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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Dec 11. 2022

이야기 셋 - 빈방 있어요?


3화 빈 방 있어요?      

                        

#1...   

  

“쾅! 쾅! 쾅!”

“누구...세요?”

“문 열어!

“무슨 일인데요?”

“김사장 숨어 있는 거 다 알아! 얼른 문 열라고!”

“어디서...오셨는데요?”

“내 돈 안 갚고 어디 숨은 거야? 나와!”

“안 계신데요...”

“맘대로 해! 내 돈 내놓을 때까지 여기서 먹고 잘거니까!”

“애들 아버지 그 사람 찾으러 외국 간 지 2주 넘었어요. 정말입니다”

“내뺀 거 아냐? 계속 안 돌아오면 내 돈은 어쩔 건데?”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꼭 갚는다고 했어요”

“더는 못 기다려! 다음 주까지 안 갚으면 이 집 경매 넘기기로 했으니 그리 알아요!”    

 

벌써 2주째, 교대로 돌아가면서 낮이고 밤이고 새벽 가리지 않고 빚쟁이들이 몰려왔다. 부도난 어음 금액을 얼른 안 갚는다고 벌써 공장의 돈 되는 물건은 다 가져갔다. 출퇴근 시키던 차는 당연하고 멈춰 선 공장의 지게차랑 완제품, 심지어 원재료와 사무실 집기까지 다 가져갔다. 법적으로는 못 가져가게 하고 도난으로 신고도 할 수 있지만... 애들 아버지는 내 버려두었고 가족들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밥이나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아무 탈은 없는지, 여비는 안 떨어졌는지...’    

 

외국으로 간 처음 며칠은 연락을 주던 혜원이 아버지는 자꾸 힘들어하는 집 소식을 듣는 것이 괴로웠는지 이제는 아예 연락을 하지 않는다. 전화도 되지 않는다. 이 부도 사고가 터지고 나중에야 원청을 주던 사장이 고의적으로 더 많은 빚을 떠 안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지만 처음에는 정말 몰랐다. 점점 주문량이 많아지고 설비와 생산라인을 더 늘려서 납기를 준비하라는 그 원청 사장의 말이 그때는 고맙기만 했다. 혜원이 아버지와 공장의 직원들도 모두 들뜨고 기대에 부풀어 신이 나기만 했다. 그러다 반년쯤 전부터 다른 때와 달리 현금은 전혀 없이 납품한 금액을 전부 약속어음으로 줄 때 의심했어야 했다. 좀 더 지나 아직 돌아오지 않은 미결제 어음이 불어나 몇십억을 넘었을 때, 기어코 사고는 뻥! 터졌다. 원청을 주던 사장은 미리 돈이 될만한 모든 것을 팔아 치우고 외국 계좌로 송금한 후에 해외로 도주를 해버렸다. 계획된 폐업이고 부도 처리였다.  

   

“여보, 미안해...”

“왜그래? 회사에 무슨 일 있어?”

“거래처에 준 어음이 부도가 났다고 연락을 받고 은행을 갔는데...”

“그런 일 한 번도 없었잖아?”

“문제는 평소보다 몇 배로 많은 어음이 전부 지급해달라고 돌아온다는 거야”

“은행도 거래중지를 하고 압류를 들어갔는데... 별로 남은 게 없대”

“어떻게 그런 일이...”

“은행 말로는 거의 반년은 족히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고의적인 부도로 보인대”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사업이 커진다고 돈 끌어다 투자도 더 했는데...어떻게 해?”

“........ 방법이 안보이네, 나도 답답해! ”

“정말 나쁜 사람이었네… 앞으로 엄청 일이 많아질거라고 부추기고

물건도 갑절이나 가져가더니 그런 속셈이 있는 줄 몰랐네”     


