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아침. 오늘도 익숙한 풍경 하나와 마주했다. 올 블랙으로 코팅한 듯 새벽 햇살에 반짝이는 세련된 리무진의 모습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무도 당당한 리무진 뒤로는 대형 버스 한 대와 몇 대의 중소형 차량들이 깜박등을 켠 채로 부지런히 행렬을 쫓고 있다. 장의행렬이다. 서울 추모공원이 지척에 있어, 한적한 새벽 시간을 택해 화장터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분주하다.
수년 전 이맘때 보았던 휘황찬란하게 장식한 리무진의 모습이 떠오른다. 번쩍거리는 리무진의 외관에 얹힌 화려한 꽃 장식을 보며 TV에서나 봄직한 임금님의 현대판 꽃상여를 상상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저것이 고인의 살아생전의 모습일까? 혹 남겨진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과 애정의 표현일까? 그도 아니라면 단지 누군가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과 욕구의 결과물일까? ……
서울 양재 근처의 집에서 인천에 있는 회사까지는 약 50Km 정도의 거리다. 바지런한 면도 한몫 했겠지만 차량 정체를 좀처럼 참지 못하는 급한 성격은 출근 시간을 훌쩍 앞당겨 놓았다. 사실 수영으로 매일 아침을 열던 때는 출근시간이 이보다 훨씬 더 빨랐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하늘을 밝히는 별을 바라보며 운전대를 잡는 것이 흔한 일상이었으니까.
잠시 후면 한 줌의 재로 변할 고인을 위해 성호와 함께 가벼운 목례를 올렸다. ‘누구이신지는 모르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이 별에서의 이별’이 있다. 작가는 30대 중반의 여성 장례지도사다. 그녀가 담담히 풀어내는 다양한 삶과 죽음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 들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구구절절한 죽음의 사연들에 나는 결코 담담할 수가 없었다. 폭풍 같이 몰려드는 감정의 거센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기를 여러 번. 어느 순간, 마음의 찌꺼기처럼 남아 주말 내내 불편함을 주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몹쓸 자존심 좀 더 세워보겠다고 아웅다웅 대던 내 모습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내가 이제까지 저런 멋진 리무진을 타 본 기억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언젠가 잠시 구경은 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자리에 앉아본 것 같기도 하고…… ‘탔던가? 안 탔던가?’ 뭐, 어차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미국 유학시절, 나에게 리무진은 부의 상징과도 같았다. 시가를 물고, 술잔을 든 거만한 모습으로 예쁘게 차려입은 양 옆의 미녀들로부터 시중을 받고 있는…… 이런~!! TV 드라마나 잡지 광고를 너무 몰입해서 보았나 보다. 물질만능과 쾌락주의에 철저하게 세뇌된 꼴이라니. ㅋ~~
그런데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사람은 누구든지 일생에 한두 번 정도는 리무진을 타본다”라고. 결혼할 때와 죽었을 때가 바로 그 때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혼할 때는 차치하고서라도 죽어서 시신으로라도 한번 타볼 수 있다는 말이 뇌리에 깊이 남았었다. 일생에 한번 타보는 리무진인데 혼령은 이미 떠나가고 육신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황이라니…… 저승 가는 길에 뭐이 그리 요란을 떨어야 하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고단한 세상 잘 살고 갔다는 의미로다 축하와 환송을 겸해 사치 한번 부려보는 것쯤 어떠랴 싶기도 하다.
아침에 장의차를 보면 재수가 좋다고? 글쎄. 그런 건 난 모르겠고, 그보다는 이른 아침 시간의 여운과 다짐이 나머지 시간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드는 촉매제 같은 역할이 되지는 않았을까?
운전대 너머 안개가 자욱하게 낀 관악산 줄기를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빠져든다.
'굳이 요란한 장식과 치장으로 꾸미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어쩌면 허황될지도 모를 야무진 결심을 하며 엑셀에 힘을 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