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목표관리의 시대다
뉴욕의 예술대학인 SVA(School of Visual Arts)의 그래픽 디자인 학과에는 ‘VISUAL LITERACY’라는 유명한 수업이 있다. 이 수업은 창의적이고 흥미진진한 과제와 기발한 결과물로 학생들 사이에 그 인기가 가히 하늘을 찔렀다. 매주 심혈을 기울여 제출한 학생들의 작품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공개가 되고, 학기가 끝나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작품들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때문에 학생들의 동기부여와 경쟁심리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자신의 이름과 작품이 책에 등장되어 검증된 포트폴리오 역할까지 해주는 셈이니 밤잠을 설쳐가며 기를 쓰고 달려들 수밖에.
(이 수업은 강산이 몇 번 바뀐 지금도 그래픽 디자인 학과의 전공필수 과목이란다)
‘TYPOGRAPHIC PORTRAITS PROBLEM’. 이는 자신의 이름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과제였다.
곡예사(acrobat), 양서류(amphibian), 마술사(magician),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뉴욕 자이언츠 풋볼팀 라인배커(linebacker for the New York Giants), 방사능이 누출되었던 러시아 마을인 체르노빌에 사는 사람(I live in Chernobyl, Russia), 딸꾹질하는 사람(I have the hiccups), 사고를 잘 당하는 사람(I’maccident prone), 알러지를 가진 사람(I have an allergy) 등등 황당하면서도 재치가 번뜩이는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기발하고 톡톡 튀는 답변들이 쏟아져 나와 제출한 학생의 이름이 호명되고 다른 학생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았다.
그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카멜레온(chameleon)이었다.
질문: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창의적인 디자인을 상상하겠는가?
아래는 선정된 몇몇 답을 뽑아 보았다.
여러 답들:
(출처: SVA Visual Literacy)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답변은 바로 이 작품이었다.
답:
“뭐가 보이시나?”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정말인가? 아니 좀 더 자세히 보시라.”
“………”
“그래도 안 보인다고……?”
“당신 눈에는 가운데 하얀 공간에 있는 카멜레온의 몸통과 꼬리가 보이지 않는가?”
“………”
“아~ 죄송하다.” 여러분은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의 군중들처럼 ‘우이쒸~! 아니 도대체 뭐가 보인다고 그래?’라며 애써 고민할 필요는 없다. 사실 그냥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바탕일 뿐이니까 말이다.
그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학생들의 반응이 이랬다. 잠시 ‘이게 뭐지?’ 하는듯한 무거운 정적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는 곧 커다란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이 답변을 한 학생은 잔머리만 굴리는 정말 게으른 무대뽀 성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카멜레온이란 대상이 절묘하게 녹아든 최상의 답변을 제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루에 열두 번 피부 색깔이 변하고 그 변화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는 카멜레온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아닐까? 카멜레온이 피부 색깔을 바꾸거나 패턴을 만드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상황과 환경, 자신의 목적과 목표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고 적응하는 것이다. 참으로 어마 무시한 자기관리 능력이 아닌가?
“최후까지 살아남는 종은 강한 종도, 가장 지적인 종도 아니다.
바로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 찰스 다윈
기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 하나도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였다. 기업의 존재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손꼽힐 수 있다. ‘고객 만족’, ‘가치 창조’, ‘이윤 추구’, ‘가치 실현’ 등등. 하지만 결국은 ‘Build to Last’ (기업의 영속성 - 짐 콜린스의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의 원 제목) 즉,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다. 불확실성과 혼돈 속에 모든 물상이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시대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패러다임이 뒤집어지는 외줄 타기 환경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아 성장하는 것은 모든 기업가의 꿈이자 기업의 지향점이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구나 살아가는 목적이 있다. 목적은 삶의 방향성을 의미한다. 또 매 순간 새로운 목표를 세우면서 산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원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환경 역시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얘기다. 과거서부터 쭉 해왔거나 현재에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미래에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외골수 옹고집이 무조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상황과 환경, 그리고 목적과 목표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하는 카멜레온식 자기관리 능력이 현대와 미래 사회를 살아가기엔 훨씬 더 유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BG Image 출처: SVA Visual Liter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