그렇게 터져버린 고의 어음부도를 해결해보려고 이리저리 뛰다가 보름쯤 지났을 때 혜원이 아버지는 가방을 챙겨서 소문에 들리는 외국 친척 집으로 간 원청 사장을 찾겠다고 비행기를 탔다. 집안을 부탁한다는 고개 숙인 혜원이 아버지에게 혜원이 엄마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공장은 문을 닫고 직원들은 이리저리 마련한 돈으로 최소한의 임금을 정리해 퇴사를 하게 해주었지만 문제는 거래처 사장들이었다. 십 년 넘게 세상없이 좋은 사이로 잘 유지하던 그 사람들은 처음에는 기다려 주겠다고 하더니… 돌변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해결 가능성이 안 보여 불안하고 혜원이 아버지 쪽의 바닥난 자금 사정을 눈치채고 독촉하기 시작했다. 부도가 나고 한 달을 채 지나지 않아 공장의 모든 돈 되는 걸 챙겨 가고 집까지 압류에 들어갔다. 그래도 아직 다 회수하지 못한 미수금에 쪼달리던 그들은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하고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엄마, 나 유학 포기할래...”

“아냐, 어떻게든 해결해 볼테니... 넌 차라리 나가서 지내”

“아빠도 소식도 없고 집도 쫓겨나게 생겼는데 내가 어떻게 유학을 가…“

“여기 있어도 니 마음만 불편하고 무슨 봉변당할지 모르니 계획대로 나가”

“나도 휴학하고 취직이라도 해서 빚 갚는 거 보태야지 않겠어?”

“다시 좀 더 생각해봐”

“아냐! 지금은 나라도 엄마 옆에 있어야 할 거 같아”

“니 아빠는 연락이라도 좀 주면 좋겠는데... 불안해서 못 견디겠어”

“엄마, 공장은 이제 문 못 열겠지?”

“아무래도 빚 정리가 되지 않으면 힘들어 보여”

“공장 임대료도 만만치 않은데... 차라리 비워주는 게 좋지 않을까?”

“니 아빠는 어떻게든 빚을 해결하고 다시 돌리겠다고 두라는데…”     


고등학교를 진학한 후 혜원이는 피아노 콩쿨대회에서 최고상을 탔다. 학교와 주변의 권유에 따라 늦었지만 혜원이는 피아노 전공을 하기로 결심하고 예술대학도 합격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모는 혜원이를 해외로 유학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학비는 장학금을 받아 해결한다고 해도 생활비랑 별도 레슨비 등도 많은 부담이 되어서 당사자인 혜원이는 주저했지만 부모는 완강히 밀어붙였다. 그렇게 간신히 우여곡절 끝에 준비를 마치고 떠나는 일정을 불과 얼마 앞두고 이 부도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인생 새옹지마라더니… 좋은 일에는 궂은일도 생기고 나쁜 기운이 몰려와 훼방을 놓는 것 같았다.  

   

#2...     


“혜원이 어머니,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저... 혹시 이 주변에 싸게 나온 빈방이 있는지 좀 알아봐 주실래요?”

“누가 쓸 건데요?”

“그냥... 우리 집 사정 알지요? 아무래도 집을 내주고 나가야 할 거 같아서요”

“그러시구나... 아직 혜원이 아버지는 연락이 없으세요?”

“예, 밥은 먹고 다니는지... 차라리 그냥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애쓰시니...잘 되겠지요. 맘을 편히 가지세요”

“가진 여유가 없고 비싼 월세는 감당 못할 거 같으니 좀 싼 방으로...”

“그래요? 제가 주변에 알아볼게요.”

“미안해요... 염치없이 우리가 아쉬울 때만 이런 부탁을 해서”

“에휴! 그런 말씀 마세요. 이웃 사이에 그런 마음 가지지 마세요”

“동수랑 혜원이 같은 학교 다닐 때 좀 잘해주지 못한 것도 걸리고 미안해서요...”

“뭘 지난 일을 가지고 그러세요. 애들은 잘 지내는 거 같던데요”     


동수 엄마는 혜원이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은 했지만, 예전 그 감정이 살짝 스치며 지나가서 당황스러웠다. 동수와 같은 학교 다니던 혜원이네가 잘 벌고 부유했던 것과 달리 동수네는 세련되고 번듯한 편의점도 아니고 동네 슈퍼를 운영했다. 직원도 두지 않고 두 부부가 거의 밤낮 교대로 매달려 24시간 장사를 하다 보니 스타일이 늘 말이 아니었다. 지치고 모자라는 잠에 피곤이 얼굴에 붙어 다니고, 외출은 꿈도 못 꾸며 사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름 있는 체인 편의점으로 갈아 타볼까 잠깐 생각도 했는데 너무 비싼 가맹점비 부담과 자기들 방식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잘못하면 노예 생활이나 다름없어지는 사례를 하도 많이 보았던 터라 포기했다. 그냥 고생하더라도 소신대로 싱싱하고 좋은 물건을 이웃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주는 그런 슈퍼를 이어가기로 동수네 아버지와 엄마는 결심했다.     


