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Deadline)을 지켜라
이제 막 까까머리 고삘이 티를 벗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대학 초년생 시절, 멋모르고 학보사 기자 시험에 도전했었다. 결국 신문의 ‘ㅅ’ 자도 제대로 모르던 난 견습기자라는 꼭지를 달고 학보사 한 구석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그 후 매일같이 계속되던 하늘 같던 선배들의 하드 트레이닝. 한동안은 기사 쓰고, 혼나고, 기합 받고 또다시 쓰기를 최종 오케이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당시 철저하게 배웠던 기본 중 하나가 바로 “데드라인(Deadline)을 지켜라”였다. 각 기사면 그리고 담당별로 철저히 분업화되고 일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각 담당자가 정해진 데드라인을 지키는 것은 지상과제이자 철칙이었다. 때문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사 송부 시간은 반드시 지켜야 했고, 교정 작업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인쇄소에서 밤샘 작업을 하며 오타나 문제점을 찾아내곤 했다. 최종 인쇄가 이루어지고 내 손위에 들려있는 신문의 비릿한 내음이 무척 향기롭다는 생각에 젖어들곤 하던 기억이 있다.
방송국에서 팀장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내가 담당했던 컴퓨터 그래픽팀은 여러 방송 채널과 각종 프로그램과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 제작을 책임지고 있었다. 채널 ID와 같은 각 채널별 네트워크 디자인(Network Design)은 주기적으로 기획하고 제작하는 기본업무였다.
게다가 각 프로그램 담당 프로듀서들이 긴급하게 요청하는 업무, 예를 들어 각종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비주얼 이펙트나 오프닝 타이틀, 엔딩 자막 등을 제작 지원하려면 팀원들이 철야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방송 직전까지 초치기로 최종 편집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제시간에 준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방송사고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송 역시 데드라인을 지키는 것이 생명과도 같다.
지금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기획, 관리, 마케팅, 구매 등등 여러 업무를 총괄 담당하고 있다 보니 여러 개의 데드라인이 항상 머릿속에 복작거리는 경우가 많다. 점점 떨어져 가는 기억력 때문에 데드라인을 놓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수시로 메모를 하고 기록을 한다. 덕분에 내 책상 위 달력과 수첩, 핸드폰의 일정 보기는 언제나 낙서와 같은 여러 기록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 및 일정 관리를 하는데도 가끔씩 빼먹는 일이 발생한다. 임기응변으로 대안을 찾을 수 있다면 모를까 그조차 어렵다면 정말 난감한 상황에 몰리곤 한다.
여러분의 일상은 어떠하신가? 일상에서 시험을 준비하거나 각자가 현재 맡은 업무를 처리할 때 이 데드라인은 어떻게 적용되는가? 아마도 심심찮게 겪는 일상이 바로 막판에 몰려하는 벼락치기나 밤샘 작업이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들 중 이러한 모습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우리들 대부분이 익숙한 ‘미룸 신’ 즉, “좀 있다 하지”, “나중에 하지”, “이것만 하고 하지”…… 이 미룸 신이 강림하면 십중팔구는 데드라인에 몰리는 경우를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생에서의 데드라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떤 일이든 때가 있는 법이다. 학습을 통해 능력을 배양해야 할 때와 실무를 통해 경험치를 높여야 할 때, 누군가를 이끌고 가르쳐야 할 때 등 자신의 나이와 경륜에 맞게 반드시 해야 할 일과 그 시기가 있는 것이다. 제 때 해야 할 일을 미루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어차피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 번뿐이다. 그래서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이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빠삐용이 사막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입니다. 꿈을 꾸는 듯한 상황에서 재판관인지 배심원인지 모를 사람들이 심문 중이지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던 상황인지라 자기는 무죄라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하지만 재판관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다른 죄를 들어 빠삐용에게 유죄를 선고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을 허비한 죄’입니다. 이 판결에 빠삐용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요.”
당신은 빠삐용일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