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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으로 김재식 Dec 11. 2022

이야기 여섯 - 너무 늦은 만남

6화 너무 늦은 만남       

                       

#1...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이 부셨다. 작은 창으로 이렇게 온몸을 데울 수 있을 만큼 따뜻하고 방구석 작은 틈 없이 밝힐 만큼 충분한 햇살이 들어온다는 게 신기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게 꿈속 같기도 하고 현실이 아닌 것 같아, 어쩌면 몸이 죽어서 온 천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차라리... 죽었다면 다시는 살아나지 말고 이대로 여기 밝고 따뜻한 이곳에서 영원히 지내면 좋겠다는 소원 비슷한 마음도 들었다. 아주 오래전 이런 포근한 햇살 들어오는 방에서 행복했던 기억 하나가 떠올라 겹치고 있었다. ‘그 기억이 난다면, 그럼... 여기는 천국도 아니고 난 죽은 것이 아니겠구나’ 민수는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 듯 흑백필름 속의 한 장소로 들어갔다.     


“이제 가야 해! 더 꾸물거리면 지각하겠다!”

“그러게, 서둘러야 한다고 해도 조금만, 조금만 하며 안 듣더니... ”

“진짜 가기 싫은 걸... 그냥 제낄까? 까짓거 짤리면.. 이참에 너 있는 서울로 따라가지 뭐!”

“에그... 서울 가서 어디서 먹고 자고, 어떻게 돈 벌어?”

“뭐 길에서 얻어먹어도 너만 매일 볼 수 있으면 난 괜찮아! 행복할 거야~”

“됐네요! 나도 돈 못 버는 학생인데 너 먹여 살릴 방법이 없어!”

“내 맘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 가긴 어딜 가? 울 할머니는 어쩌고...”

“나도 민수 할머니 보고 싶다. 건강하시지? 잘 지내고?”

“응, 너 가면 엄청 반갑고 좋아하실 건데...”

“다음에 시간 좀 길게 내서 내려올 때 뵈러 갈게!”     


그러나 민수와 현서의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도 몰랐다. 민수가 다니는 읍내 공장 근처 자취방으로 주말을 이용해 내려왔던 현서는 2교대 근무를 들어가는 민수와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민수의 작은 자취방 창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의 포근함을 만끽하며 함께 밥을 먹고 노래 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낸 주말 오후의 시간은 금쪽이었지만 너무 빨리 지나갔다. 다시 내려온다고 약속하고 헤어진 그날은 이후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갈라놓는 슬픔을 더 슬프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되었다.    

 

민수와 현서는 고등학교 친구였다. 3년을 다니는 동안 둘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 집안 형편이 좀 괜찮았던 현서와 달리 민수는 할머니와 둘이 사는 결손가정에 넉넉지 못해 대학은 포기하고 공장에 취직을 해야만 했다.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현서는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한 이후도 계속 민수를 만나러 종종 내려왔다.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현서와 달리 2교대로 돌아가는 민수는 짬을 내기도 어려웠고 서울로 가도 마땅히 잘 곳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서가 내려와서 보낸 그 주말에도 그랬다. 그 오후의 햇살은 참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그래서 민수 자취방의 작은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그 햇살은 공간이나 열량의 과학적 수치 같은 걸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행복지수를 가졌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깊은 영상으로 기억에 저장되었다. 훗날 30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눈물겹도록.     


“현서야, 미안해! 내 형편이 여유가 없어서 좋은 데이트도 못하고... 이렇게 시골로 너를 내려오게 하네.”

“괜찮아! 뭐 평생 이렇게 만나며 지내겠어? 나도 졸업하고 너도 돈 모으면 우리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잘 지내면 되지! 그때까지만 이산가족으로 사는 거지!”

“우리 할머니도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괜찮겠어?”

“부모님 대신에 너를 지금까지 돌봐주신 분이니... 나도 고맙지. 나도 그 보답을 해드려야지 도리가 아니겠어?”

“참 착한 손주며느리 되겠네! 할머니 고생은 끝나고 행복한 날이 시작~ 그때부터는! 하하!”

“할머니가 나도 좋아! 가끔 뵐 때면 참 잘해주시고 늘 조용조용 옛날이야기도 해주시고 했어!”

“그랬어? 나만 몰랐네! 둘이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는 줄은~”     


민수 할머니는 늘 민수를 안쓰러워했다. 일찍 사고로 민수 부모가 죽고 아직 어린 민수만 남았을 때부터 할머니는 민수의 부모 노릇을 다 해야 했다. 먹이고 입히는 것만이 아니라, 부모의 빈자리가 상처를 주지 않도록 많이 채우고, 결핍된 부모의 사랑이 행여나 아이를 빗나가게 하지 않도록 자존심도 지키면서 성장하기를 애썼다. 그래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대학을 보내지 못하는 한계는 할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직장을 선택한 민수가 맘 흔들리지 않고 방황도 하지 않고 지내주는 것이 마냥 고마웠다. 그 한 이유가 되어주는 현서가 그래서 손주 친구를 넘어 귀한 가족처럼 느껴져 잘 대해 주었다.     