“동수 어머니! 학교를 좀 와주셔야겠어요. 진학 문제로 부모 상담이 필요합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일하다 말고 서둘러 학교로 간 날이 하필 학부모 모임도 있는 날이었다. 일 년에 단 하루도 학교를 와본 적도 없고 학생들 부모와 교류도 없던 동수 어머니는 안면이 잘 없던 동수 친구 부모들에게 마치 죄인처럼 얼굴도 바로 보지 못하면서 허리 굽히며 인사를 했다. 자모회 회장을 맡은 혜원이 엄마는 다른 어머니들에게 동수 엄마를 소개했다.     


“여기는 동수 어머니입니다!”

“안녕하세요!”

“좀 자주 오셨어야지! 왜 그렇게 얼굴을 안 보였어요?”

“그러게요. 학생들과 학교 발전을 위해 하자는 건데… 누군 안 바빠서 와요?“

”자모회비도 좀 내주시고 활동도 같이해야지 너무 성의가 없으시네요”

“좀 이해를 해주셔요!

동수 어머니는 슈퍼 일 때문에 늘 시간도 없고 고단하시니까!”     


혜원이 엄마의 둘러 대주는 말 사이로 돌아가며 동수 엄마의 부족한 자모 활동을 나무라듯 한마디씩 하는 난처한 자리를 간신히 버티고 학교를 나온 동수 어머니는 마음이 무거웠다. 동네에서 슈퍼를 하면서 을이 되어 온갖 식품 배달 심부름도 하다가 보면 아들 친구네 집도 가곤 했다. 땀 냄새에 허름한 옷차림으로 행여나 아들이 같이 있는 친구 집을 가는 일은 피할 수 있기를 늘 빌었다. 다행히 초등학교,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에 가면서 주변에 친구네 집이 점점 줄어들었다. 바로 인근 학생들이 몰리는 초중학교 때는 정말 거북한 적이 많았는데. 한번은 배달을 나가서 동수가 친구들과 같이 있는 자리를 보아야 했다. 그곳이 하필 혜원이네 집이었다. 잘 차려입은 혜원이 엄마와 몇 엄마들의 커피타임에 불쑥 음료수 등 배달 물건을 들고 들어선 동수 엄만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같이 마시자고 부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처럼 외면도 못 하며 혜원이 엄마의 표정은 편치 않았다. 동수도 누추한 엄마를 친구들에게 소개 못하고 어색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그날은 마치 쓴 음식을 먹고 괴로운 느낌이었고 오래 기억에 남은 날이었다.     


어쩌다 생긴 생일날과 달리 더 자주 마주치는 불편한 경험은 혜원이네와 같은 교회를 다니며 생기는 격차였다. 빈부 지위 상관없이 하나님 안에서 모두 같은 성도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오천 명 안팎 모이는 큰 교회인데도 대형 모니터 기증, 꽤 많은 건축헌금 등을 내며 앞으로 종종 불려 나가 소개되는 혜원이네 부모와 예배만 마치면 슈퍼로 쌩 돌아가야 하는 동수네는 너무 격차가 많은 호칭만 ‘형제님 자매님‘ 이었다. 절기 때마다 교역자와 부서장들에게 한 턱씩 내며 다른 이들에게 환하게 인사를 받는 그 집 처지와는 달리 주일날도 문을 닫을 수 없는 슈퍼의 형편은 더 동수네가 궁색하고 낮은 사람으로 대접받는 이유가 되었다. 가끔 돌아오는 구역예배도 혜원이네는 인기 만점이고 다들 기다리는 날이었다. 동수네는 아예 못하고 빠지거나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전 성도 심방 같은 날도 좋은 대접을 할 수 없으니 다들 대놓고 말은 안 해도 후다닥 서둘러 지나가기 일쑤였다. 그냥 그 모든 순간마다 적응하며 혹 껄끄러운 기억도 그저 조용히 담아야 했다.          


