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49 - '가을 여자'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아내.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가을 우리는 함께 살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그 뒤로 가을을 열 번 정도 맞이하기 전까지는

아내는 그저 누구나 동반하는 배필과 비슷했다.

적당히 남들보다 못나지도 잘나지도 않게 생겼고

슈퍼우먼은 아니지만 적당히 아픈데 없는 평범한 사람

까탈스럽지도 속터지지도 않는 보통의 사람

시어머니의 며느리요 동생들의 형수였다.


그 뒤로 추가로 가을을 열 번 정도 더 넘기면서는

아내는 많이 달라졌다.

말 없어도 알아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고

부르지 않아도 이미 곁에 와서 늘 나를 살피고 있었다.

갈수록 부족한 게 정말 없었다.

숨김없는 성품으로 숨김없는 나를 보아 주는 날들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호적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남남이 아니었다.


그렇게 남남이 아니게 된 아내가 갑자기 중병이 들었다.

그 후론 가을이 일곱 번, 여덟 번, 몇 번이나 와도 무심히 지나갔다.

계절이 사라졌다.

노란 산수유 피는 봄이 와도 모르고 기뻐하지 않는다.

붉은 단풍잎이 아깝게 다 떨어져 없어져도 외면한다. 슬퍼하지도 않는다.

일 년 365일 추위도 더위도 변동 없는 병실에서 회색바위가 되어간다.


그래도 아내는 처음 가을의 모습으로 내 가슴속에 자리를 잡았다.

붉은 단풍 같은 어여쁜 심성으로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정지된 채 오래오래


가을여자 – 열매를 위해 떨어지고 뿌리를 위해 썩는 가을 잎이 된 사람.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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