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48 - '보라빛사랑'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갑상선기능항진증이라는 의사의 통고를 받고 돌아온 아내는

그 날부터 한 달이나 자리에 누워서 지냈다.

서른도 안 된 젊은 나이에 목에 수술자국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병원의사의 말에 돌아서서 눈물을 삼켰다


- ‘그 흉터를 무슨 목걸이처럼 생각할 수도 없고...’


다행히도 수술 않고 고칠 수 있다는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고 정말 나았다.

나는 기쁜 고민에 잠겼다. 소개한 사람에게 감사해야할지, 한의사에게 감사해야할지,

아니면 신에게 감사해야할지 참 헷갈렸다.

정작 지옥에 갔다가 돌아온 듯 병에서 나아준 가장 고마운 아내는 까맣게 잊고

나는 그저 남에게 매너만 챙기는 염치 모르는 남정네가 되어 다시 일에 파묻혀 살았다.


몇 년 후 나는 그런 아내에게 시골 가서 살자며 기어이 직장도 접고 꿈에 부풀어

날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산으로 들로 끌고 다녔다.

친척과 형제들은 다 말리는데 아내는 그저 말없이 철없는 남편을 따라와 주었다.

당장 낙원이라도 생길 듯 들떠서 흥분할 때에도,

땅 몇평, 허름한 헌집 한칸 마련할 돈도 모자라 한숨 푹푹 쉴 때에도,

그저 한숨쉬며 어깨처진 내 손 꼬옥 잡아주며 곁에 있어주었다.


그럼에도 다음 날이면 다시 일어나 또 방황하러 나가는 못난 신랑옆에서

말없이 도시락과 커피를 준비해서 옆 조수석에 올라앉았다.

잠도 채 깨지 않은 어린 두 아들놈 업고 메고 승합차 뒷자리에 눕히며.


많은 세월이 지난 아직도 그 고생은 반도 갚지 못한 빚으로 남았는데

이제 아내는 하양 노랑 꽃피는 마당도, 붉은 노을 별 반짝이는

7년간의 외출같은 시골살이도 접고, 병실에 누워 내 얼굴만 쳐다본다.


보랏빛 사랑 - 나는 언제쯤 갚을 수 있을까? 귀에 거짓말처럼 속삭이던 왕비대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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