#3...    

 

“딩동!”

“누구세요?”

“00씨 댁이지요?”

“예! 그런대요?”

“등기 우편입니다! 여기 서명하시고 받으세요”     


그렇게 온 우편은 강제집행 통보서였다. 얼마 전 경매가 완료되어 보내온 부동산 인도명령을 받았지만 이사 날짜를 조정하는 협의를 할 수 없었다. 혜원이 아버지의 행방도 모르고 일정이 어떻게 될지도 몰라 아무 결정을 할 수 없었다. 강제집행 명령서가 계고장을 거치면 문을 뜯고 들어 올 수 있게 된다는 말에 뻔히 예상되는 장면이 눈앞에 닥친 듯 혜원이 엄마는 암담해졌다. 이런 날이 가까운 날에 올 것을 알았기에 큰 가구나 살림도 좀 처리했다. 또 적은 비용으로 갈만한 빈방도 동수네에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아직 마땅한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부동산을 통해 구하는 길은 가격대가 턱없이 차이가 나고 돈은 모자라 포기를 했다. 워낙 좋은 집에서 살다가 아주 작고 누추한 월세 집을 구해 나가야 하는 처지가 너무 속상하고 누구에게 말하기가 민망하기도 했다. 겨우 말을 꺼낸다 해도 지레 소개해주는 집들이 보증금이나 월세가 너무 높아 가진 돈으로는 턱도 없었다. 그래서 다 접고 동수네 엄마에게 어렵게 부탁을 한 것이다.     


“저... 동수엄마, 혹시 전에 부탁한 빈방 알아보신 거 있어요?”

“아직 마땅한 곳이 없네요.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인데”

“빨리 집을 비우라는 명도소송이 통과되어 강제 집행한다고 통지서가 왔어요.

더는 미루지 못하고 곧 비워줘야 할 거 같아서...”

“아, 그러시구나. 좀 시간을 주지도 않고... 참 매정한 사람들이네요”

“미안해요. 일도 바쁘신 분들에게 이런 부탁을 드려서”

“아뇨! 모르는 분도 아니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사정도 아는데...”

“혹시 교회 목사님에게 도움을 청해보셨어요? 무슨 길을 좀 찾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너무 막막해서 염치없이 말해 보았지만...

공적으로 회의를 몇 번 거쳐야 하고 조사에 시간도 걸린다네요”

“에고, 이렇게 다급한데 회의는 언제하고 조사는 또 왜 하고...”

“조금의 위로금만 봉투에 담아 주시더군요. 개인적으로 주는 거라며...”

“혜원이네가 그동안 물심양면 교회에 쏟은 애정을 생각하면 좀 서운하네요”

“그건 뭐 교회가 크다 보니 그러겠다 이해하지만… 정작 서운한 건 따로 있어요”

“뭔데요?”

“울 혜원이랑 혼사 문제도 오가고 상견례 이야기도 나오던 집에서 싹 외면하네요”

“준식이네가요? 국회의원 선거 때 여러 가지로 혜원이네 도움을 받고도 그래요?

다른 집도 아니고 혜원이랑 준식이 사이에 혼사가 오가던 집에서요?”

“세상인심이 그렇네요. 몰랐는데 이 지경이 되어 보니...”

“그래서 사람 속은 겪어봐야 안다고 하더니... 참 속상하네요”     


옥석은 세찬 풍파를 만나야 드러난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도 설마 했지만 정말 너무 맞는 말이었다. 가벼운 보석은 세찬 물결이 치면 떠내려가고 무거운 진짜 옥석은 그 자리를 지킨다더니... 혜원이네가 잘 나갈 때는 간도 쓸개도 다 줄 것 같이 웃던 교류는 모두 계산이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뭔가 이익이 되고 자기들 들러리로 체면이 설 때만 아주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처럼 대했다. 하지만 행여 돈이라도 빌려 달라거나 도움을 청할 곤경에 빠졌다고 판정되면 온갖 핑계로 피하며 거리를 둔다. 이것이 세상의 태도라는 걸 당해보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더 끔찍한 건 힘을 가진 대부분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사람이 되어 낮아 보이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살게 된다는 것. 그러면서도 안 그런 척 고상한 척 산다. 혜원이 엄마는 자기도 그랬다는 아픈 반성을 속으로 했다. 천년이라도 갈 것같이 우아하게 교류하던 이들은 죽은 껍질처럼 멀어지고, 오히려 은근히 낮추어 보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4...     


