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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Apr 22. 2023

잘 안되는 것 중 하나



그저 기도 97 - 잘 안되는 것 중 하나


최선을 다한다! 는 말, 하기도 듣기도 참 좋은 말이지만 꾸준히 실천하기란 무지 힘든 말이다. 시한을 정해 잠시라면 할 수도 있다. 또는 어떤 일 하나라면 가능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상에서 계속 그렇게 살기란 해보니 참 안되더라. 그렇게 잘 안되는 것중의 하나가 이런 거다.


원수의 이름은 바닷가 모래밭에 새기고 도움받은 이름은 바위에 새기라! 는 말. 많이 들었고 어떤 의미인지도 아는데 잘 안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원수를 위해서가 아니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며 내 속의 괴로움을 없애는 길이라서 그러는 것도 아는데도 잘 안된다


사실 마음속에 한 번 뿌려진 미움의 씨앗은 생명력이 너무 강해서 뿌리가 자라고 싹이 나서 자라버리면 이후 열번 백번 지우려고 해도 쉽지 않다는 거 살면서 많이 경험도 했다.


아내는 내가 누군가를 한 번 미운 사람으로 찍으면 평생 간다는 걸 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농담 비슷하게 늘 아빠를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나는 한 번 마음이 돌아서면 아주 오래가고 깊다. 그것도 천사 아니면 악마, 이렇게 극단적으로 받아들이고 표나게 대한다고 한다. 어느날부터 아이들이 눈치를 채고 내가 무언가에 단정적으로 말하면 또! 또… 그런다. ‘죽을 때까지, 절대!’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결별을 선포하는 내 말투 탓이다.


진짜로 심각하게 가끔은 ‘내 기억력을 좀 둔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제목으로 하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사람들의 기억력은 나쁜 일은 아주 오래도록 깊이 기억하고 심지어는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쁜 일 좋은 일은 그렇게 기억하는 법이 잘 없다. 아마 열배 백배는 더 큰 감동적이어야 비슷하게 오래 기억할거다.


그러니 절반도 훨씬 넘는 많은 나쁜 일, 나쁜 사람들 기억이 내 속에 쌓였을거다. 그런데도 아직도 기도제목으로 못 정하는 것은 그 기억들이 없어져서는 안될 이유가 떠올라서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간에.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는데 아무 기억도 없는 무용지물 늙은 몸뚱이만 남는다면 그 얼마나 슬픈가? 서럽고 쓸모없으며, 웃음도 눈물도 없는 존재라면 그건 바로 산송장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그러니 나쁜 기억을 포함해서라도 지난 일을 간직할 필요가 있다


수십년 병원생활중 스쳐간 많은 사람중에 절반은 넘는 사람들이 나를 화나게하고 원수의 반열에 기억되었다. 진실은 고맙고 좋은 사람들이 절반도 더 넘게 많았을지 모르는데 내 기억은 실재와 상관없이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그 기준이나 이유가 얼마나 웃기냐하면 무슨 멱살잡고 경찰서 갈 정도로 큰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 없을 때 한 말이나 지나가며 던진 말한마디, 어느날 일어난 어떤 사소한 일들 때문에 원수처럼 단정된 거다. 지나서 남들에게 말하면 어처구니가 없는데 당시 내 감정과 기억에는 그렇게 남았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화장실을 오래 쓰는 거야? 자기 혼자 전세 내었나?’ 라던가 ‘내가 보고 싶은 채널로 돌려요!’ 라는 그런 말에 난 화가 났고 못 배워 처먹은 사람이라고 애꿎은 아내에게 욕을하며 평생 미워할거야! 라고 말하곤 했다. 그게 고작 원수로 분류한 이유가 되다니… 그럼 일생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새겨둘 바위는 또 얼마나 필요했을까?


간호사들중에 아직 서투른 사람은 아내의 소변주머니 시술에 실수도 하고 덤벙대어 내게 찍힌 사람도 있었다. 채혈하는데 핏줄을 못찾아 서너번 찌르고 또 시도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 하시고… 딴 분에게 부탁하지요?’ 말은 감정을 무지 꾹 누르고 하지만 얼굴표정과 말투는 감출 수 없었다. 심서잉 착한 아내는 특히 잘 알아차리고 중간에서 안절부절했다. 나보다 당사자인데도 아픈 건 둘째고 아슬아슬 조마조마 맘고생을 하면서… ‘다시는 저 간호사에게 맡기나 봐라! 저 간호사 안 나오는 날 해달라고 할거야! 실제로 그렇게 피해가기도 했다.


만약 내가 그 간호사의 부모나 배우자, 가족이었다면 그 간호사는 얼마나 속상할까? 누구나 서투른 처음이 있고 오래되어도 잘하는 거 못하는 거 따로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그런 상황이 되었는데 다시는 기회도 안주고 비난만 받는다면 내맘은 어떨까?


그런 생각이 미치자 그랬던 내 방식과 내 기억속 사람들에게 많이 미안해진다. 한번 못지키고 어긴 것 때문에 평생 불신을 당하고 잘 못하는 분야의 실수 때문에 평생 기회를 박탈당한다면…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를 하라고 하신 분은 진짜로 나에게 그렇게 용서를 하셨다. 세번이나 잡혀갈까봐 두려움때문에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도 용서하시며 자기 양을 먹이고 돌보는 큰 사역을 부탁하셨다. 그 너그러운 은총은 베드로만이 아니고 나에게도 주시고 이천년에 끝난 게 아니고 지금도 주시는 은총이다.


나는 너그럽게 받으면서… 내 주변 사람들과 내 아이들, 내 아내에게는 칼같이 단죄를 한다? 그뿐 아니라 원수와 고마운 일을 반대로 바위와 모래사장에 새기며 산다니.


다시 추억 정리를 해야겠다. 지울 건 지우고 새로 분류하여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혹 실수를 했던 분들에게도 또 믿어주고 기회를 주는 정상적인 사이로 살아야겠다. 그 모든 일과 사람에게 늘 최선을 다하는 건 정말 어렵고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도 결정적으로 그래야 할 이유는 나의 자유와 평안과 행복을 한 순간이 아닌 늘 주시려는 깊은 사랑에서 나온 말씀이기에.  


  2023. 4. 22 맑은고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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