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그때, 그 가을은 나를 많이 우울하게 만들었다.
알록달록 단풍이 산 위에서 아래로 밀물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치장하고 아침에야 보여주는 색시처럼. 그 아름다운 단풍 속에 숨은 그림이 있었다. 풍덩 뛰어들어 그 속의 한조각이 되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부르는 세상이 그림이 되어 다가왔다.
차가운 공기는 욕망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식히라 하고,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은 티 없이 푸르고 자유 하라는데, 정작 발이 묶인 내 처지는 숨은 그림 속으로 안기지 못하고 그저 눈 감고 그리움으로 보기만 해야 했고 안달이 났었다.
현실은 그림이 아니었다. 감았던 눈을 떠도 몸은 갈 수 없었다. 눈앞의 침상에 누운 아내는 걷지 못하고, 나는 걷지 못하는 아내를 떼어놓지 못해서 갈 수 없었다. 산으로, 단풍 속으로, 그 속의 그림 세상으로 가고 싶었는데...
답답하다. 자기 꼬리를 먹고 있는 뱀처럼 고통과 체념이 뱅뱅 돌며 제자리에서 한숨만 쉬었다.
정말 눈치도 속도 없는 TV에서 조심하란다. 고관절이 부러져 나간 류마치스 환자를 뉴스로 보여주면서 스테로이드를 많이 쓰는 환자는 뼈가 쉽게 부러진다고,
아내는 대용량 스테로이드를 봉지로 맞았다. 최대치를 최대 횟수로, 알약은 셀 수도 없이 먹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 맞는 것도 잘 없다는 그 독극물 같다는 스테로이드 주사제를 열 번도 더 맞았다. 환청과 골다공증을 부작용으로 불러온다는 그 약을. 그런 아내 앞에서 참 똑똑하게도 겁을 주고 있었다.
생명은 움직인다. 생명은 자란다. 생명은 따뜻하다. 그렇지 않은 것은 죄다 죽은 것이다. 멈추고, 자라지 않고, 차가우면 사람도 죽은 것이다. 가지가 몸통에서 떨어졌을 때, 몸통이 흙에서 떠났을 때, 흙이 더 이상 비와 햇빛과 만나지 못할 때도 우리는 그것을 죽었다고 한다.
사람도 사람에게서 멀어졌을 때, 사람들에게서 잊혀 질 때, 우리는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오늘같이 종일토록 비가 내리는 가을에는 앞이 흐려져서 더욱 보이지 않는다. 비가 그치고 찬바람이 불어도 그렇다. 마치 세상과 사람들과 기억에서 멀어진 존재처럼...
가을 - 계절을 잠시만 멈추어주면 안될까? 병의 진행도 잠시 멈추고.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죽어가는 것도 잠시 멈추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