“동수 아버지요!”

“와 불러?”

“저... 의논 좀 할 게 있는데”

“뭔데?”

“혜원이네 소식 알지요?”

“알지... 혜원이 아버지 소식은 있대?

”아뇨, 아직 연락이 없나 봐요“

”에그... 어쩌나, 혜원이도 유학 가려던 거 포기했나 보던 데“

”지금 유학이 문제겠어요? 에휴...“

”동수는 뭐 좀 듣는 소식도 없나? 혜원이랑 친구면서“

”동수도 혜원이가 그 국회의원 집 준식이랑

혼사 이야기가 오갈 때부터 좀 서먹해진 거 같아요“

”그러게,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좀 좋아하는 눈치더니만... “

”집안이 너무 차이가 나니까… 그거야 지들이 알아서 할거고!“

”의논할 게 뭔데?“

”얼마 전에 혜원이 엄마가 빈방을 좀 알아봐달라고 했어요“

”왜? 집 넘어갔대?“

”그런가 봐, 안 그러겠어? 빚쟁이들이 맨날 찾아놔 성화인데“

”하긴 그 집에서 편히 살기도 힘들게 생겼지...“

”근데 워낙 가진 돈도 없고 당장 돈벌이가 뾰족하지도 않아서 맞는 마땅한 집이 없어요“

”그럴 거야. 여기 근처가 좀 비싸야지…”

”멀리도 갈 수 없는 게 지금 연락 안 되는 혜원이 아버지 돌아오기 전에는“

”그래서?“

”저기... 나중에 울 동수 결혼하면 주려고 준비한 빌라 있잖아“

”근데?“

”그거 당장 안 쓰니까... 혜원이네 지내도록 좀 빌려주면 어떨까?“

”그거 좀 좁을 텐데? 큰 집에 살던 사람들이라 답답하지 않을까?“

”지금 그런 한가한 상황이 아닌 걸, 처음에는 나도 그래서 말도 안 꺼냈지만...

당장 짐 들고 나와야 할 판국인가 봐. 강제집행 한다고 명령서 왔대“

”그래도 들어오겠어? 월세나 보증금이야 안 받아도 되지만...“

”아냐! 그 문제는 오히려 최소한이라도 형편 되는 선에서 받아야 혜원이 엄마 마음이 편하지!“

”그렇겠구나. 그럼 월세는 모았다가 나중에 좀 넓은 집으로 갈 때 보태라고 돌려줘!“

”고마워요! 동수 아버지“

”당신이 알아서 잘 말해봐요! 민망치 않고 맘 편하게 옮길 수 있도록!“

”좀 여유도 있고 도와줄 능력 있는 사람들이 다 외면해서 참 속상해요“

”남 말은 하면 뭘 해! 세상은 다들 자기들 방법대로 사는 거 이제 알아?“

”아, 그리고 동수에게도 미리 말해서 집주인은 친척인데 외국에 있다고 하자구요“

”그려, 혹시 다른 거 필요한 거 있으면 당신이 잘 알아보고 챙겨드려!”

“혜원이네 공장 잘 될 때는 사람들이 주변에 바글거리더니...

막상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니 사방이 모르는 사람처럼 돌변하네요 참…”

“근데… 당신은 안 서운해? 예전에 학교 자모회와 생일날 서러움 당했다더니”

“그거 뭐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다 지나간 일인데요 뭘”

“그려! 서운한 게 기억하려면 뭐 한둘이겠어?

그렇지만 이웃이고 같은 친구 사이 부모인데 난처할 때 앙갚음 하는 건 아니지!”     


