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58 - '그대'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그래도 사는 이유는...’


때로는 사람들이 너무 밉다. 나를 괴롭히려고 태어난 것 같고, 마치 작정하고 큰 가시를 품안에 감추고 있다가 나를 찌른다는 의심도 든다. 야금야금 생기를 갉아먹으며 진을 빼는 일들, 해도 해도 안 되는 내 능력 밖의 일들이 종일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는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혼자 중얼거려 본다. '그럼에도 내가 사는 이유는?' ...


마땅한 대답을 못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님 믿을 수 없는 알팍하고 바뀌는 대답들이거나. 그런데도 삶을 포기하지 못한다. 버리고 떠나지 못한다. 때려치우는거, 도망가는거. 그거 당장은 참 쉽고 속은 후련하기도 한데도 꾹꾹 눌러 참는다. 그렇게 당장 쉬운 데로 하고, 기분만 풀자고 깽판으로 업어버리지 않는 건 그거 죽는 길이기 때문이다. 밉다고 남에게서 다 돌아서면 나도 고립되고 남도 고립되는 길이다. 업어버리고 깨버리면 뭘 담을 쓸만한 그릇만 자꾸 줄어든다. 그래서 더 가난해지고 더 옹색해지고...


아마도 중증환자로 몸의 절반쯤이 뭉텅 죽어서 가족에게 신세지고 사는 아내는 나보다 더 할 것이다. 말해 무엇 할까? 질병 이름 앞에 붙은 하늘의 형벌, ‘희귀난치병’... 그래도 웃는 아내는 나에게 구속영장을 내린다. 고단하다는 내 말도 막고 불행하다고 원망하며 보따리 싸는 내 도망 길도 막는다.


그래서 당장 눈앞의 길이 너무 막막하면 오히려 멀리 본다. 참기 힘들도록 답답하면 다른 것을 본다. 하늘을 보고 아무 말 없는 꽃을 보고, 그냥 따라오는 바람을 쓰다듬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르고 반복되며 적응하는 일상이 바닥에 펼쳐지고, 숨 쉬는 공간에 맑은 산소공기처럼 또 다른 감사할 일상이 오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하루가 버텨진다. 죽어도 못 살 것 같던 내일이, 절망만 가득할 것 같던 내일이 숨어 있던 평안을 슬그머니 내 놓으며 말한다.


'거봐, 살아보지 않으면 도저히 모르는 게 있지?‘


그대 – 심한 고단함에도 살아내는 아내, 내가 바라보는 하늘, 마침내 답이 되는 사랑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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