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억 60 - '교만'

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by 희망으로 김재식

“또 직접 하는 거야? 그러지 말어!”

“아, 예... 얼마 안 걸릴 것 같아서 그냥 빨리 해치우려고,”


예전 직장에서 나는 종종 윗분인 이사님에게 지적을 당했다.

일을 잘 분배해서 나누어주는 것도 경력 관리자의 능력이라고.

혼자 해치우면 실수도 없고 빠르기도 하겠지만 한계가 있다면서.

나도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공감하고 인정했고 고쳐야지 마음먹곤 했다.


그런데 나를 살펴보니 그 소심한 버릇은 생긴게 참 오래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남았다.

특히 별로 돈이 안 되거나 수고한 대가가 보장되지 않는 종류의 일에는 더 그랬던 거 같다.

그냥 혼자 계획을 세우고 좀 고생이 되더라도 혼자 진행을 해버리는 성향이 있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누구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하는 걸 많이 피곤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

또 진행하다가 생각이 다르거나 반대의견을 마주하면 감정이 상하고 불편해 했던거 같다.

그냥 몸이 좀 고단한 쪽이 마음이 더 편하다는 경험에서 오는 선택을...


결국은 사람을 못 믿는 거였다.

실력이든 인간성이든 같이 해나가는 다른 사람을 못 믿고 편안하지 못하니까 그런 거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니, 못 믿는 건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을 못 믿는 거였다.


어떤 일은 결과보다 함께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도 하다.

어떤 목적지를 도착하는 것보다 함께 그 길을 동반하면서 웃고 울고,

비 맞고 바람과 햇살을 느끼는 걷는 그 자체가 더 값지고 소중한 추억이 되기도 한다.

마치 사람의 일생처럼.


함께 무엇을 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면 모자라는 실력이나 불협화음조차도 수용할 만하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변덕스럽고 너무 결과에만 목을 메는 태도가 힘들게 한다.

그러니 남과 같이 하는 것을 불안해하고 미리 이유를 대고 시작도 하지 않으려는 거다.

.

결론은, 믿을 수 없어서 같이 일 못하는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말은 바로 하자. 믿음 없는 자여, 그대 이름은 ‘나’라고...


교만 – 잣대를 쥐는 손이 나에게 달려있거나, 아니면 숨겨진 지나친 내 욕심때문에 생기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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