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이거 드세요.”
“고맙습니다.”
새로 온 환자와, 그분과 같이 간병인 아주머니가 따라 왔었다.
그런데 이상한 분위기가 일어났다.
아직 친할 틈도 없었을 환자와 간병인들이 밥도 챙겨주고 먹을 것을 준다.
무슨 이유일까? 아는 사이도 아닌데?
생각해보아도 뚜렷하게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 또 다른 어느 사람에 대한 전혀 다른 분위기의 험담이 들렸다.
“저 이는 자꾸 누가 자리만 뜨면 흉을 봐...”
“자기 스타일하고 안 맞나보지 뭐,”
“그래도 자기생각만 항상 옳다고 주장해서 좀 피곤해.”
이 간병인 아주머니는 무지 오래 되었는데도 남들과 부딪치고 미움 받는다.
반드시 오래 같이 지낸다고 친밀감이 더하지는 않는가보다.
역시 이유를 모르겠다.
사람들이 흔히 말한다. '가만이나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라고.
내가 보기엔 가만히 있는 처신의 결과는 중간 그 이상으로 나타났다.
새로 온 조용한 분은 다른 사람들이 먹을 것을 들고 가까이 하고 말을 걸었다.
많이 말하기보다 많이 들어주는 태도가 아마 편하게 느껴지나보다.
그래서인지 꼭 필요한 말을 할 때면 사람들이 무게감 있게 들어준다.
반대로 말 많은 사람은 말 속에 몽둥이도 들어가고 가시도 들어가고,
걸핏하면 훈계도 들어가서 만만히 듣기가 불편하다.
좋은 말도 여러번 들으면 성가시다는데 하물며 흉이나 훈계는 질릴거다.
성경에도 혀를 잘 다스리라고 여러 곳에서 말한다.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웅변은 '은'이라고 하고, 침묵은 '금'이라고 한다.
시간을 정할까? 날을 정할까? 아니면 종류를 정할까.
침묵을 규칙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몰려왔다.
들어주거나 보아 주기만 하는 침묵을 별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보고 싶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무르익어야 독이 아니고 약이 된다고 했는데...
침묵 - ‘예’와 ‘아니오’가 제대로 말해 지는 것, 입보다 눈과 손에게 양보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