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도 48 - 내 길의 끝에는 벼랑이 있습니다

by 희망으로 김재식

착하게 살아서 복을 받는다고 기뻐하는 날도 있지요

그러나 많이들 그러듯 공연히 어려움에 마주치는 날도

살다보면 당연히 오는 게 오히려 상식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조차 죄없이도

미움을 받고 못난 종교자들의 모함을 받아 죽었습니다


굳이 예수님 아니어도 세상에서는 곧잘

선하게 남을 돕다가 자신이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또 고난을 겪고 감옥에 갇히거나 가난해지기도 합니다

자기 욕심만 채우며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들보다

더 험한 인생을 사는 경우도 쉽게 보입니다

나라를 잃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독립군의 경우

그 후손들까지 대를 이어 가난에 허덕이며

비난과 모욕까지 당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종종 봅니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닥쳐오는

이런저런 사고나 질병도 어쩌면 그럴 수 있지요?

그럼에도 그런 힘겨운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곧잘

비명을 지릅니다. 고약한 원망과 신음을 담아…


“왜 나만 이렇게 당해야 하나요?” 라던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래요? 억울해요!“ 따집니다.

왜 나만 당하지말고 남들도 모두 당해야 당연한 걸까요?

또는 나는 아무 죄도 없다는 확신을 가질까요?

세상에 오는 불행이 꼭 죄가 있어서는 아니더라도

아무 죄도 없이 살았다는 주장은 지나친 오만입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았는 사람은 정말 몇몇 뿐일겁니다


좋은 뜻을가지고 모인 많은 공동체나 신앙 모임들이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악한 세력의 공격을 받으면

예상보다 쉽게 하나 둘 이탈하고 무너집니다

고난을 감당할 용기도 없거니와 유혹을 뿌리지지 못해

스스로 자기를 도망시킬 핑계를 만들기도합니다.

‘이 길은 애당초 문제가 있었어!’

‘처음부터 무리였어, 보통사람은 갈 길이 아녀!’

그렇게 하차하고 편한 길로 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많은 기독교신자들이 천국 가는 길은 좁은 길이고

천국 문은 좁은 문이라고 평상시에는 아는 척 합니다

그러나 정작 삶에서 선호하는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넓은 길을 가기를 좋아하고, 넓은 문을 바라봅니다

심지어 성공한 사람들을 예수 잘믿어 복을 받은거라고

남들에게 사례로 자랑하며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와 목회자까지도 그 성공을 내세웁니다

신자들이 신앙의 목표로 삼기를 권하기까지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심한 잘못도 합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심한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질병의 고통을 겪거나 시험에 낙방하고 실패한사람에게

예수를 잘 믿지 않아서 아직도 고생을 당하는 거라고…

이쯤되면 좁은 길로 가라! 고난을 당하더라도! 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예수는 엉터리 선생이 되고맙니다

아님, 패배주의에 빠진 무능한 선생이 되기 딱 십상입니다.


그러나 오랜 역사는 말합니다

내 욕심과 내 얄팍한 잔머리가 만든 내 길은

끝까지 가면 늘 망하는 길이고 틀렸다는 것을!

그럼에도 넓은 길과 넓은 문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뿌리치기 힘든 지독한 유혹의 길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은 주님이 돕지 않으면 같이 못갑니다

천국으로 가는 문과 길은 산 사람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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