혜원이네는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살림을 많이 줄였는지, 작다고 생각한 동수네 빌라지만 아담하게 잘 정리되었다. 물론 집주인은 외국으로 간 동수네 친척이고 월세는 아주 조금만 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 뒤에도 간혹 아직 해결 못 본 빚쟁이들이 옮긴 집으로 또 왔다. 공장은 시설과 기계를 채무 대신 몇 군데에 나눠 넘겨주었고 남았던 제품과 원재료 등도 정리해서 빚을 얼마라도 갚았다. 넉넉한 부자로 살다가 멱살잡이 당하며 작은 셋집으로 옮겨서 생활을 해나가는 혜원이네는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런 날들을 견디는 것이 지금 자기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학교도 휴학한 혜원이는 몇 군데 일을 나가고 혜원이 엄마도 가진 것이 없어서 독자적으로는 뭘 할 수 없었다. 아는 친척의 식당에서 일을 도우며 생활비를 벌며 그저 혜원이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수입도 어떻게 알았는지 들이닥친 빚쟁이들에게 뜯기기도 했다. 시끄럽게 소리치고 험악한 협박에 말도 안 되지만 친척에게 시끄럽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쥐꼬리만큼 적은 수입도 내어주었다. 때로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는 극한 심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고생하는 혜원이 아버지 생각에 달래야 했다. 고의로 빚을 안기고 도망친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혜원이 아버지는 더 고생할 거라는 생각이 미치면 혜원이 아버지가 안쓰러워 어떻게 하든지 견딜 수 있었다.     


#5...     


“어이쿠! 이게 누구요? 혜원이 아버지 아니세요?”

“예... 잘 지내셨지요?”

“아니, 언제 돌아오셨어요?”

“지금 막 도착해서 곧장 왔습니다. 그런데... 집이 이사 가고 없어졌네요”

“아, 전화기 안 가지고 다니셨어요? 연락 못 드렸나 보네요”

“예! 제가 전화를 주고받으면 빚쟁이들이 캐묻고 따라올 테니...”

“그랬군요. 혜원이네는 여기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휴... 내가 식구들에게 이 무슨 고생을 시키는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더 잘되려고 하시다 그런 건데”

“지금 같이 가실래요? 아님, 연락할까요?

혜원이 엄마도 시달리는 게 싫어 전화 없애고 혜원이만 연락이 되는데...”

“아뇨. 조금 쉬었다가 제가 찾아가지요. 주소만 알려주세요”

“가신 일은 잘 해결되었어요? 누굴 찾으러 가셨다던데...”

”못 찾았어요. 아주 꽁꽁 숨었다가 또 다른 나라로 옮겼나 봅니다“

”에구… 나쁜 인간, 남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 나는 법이라는데…

하여간 잘 돌아오셨어요!“

”여비도 다 떨어지고 대충 먹고 자면서 돌아다니다 보니 건강도 안 좋아져서...“

”왜 안 그러겠어요. 눈에 선합니다“

”그냥 어디 가서 죽어버릴까 하는 충동과 싸우느라 힘들었어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공장도 잃고 재산도 다 잃고... 거기에 가족까지 잃을 수는 없다는...“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다른 건 다시 회복하면 되지만

가족은 한 번 잃으면 다시는 회복 못하지요“

”아, 시장하실텐데 뭐 먹을 거 좀 드릴까요? 밥도 있고요“

”아뇨, 그냥 컵라면이나 하나 있으면 좀...“

”잠깐만 기다리세요! 집에서 가져온 김치도 있으니 같이 드세요!“     


한쪽 벽으로 붙은 탁자에 뜨거운 물 부은 컵라면과 젓가락을 놓고 김치도 작은 그릇에 담아 드렸다. 낮 동안 내내 데워놓고 마시던 둥굴레차가 많이 쫄았는지 구수한 김을 피우고 있었다. 큰 종이컵에 한잔을 가득 따라서 옆에 같이 놓았다. 혜원이 아버지가 편히 먹게 잠시 자리를 비켜주고 물건을 정리하는데... 라디오 볼륨이 점점 커진다. 일부러 높이지 않는데도 늦은 밤이라 저절로 그런 거 같다. 동수 엄마는 하루 종일 기독교방송을 틀어 놓고 건성으로 듣다 말다 한다. 오늘은 또 어느 유창한 목사가 설교를 하는지 심금을 울리려고 작정한 듯 짐짓 떨리는 목소리로 성경을 읽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이와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 이튿날 그는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 물었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 누가복음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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