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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Dec 29. 2022

늙거나 낡거나 잊혀지거나…

<늙거나 낡거나 혹은 잊혀지거나...>


‘늙거나...’


젊은 시절 로맨스영화의 남녀 주인공으로 뭇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배우들도 세월은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나보다. 나이 들어 가면서 점점 주연에서 조연으로 옮겨간다. 사랑이야 나이와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사랑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아무래도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형이나 누나로 나오다가 이모 삼촌, 부모를 거쳐 할아버지 할머니로 나오는 모습을 본다. 그중에는 아예 볼 수 없는 분들도 많다. 늙는다는 것, 어떤 외모나 재력, 권력으로도 피하지 못하며 세월을 따라 같이 흘러가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낡거나...’


영화 원스어폰어타임인 아메리카는 약 50년 가까운 세월을 담는 줄거리 덕분에 한때 쟁쟁했던 온갖 종류의 고급 차들이 다 나온다. 191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출시될 때 많은 사람들의 선망과 환호를 받다가 다른 신형차에 밀려 잊혀진 차들이다. 포드사의 세단종류와 벤즐리, 캐딜락, 폰티악, 피아트, 올드모빌 등등 정말 자동차 박람회장과 같다. 한 때 출력이 큰 대형차들이 선호 되다가 대공황이후로 가난한 연인들의 중고차로 전락해서 털털거리는 역할로 영화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향수를 부르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자동차는 낡아도 추억은 낡지 않고 세월이 갈수록 오히려 반짝 이는가 보다.


‘잊혀지거나...’


영화 스타워즈에 우스꽝스런 걸음으로 등장하는 c-3po 로봇. 주인공 스카이워커가 만든 이 로봇은 미완성이었다가 나중에 완성되었다. 중고상에게 머슴로봇으로 팔렸다가 고물상에게도 넘어가는 등 수모를 겪는다. 한동안 팽개쳐졌다가 300개의 언어와 숱한 재능을 가졌지만 말을 못하는 로봇, “삐리 삐리리” 소리만 내는 알투디투의 말을 알아 들어 통역로봇으로 살아남는다. 딱 그 하나의 쓸모덕분에 고철로 사라질 위험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스타워즈 시리즈 7편 전편에 나오고 한 때는 외계종족에게 신으로 떠받혀지기도 한다. 고작 쇳덩어리로 잊혀질뻔했다가 화려하게 기억에 남았으니 사람팔자만 모르는게 아니라 로봇팔자도 참 모르나보다.


‘늙고 낡고 동시에 잊혀지거나...’


벌써 큰아들이 우리가 결혼 했던 당시의 내 나이가 넘었다는 것을 알았다. 막내딸도 아내가 결혼하던 그 나이를 지났다. 우리 눈에는 아이들이 성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어린 느낌이고 어른으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가 섰던 그 자리에 아이들이 서고 내가 지나온 그 나이를 아이들이 먹고 있다. 내가 결혼할 당시의 부모님은 늙어보이시고 다시는 세상을 활개치고 다니지 못하실 늙은 인생으로 보였다. 별 예외가 없다면 지금 아이들의 눈에는 우리가 또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30년 지난 결혼사진이 낡아가듯 낡아가는 꿈들과 자주 신세지는 병원방문 횟수만큼 늙어가는 나이, 이러다가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내게서 제법 멀리 잊혀진 것처럼 우리도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서서히 잊혀지겠지? 이 복잡한 심정은 한 단어로는 표현이 어렵다.


“늙지도 낡지도, 잊혀지지도 않는... 말씀!”


[이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들의 권력도 들에 핀 꽃과 같으니,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말씀입니다. - 베드로전서 1장 24~25절]


말씀안에는 우리를 기다리고 맞이 하겠다는 약속이 있다. 말씀을 하신이가 늙지도 낡지도, 잊지도 않으시는 분이니 그가 하신 약속도 분명 그럴 것이다. 그 약속은 겉은 사라져도 영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에게 한 것이다. 사라질 대상에게 영원한 약속따위를 할 리가 없지않은가? 해 아래 모든 것은 소멸되고 사라진다고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는 안다. 우리 모두가 절대 안 사라질 것처럼 시침 딱 떼고 살아가지만. 과정이 있다. 이 늙고 낡아 가는 몸과, 몸에 필요한 모든 가치들도 소멸을 거쳐야만 영원히 늙지도 낡지도 잊혀지지도 않는 생명으로 새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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