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
29개월 저희 집 대표 애교쟁이 첫째는 평일 아침마다 묻습니다.
"엄마 오늘 어린이집 가는 날이에요? OO이는 어린이집 가기 싫어요."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이 충분히 즐거운 것과는 별개로, 아직 아이에겐 세상의 대부분 혹은 전부를 차지하는 '엄마'라는 제1양육자와 함께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알기에 저의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10월 우리 아이가 원하던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이 10일이나 하늘에서 뚝 떨어졌습니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엄마와 하루 종일 함께하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에 10월의 연휴는 꿀과 같은 시간이었을까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세 살 아이 셋을 가진 엄마인 저에게 기나긴 연휴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아닙니다. 10일간 아이들의 삼시세끼 식사메뉴와 두 번의 간식메뉴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고, 세 아이의 "내 엄마야!" "내 엄만데!"라는 '엄마 다툼'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아직 사회성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세 살 아이들이라 셋이 즐거이 어울려 노는 아름다운 모습은 잠깐일 뿐 대부분의 일상은 아이들 사이의 다툼과 갈등이 일어나면 중재해야 합니다. 아이가 없던 시절 느지막이 일어나 부모님이 차려주시는 아침을 겨우 먹고 할 일을 느긋하게 찾아보면 일상은 제게는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들과) 오늘 뭐 하지?'를 생각해야 하며, 다양한 가족구성원들과 만날 계획을 착오 없이 세워야 하는 평소보다 바쁜 시간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번과 같은 긴 연휴를 앞둔 시점에서 저는 마음에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할 정도로 긴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긴 연휴는 예상과 같이 힘들긴 했지만, 오직 힘든 시간만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생각한 몸의 고됨을 넘어서는 아주 가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세 살 아이들의 귀여움은 벽창호의 마음도 녹일 정도이니 온 가족이 모인 자리가 웃음으로 가득 차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춤춘다며 엉덩이만 조금 씰룩여도 함박웃음을 지어주는 가족들 덕에 아이들도 넘치는 사랑과 귀여움을 받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이모 등 다양한 가족 구성원을 만나 온갖 귀여움을 받은 아이들의 얼굴이 사랑으로 가득 차 얼굴이 반질반질해진 것 같은 것은 제 기분 탓일까요.
저는 왜 이렇게 긴 명절에 긴장했던 것일까요. 좋은 점을 미리 보지 못하고 '힘들 것'에 대한 걱정만 했던 걸까요. 아마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 저는 가족의 가장 아랫목에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집 안 어른들의 사랑으로 가장 따뜻한 밥을 먹고,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살핌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제 아랫목은 제 아이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아마 긴 명절과 연휴를 맞이하는 제 마음은 이제는 제 차지가 아닌 아랫목을 그리워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랫목을 내어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전보다 불편하고, 힘든 일이긴 합니다. 이제는 아랫목에 가만 앉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아랫목 뜨거울 세라 차가울 세라 살피기 위해 발로 뛰어야 하는 어쩌면 가족 중에 가장 바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주 극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에게 아랫목을 내어주니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은 진정으로 따뜻합니다. 집 안에 둘러앉은 건강한 부모님이 계시고, 아랫목에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재롱떠는 아이들이 있으니 제 마음도 꽉 차다 못해 넘칠 지경이지요. 문득 생각을 해봅니다. 시간이 지나면(바라건대 되도록 아주 많이 지나면) 부모님이 지금과 같은 건강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켜주실 수는 없을 것이라는 슬픈 사실을요. 혹은 차차 자라나 자아가 생겨날 아이들이 먼저 아랫목을 답답해하고 가족들과 모여 앉는 시간을 꺼리게 되는 날이 먼저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또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마음속 제 집이 가득 차있는 지금이 아마도 제 인생의 정점일지도 모르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