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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May 20. 2020

예수는 내가 믿는데 복은 당신이 받았습니다!

예수는 내가 믿는데 복은 당신이 받았습니다!’

예전 입원했던 병원에서  병원선교회 목사님이 병실로 오셔서 기도를 해주신  있었다. 기도를 마치고 나신 목사님은 아내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자기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는데 기도 중에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아내의 뼈를 유난히 튼튼하게 주셨고,그래서 오랜 세월을 침대에 누운채로 지내는데도 척추가 탈이 없고 독한 약에도 몸의 뼈들이  버티게 해주었다고.

듣고 보니 사실이 그랬다.  병이 워낙 의사들이 독약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자주 맞아야 하는데다 집사람은 더구나 특이한 악성으로 재발을 자주해  년을 연거푸 맞았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에 한번도 안맞는 대용량 스테로이드 주사를...  병을 앓는 환자들이 대퇴부 고관절 무혈괴사증 같은 것이 오고 골다공증이 심해져  부러지고 회복이 더딘 사람이 많은 이유가 바로 그런 특성 때문이다. 아내도 골다공증 수치가 정상치의  배가 넘는 마이너스 4.7 넘어섰지만 아직  버티는  같다. 발목과 하체 허벅지 종아리 등이 부모님께 통뼈로 물려받아 처녀 때는 창피하다고 옷으로  가리고 다니다시피 했지만 이렇게 복이  줄은 몰랐다고 아내도 인정할 정도다.

감사할 것이 많다고 전해준 목사님 말씀이 있고부터 아내는 눈물 샘이 터지고 말았다. 예배를 드리러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줄줄,예배 중에도 줄줄, 찬송을 부르면서도 줄줄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수건을 쥐어 주었지만 그치지를 못할정도로...

-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찬송을 부르며 되돌아보는  맘에도 눈물이 흘렀다. 지금 버티고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좁은 길을 가고 있는  분명하다. 넘어지고 부딪치고 막막하고 답답하고...  병원에서  병원으로 전쟁중도 아닌 멀쩡한 시대에 피난민 아닌 피난민이 되어 떠도는 이런 생활이 좁은 길이 아니면 설마 넓은 길일까? 더구나 병원비 생활비로 집도 날리고 가족은 뿔뿔이 이산가족에 만신창이가 되었으니.  당시에는  달이면 보름은 주사바늘을 꽂고 살면서 망가진 부분보다 성한 곳을 말하는   빠른 상황이니 굳이 보탤 말이 없었다.

찬양 가사대로라면  좁은 길에 어쩌다가도 아니고  동안만도 아니고 밤낮으로 기뻐하는  가능할까? 그러나 분명 한숨과 비탄을 달고 살면서도  끝마다는 일어서고 용기를 얻었고, 그랬으니 오늘까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럼 밤낮으로 기뻐한  분명하고 그건 순전히 주의 영이 함께한  맞다.
그러나... 솔직한  하나의  감정은 내일도 모레도 기뻐하며  좁은 길을   있을지 자신은 없다. 주의 영이 잠시만 함께 하지 않으시면  밖으로 삐긋하여 자빠지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것이고, 답답한 가슴은 터져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는  일어날지도 모른다.

실패 배신의 아픔 때문에 술과 기생 주먹질로 세상에안악골 호랑이 불리며 패륜아 깡패 개망나니가 되어 장날마다 사람들이 그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정도였던 김익두 목사. 그가 회개하고 목사가   부흥회를 가던 중에 언덕을 넘다 잠시 쉬게되었다. 너무 더워 웃옷을 벋고 바위에 앉아 땀을 식이며 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취한 사람이 다짜고짜 때리기 시작했다.  자기보다 먼저 와서 좋은 자리를 차치하고 있냐며 시비를 걸면서 말이다. 김익두 목사는 아무런 저항도 않고  매를  맞은 후에 그가 지쳐 쉬자  취한 사람에게 물었다.

형님,  때렸습니까?”
그래  때렸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형님이 받았습니다.”
“..........”
 사람이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김익두 목사가 말했다.
내가 김익두요.”

 말을 들은   취한 사람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무릎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채로 싹싹 빌면서 살려달라고 빌었다. 주변에 퍼진 악명의 김익두, ‘안악골의 호랑이 그렇게 때렸으니 목숨만 살려주길 빌었던 거다. 예전에는 성도를 겸손의 의미로  형님이라고 불렀던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은 예수도 내가 믿고 복도 내가 받는 것이 당연한 계산처럼 되어가는 시대다. 예수  믿어서  받고 (내가)천국가자!   나간다면 가족까지 정도는 포함하기도 하지만. 불교나 다른 종교는 대부분 자기가 각성하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최상의 목표다. 그러나 기독교는 애당초부터 자유를 주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하나뿐인 아들도 주신 다른이를 위한 종교다. 그래서 때로는 나만 잘한다고 세상이 잘돌아가지 않기도 헌다. 억울한 일도 생긴다. 다른 형님과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관계의 종교이고 이타적 삶을 필요로 하는, 자기 해탈만이 목적이 아닌 세상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다.

지금 좁은 길을 그나마 내가 죽지도 않고 마치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올해도 여전히 걸을  있는 복도 어쩌면 아내의 믿음 때문이다. 예전 기도공동체 만들 계획이 틀어져서 기운이 빠지고 온통 회색빛 비관 불평에 빠져 탁류처럼 세상에 하루하루 떠내려가며  때, 아내는 새벽기도로 하루를 열었다. 그리고  권이나 되는 공책에 성경을 꼬박 필사를 해가며 나를 위해 기도했다. 정말 못나고  잃은채 떠내려가는 내가 속히 예전처럼 회복하게 해달라고...

 기도와 믿음 덕분에 지금 주의 영이 함께 해주시니 복은 내가 받는  맞다. 그래도  년을 조금이나마 버티며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의지하며 사는 것은 아내가  믿고  대가로 받는 은총이다.  겨자씨만한 나의 믿음 때문에 이번에는 반대로 다시 아내가 힘든 투병중에도 절망하거나 두려움으로 날을 보내지 않는 복을 받는  같다. 그런걸 보면 김익두목사님 말씀이 맞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남편)당신이 받았습니다!”라는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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