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꿈이 있다. 하루살이라서 더 소중한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아내에게 들이 닥친 희소 난치병. 사지마비라는 극한 상태까지 몰려 목을 빼고는 손가락 끝도 꿈틀대지 못하며, 폐 한쪽, 눈 한쪽을 잃었다. 아내는 대소변 신경이 모두 마비된 채로 남자인 내게 온 몸을 맡기고, 부끄러움만 상실하지 못한 채 몇 년을 병원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천만다행으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좋은 방송국, 좋은 이웃들을 만난 덕분에 가까스로 사경을 향해 질주하던 숨 가쁜 진행을 멈추고 숟가락을 들만큼 한쪽 팔이 회복돼 간다.
오랜 전신마비 침상 생활의 후유증으로 발병한 기립성저혈압은 아내를 30분도 등받이 없이는 생활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있고 종착지는 가까이 다가온다. 이것이 진짜 바라는 소망이라니.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기다림이라니 언뜻 들으면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전혀 반대다. 그 마지막 사는 날까지 웃으며 감사하며 지내고, 남겨질 아이들 이웃들에게 사람은 얼마나 귀하고 만만치 않은 하나님의 형상인지를 증인으로 살다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경제적 형편은 더욱 힘들어지고, 몸도 마음도 많이 바닥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영혼은 담담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도 잘 버텨주며 자기 몫을 감당해주고 있고, 무엇보다 구체적으로 순간마다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고 힘을 보태주는 고마운 분들이 많이 늘어난 덕분에 고마움이 든든하게 우리 부부를 버티게 해주고 있다. 힘들 때마다 주문을 외우듯, '오늘 하루만 생각하자! 오늘 하루만 버티자!' 그렇게 스스로 다짐하며 살다보니 내가 '하루살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새겨졌다. 되레 그게 편하기도 하다. 어느 날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하루살이와 일용할 양식' -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도 자주 고단하다. 왜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만 주실까? 주기도문에도 그랬고 이스라엘백성에게도 만나를 하루치만 주었다. 일주일이나 한 달 치를 주면 서로 편할 수도 있는데... 아마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루단위로 사는 게 가장 이상적이고 행복할거라고 생각하셨나보다. 나도 지난 10년 동안 감당하기 벅찬 상황에서 스스로 하루살이가 되었다. 어느 때는 통장에 잔액이 8700원 뿐인데 병원비는 300만원이 넘게 나온적이 있었고 , 또 어느 날은 200만원짜리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먼저 수납해야만 진행이 되는데 통장에는 아이가 받아온 장학금까지 다해도 기껏 100만원도 안된적도 있었다. 그 모든 짐을 한 번에 떠올리면 너무 심정이 무거워져서 오늘 하루도 살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하루만 살자! 그러면 또 살아진다. 오늘이야 안 굶어죽겠지! 오늘이야 병원에서 안 쫓겨나겠지! 하면서 걱정은 내일로 미룬다. 계산으로는 분명 못사는데 하루씩은 살아진다. 왜? 사람의 계산에는 없는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루살이에게도 사랑 그리고 꿈이 있다
하지만 하루살이도 꿈이 있다. 하루살이도 사랑을 한다. 어쩌면 하루뿐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군더더기 없이 알맹이를 원하게 된다. 말도, 행동도, 그리고 사랑도 희망도 말이다. 그것은 계약도 아니고, 생색도 아니고 진심으로 그만 둘 수 없는 샘솟는 본능이라고 느껴진다. 누가 무슨 상이라도 받을 욕심으로 사는 것이라면 과연 아무도 몰라줄 때도 계속할 수 있을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어떻게 할 것이며, 마냥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되풀이 될 때는 어떻게 견딜까.
나는 오늘도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다. 내일이면 못 만질지도 모르는 아내의 뺨을 만져보고, 등짝도 두드려보고, 아픈 다리를 무 같다고 놀리면서도 주무르고 두드리며 논다. 어차피 하루에는 하루만큼밖에 감당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니까. 그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혹은 생명이든….
그만 둘 수 있으면 사랑이 아니다. 그건 계약이고 투자고, 취미생활이다. 그만 둘 수 없으니 사랑이다. 힘들고 미워서 돌아섰다가도 등 뒤로 아픈 비수가 날아와 다시 돌아서 가볼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마음, 그래서 사랑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고 부부 중 하나의 반쪽 생물이 가지는 숙명인 것이다. 그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묶인 우리 두 사람과 우리 두 사람을 알게 됐다는 이유 하나로 또 우리에게 사랑을 줄 수밖에 없었던 여러 사람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고맙다는 말 열 번도 더 했지만 차마 쑥스러워 못한 "사랑합니다, 사랑해주셔서!" 이 한 마디 더 하고 싶어서….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었던 글을 다시 정리하여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