중력, 창의력…… 이런 다양한 힘들이 점과 점을 이어 선을 이루고, 나아가 면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인생 스토리 라인을 구성한다.
주인공으로서, 감독으로서 나는 어떤 인생 스토리라인을 그려 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