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50 - '홀로 선 붓꽃'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또? 아이구, 죽었다...”


밤 1시45분, 아내의 소변을 빼주면서 속으로 그랬다. ‘이젠 잘하면 아침 6시까지는 쭉 잘 수도 있겠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또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보니 시간이 밤 2시 50분, 에게, 겨우 1시간이 지났다.


- ‘오늘도 잠 다잤다. 잠은 언제 자라고? 흐흐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랫말이 있다더니, 나는 심통이 났다. 그런데 동시상영처럼 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가 처음 발병했을 때 비교를 하면 이건 진짜 새 발의 피다. 그때 아내는 구역질과 통증으로 토하면서 괴로워 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나도 꼬박 밤을 앉아서 세우곤 했다.


더 심했던 마음 고생은 마치 속편처럼 그 다음에 계속 이어서 왔다. 아내가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을 때마다, 나는 내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그 무력하고 먼 거리를 실감해야 했다. 아내 혼자서 그 진저리나는 고독의 강을 건너고 그 고통의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했다. 몸의 깊은 통증, 그보다 열배 백배는 더 깊을 마음의 고통, 외로움, 슬픔. 대신 죽어 줄 수는 있어도 덜어주지는 못하는 그 무엇들이 짐작되면서 였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먼저 마음속으로 혼자가 되는 연습을 하라. 반드시 어느 날 닥쳐올 철저히 외롭고 서러운 분리를 인정하면서! 그렇게 그 자리 그 시간을 경험도, 각오도 하지도 않은 채로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눈감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것과 같다. 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해! 말을 쉽게 남발하고, 못지킬 약속을 내뱉는 꼴이다. 그러면서 나 아닌 남의 아픔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아무리 부부인들.


사랑은 누군가를 향해서 혹은 누군가와 함께 가지만 진실로 사랑은 홀로 감당하며 견뎌갈 때만 가능한 길이다. 비록 부부가 되어 둘이서 살아가는 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우선 홀로 성숙하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라고.

억울하고 자신없고 인정하기 싫지만...겪고 보니 맞는 말이더라. 한 대롱에 하나씩 피어나는 붓꽃처럼.

홀로선 붓꽃 – 무더기로 피어도 각자 살아서 피는 아름다운 꽃,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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