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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Apr 17. 2023

남에게 바라는 대로 너희도 하라

그저 기도 92 - 대접 받고싶은가?


돌아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가며 하나씩 쌓은 우정의 돌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생명의 공급줄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총각시절 들쑥날쑥 1년을 못 넘기며 짧으면 석달 길어도 한 해를 못채운 떠돌이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변변치 못한 학력 경력 인맥을 가진 당시 많은 가난한 청년들이 흔히 그랬던 시절입니다


그때도 취업 실직 취업 실직의 퐁당 퐁당 징검다리 직장생활로 돈도 바닥나고 집세며 연탄값도 없어 쌀도 사지 못하는 코너에 몰린 암담한 초겨울 이었습니다


집주인 할머니 얼굴 보기도 미안하고 행여 마주치면 월세 달라고 할까봐 심란해서 새벽 일찍 수락산길을 올라갔습니다. 집에 있어봐야 해먹을 음식재료도 없고 연탄불도 꺼진지 며칠된 싸늘한 방이 더 춥게 느껴져 햇살이라도 보자고 나섰지요


온 산을 헤매고 다니다 지쳐 해가 중천에 오른 후에 살금 내 자취방에 들어섰는데… 방문을 열자 3-4키로 정도 크기의 누런 종이 봉투에 쌀이 담겨있고 메모지 한장이 그 위에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왔다가 못 만나고 바람 한줄기 남기고 갑니다!’ 라는 내용의 글. 이렇다 저렇다 힘내라 뭐해라 말 한줄도 없는 그 쌀은 당시 나가던 교회의 전도사님이 주고 가신 것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직장을 잃은 실직자라는 말도 안했고 돈 떨어져 방세도  못내고 쌀도 없다는 말 안한채 3일 가까이 굶다시피 지내는 중인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습니다


망가진 생활을 보이는 것은 굶기보다 힘들던 총각시절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먹을 양식을 남들 보지 못하게 이른 아침 놓고 간 그 배려와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셋방에 살며 작은 봉급을 받는 전도사님 생활도 어떨지 짐작되었습니다. 아마도 십중팔구 전도사 사모님 몰래 담아서 왔을 겁니다.


목메이는 밥을 해서 먹고 기운을 내어 다시 직장을 구해 그 어려운 수렁을 탈출했지만 그날 내 기억에 깊이 새겨진 몸과 마음의 양식은 두고 두고 비슷한 고생을 할때면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감동과 고마움이 내 신앙심의 바닥에 어떤 형태로든 자리잡아 나중에 나보다 더 어려운 군 제대후 갈 곳도 잘곳도 먹을 것도 없어 힘들어하던 형제에게 살림 모두와 방 보증금까지 통째로 다 넘겨주고 나는 새 직장을 따라 가방 하나 달랑 챙겨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 생색 내지 않고 언제 갚을 필요도 없다는 말과 더불어!


작은 사랑받은 경험은 내 모자란 성품을 채우고 손톱만한 변화라도 불러오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받아보고 느끼지 않으면 설교집을 백권보고 성경구절을 달달 외워 전하고 다녀도 진심어린 행동이 나오기 힘들 그런 체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리고 심한 병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딱해 눈물을 글썽이며 치료해주시는 성경의 장면을 볼 때 너무도 생생한 그 감정이 내게 몰려와 눈물이 핑돌아 더 읽지 못하고 남들 몰래 눈을 감았던 기억이 납니다. 무슨 기적을 보여주는 과시가 아니라 측은함을 견디지 못하며 우시는 주님의 그 마음은 세상에서 보기 힘들어진 사랑이고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복이고 로또 이상의 행운임을 자주 고백합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나의 일상은 얼마나 외롭고 삭막하며 경쟁과 홀로서기만 존재하는 불쌍한 삶이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오싹합니다


부디 달팽이나 거북이 걸음보다 느릴지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앞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내 본성만으로는 나이를 두배 더 먹도록 살아도 택도 없고, 열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해보이기 때문입니다.


  2023. 4. 17. 맑은고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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