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으로 김재식 Jan 03. 2020

오늘 마땅히 할일... 누구를 살릴까?

<오늘 마땅히  ... 누구를 살릴까?>

지구에 방사능이 덮쳐   있는 시간이 6개월밖에 없게 되었다. 우주로 탈출을 해야하는데 500 정도 탑승한 사람들이 필요한 산소를 만드는 기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계를 구하려면 당장 오늘 25명이 죽게 내버려둬야하고 그들을 구하려면 기계를 폭발시켜야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윈헌드레드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상황이다. 당장 25명이 죽는  내버려두고 미래의 500명을 살릴것인가? 자신들의 마지막 희망을 걸고있는 500명을 외면하고 눈앞의 25명을 구할 것인가.  결정은 너무 어렵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평생을 괴로운 악몽을 달고 살아야하는 결정이다.

4년전인가? 실재로 대학입시 면접에 나왔던 문제다. 4명이  승용차가 눈길을 달리는  갑자기 도로에 쓰러진 사람을 마주쳤다. 반대쪽에서는 계속 차가 오고있고 옆은 절벽인 피할  없는 상황에서 그냥 치고 가면  안의 4명이 살고  사람을 피하면 몇명이  죽는다. 인공지능이라면 그대로 치고 나가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것인가?  힘든 결정을 묻는 면접문제였다. 인공지능의 한계나 비인간적 선택에 대한 질문.

드라마에서는 산소를 만드는 기계를 폭발시키고 사람을 구한다. “오늘 구할  있는 생명을 구한다라는 주인공의 독백과 함께. 드라마와 달리 현실이라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아마 자신들의 내일 생존 수단을 날려버린 주인공에게 온갖 비난과 책임을 묻거나 원망을 넘어선 복수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빠져 고민하는 사람이 나온다. 예수를 잡아놓고 심문하는 빌라도. 그는 개인 판단으로는 예수를 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죽일수도 살릴수도 있다. 내게 원하는 답을 해주느냐에 달려있다 말했다. 예수님은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당신은 나를 못죽일거고, 하늘이 정해진 계획이라면 나는 죽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라!”  말한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너는 너의 일을 빨리 해라! 나는 나의 일을 해야 한다. 빌라도는 온갖 방법을 찾으면서 유대인들을 회유도 해보지만 당신이 로마와 가이사를 배반하는가? 라는 강경한 유대인들 압박에 결국 예수를 사형에 처한다. 손을 씻고  일에 나는 책임없다! 변명하지만 평생 그를 괴롭히고 역사의 오명이 따라오는 편치 않은 결정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미래의 안정과 풍요를 위해 오늘을 참고 절약하며 산다. 생일날 잘먹자고 일주일 굶으면 어리석다 하지만 생일날 잘먹자고 일주일 절약하면 칭찬을 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을 철들었다. 생각이 깊다. 훌륭하다고까지 한다.  행태에 애매한 경계가 있다. 소위 ‘준비 ‘근심 담처럼 분명한 선이 없다. 명분과 욕심도 그렇다. 어디까지가 박수를 받을 태도고 어디부터가 비난을 받을 일일까?

어쩌면 모든 일에는 하늘이 세운 매우 복잡한 일정과 의도가 있을지 모른다. 망할  같으나 사는 길일수도 있고, 이익이 되는 선택 같으나 손해가 되고, 풍요로운 미래를 확보하겠다고 시도했으나 여러사람이 불행하고 고생만 하다가 망하는 결과가  수도 있다. 누가  선택과 결정에 확실한 보장을 하겠는가.

드라마도 결정했고 빌라도도 선택했고 가룟유다도  실행했다.  결과는  그들에게 돌아가고 후회를 하든지 후회가 없든지 그랬을거다. 하나 남은 면접시험의 결정은 정답이 없었다.  가지 답이 문제가 아니고  이유를 듣는게 의도였다. 장차 인공지능을 만들고  영향을 받고  인재들이 어떤 가치와 기준으로 임해야하는지를 묻는 문제.

나라면... 길바닥의  사람을 살리고 핸들을 돌려 피하는 길을 선택하겠다. 차량에 인공지능을 담는다면 그렇게 논리를 프로그램하고 싶다. 아주 짧은 차이지만 도로의 사람을 치고 가는 것과 절벽으로 돌려서 마주치는 상황에는 먼저와 나중의 시간 차이가 있다. 치고 가는 것은 죽을 확률이  확실하고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주 짧지만 시간도 연장하고 다른 상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차체가 특별하게 단단하거나 어디 걸리거나 에어백이 기능을 잘해주거나 등등.

사실 결과는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준을 따르고 싶은 마음에는  선택이  와닿는다. 내일일은 아무도 모르고 하나님이 계획하고 허락하지 않으면 어떤 일은 안생길것이라는 신뢰. 그리고 모든 일은 당시에는 이해가 안되고 힘들지만 결국은 선으로 완성되는 프로젝트라는 순종의 삶을 간다는.

너무 이해가 안되고 받아들이기 싫은 날들을 자주 맞이하며 살고 있다. 내일이나 몇년 후의 꿈은 도저히 그릴 의욕이 안생긴다. 때로는 그렇게 잘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못해 밉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날마다 오고, 어떤 마음이든 지금, 눈앞의 상황을 수용해서 선택하고 뭔가를 해야만 한다. 몰려오는 파도처럼 오고  오는 시간속에서.

오늘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때론 다행스럽게 최선으로 살거다. 때론 차선으로, 아주 드물게는 최악의 상황도 있지만 어떻게 할지를 정해서. 우리 모두 그렇게 하지 않나? 다만 기준은 다를 것이다. 오늘이 중심이냐  훗날이 중심이냐.  손해를 감수하고도 신념으로 사느냐  압박과 욕심에 밀려 빌라도나 가룟유다처럼 결정하며 사느냐가 선택을 좌우하겠지만.  마더테레사는 그랬다. ‘오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사랑하라.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일을  것뿐이라 할지니라. - 누가복음 17:10]

매거진의 이전글 생명이 이리 약하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