#2...     


“할머니... 너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돈 많이 벌어 할머니를 잘 모시겠다고 맨날 큰소리 쳤는데... 모시기는 고사하고 이렇게 혼자 돌아가시게 했으니 저는 어쩌면 좋아요...”     


노을이 산을 넘어가는 중이었고 땅거미로 어두운 그늘이 길어지고 있었다. 마치 유령이 만만한 운명을 가진 인간들을 홀려서 정신 빼기 알맞은 저녁 풍경이었다. 그런 풍경의 구석 어디쯤 있을 작은 산소 앞에서 민수는 앉아 있었다. 울다가 멈추고 멍하니 건너편 산을 바라보다가 다시 미어져 오는 감정을 달래다가...,   여기 올 때는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는데 민수는 털고 일어나기가 힘들어 어둑해지도록 망부석이 되었다.

     

민수가 다니던 회사가 다른 회사와 합병하면서 일하던 사람들을 강제로 해고하고 밀린 노임도 주지 않았다. 노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항의 농성을 하던 중 충돌이 일어났고 울분을 못 참던 몇몇 젊은 노동자들이 폭행에 휘말리고 말았다. 깡패들을 돈 주고 사서 앞세우고 강제로 해산시키러 온 회사 간부는 면담 중 평소 주눅 들어 지내던 노동자들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니들은 쓰다가 버려도 되는 버러지 같은 놈들!’이라는 말에 격분해서 누군가 멱살을 쥐었고 깡패들이 각목을 휘두르면서 양쪽이 집단 폭행으로 이어져 버렸다. 그 사건으로 감옥 간 민수는 2년을 살고 나왔다. 민수는 할머니가 걱정하실까 봐 원양어선을 타고 멀리 돈 벌러 간다고 거짓말을 했었고 그사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민수는 교도소를 나온 후 동네 어른들과 먼 친척이 와서 치러준 할머니의 장례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도 오래 산 고향이라고 마을 분들이 할아버지 산소 옆에 할머니를 묻어 주셔서 그나마 엎드려 통곡하며 용서라도 구할 수 있었다    

 

#3…     


“여기 살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요?”

“몰라요. 우리가 아는 건 어디로 무거운 가구 몇 가지를 가지고 갈 수 없다고 들었던 기억뿐이네요. 그때 이민 간다고 했나? 그래서 무거운 거 못 가져간다고 했던 거 같은데...”    

 

더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볼 것도 없었다. 민수가 교도소에서 지내는 동안 현서는 처음에는 면회도 오고 편지를 보내오더니 어느 날 뚝 끊어졌다. 그 후 몇 달이 되도록 편지도 없고, 오지도 않아서 민수는 너무 보고 싶고 걱정도 되어 참을 수 없었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 민수는 현서의 학교로 갔고 학교에서도 자세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단지 유학을 위한 자퇴라고만 알려주었다. 편지로 주고받던 주소를 찾아서 왔지만 현서네 가족이 살던 집은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었고 도무지 찾을 길이 없어져 버렸다.     


현서네 집을 찾아 왔다가 막막해진 그 날 이후로 민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날품을 팔 듯 하루 일을 하고 하루 헤매고, 한 달을 일하고 한 달을 놀았다. 비행기가 뜨고 내려앉는 김포 공항 근처 마을 언덕에 올라 종일 비행기만 바라보며 보내기도 했다. 아무 계획도 희망도 없이 마구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아무데서나 자고... 그런 중에 또 좋지 않은 무리와 어울려 거의 범죄에 가까운 일에도 끼어들었다. 재수 없으면 걸려서 또 감방을 가고.       


“야! 너 어디를 싸돌아다니는 거야? 집구석에 붙어 있지를 않고!”

“니가 돈을 제대로 벌기를 해? 다정하게 놀아주기를 해? 내가 무슨 재미로 집에 붙어 있냐!”

“그럴 거면 보따리 싸고 나가! 싫으면 같이 살 필요 없잖아?”

“안 그래도 나간다! 나가! 가방 하나만 들고 가면 되는데 뭐가 어려워서 못가냐?”

“잘가라! 멀리 배웅 안 나간다!”     


그렇게 민수는 몇 여자와 살다가 헤어지고 아무나 만나면 또 살림을 살고... 그런 사이에 세월은 일년 일년, 십년 또 십년이 흘렀다. 젊고 건강하던 민수는 어느 사이 중년도 꼬리표를 떼야할 정도로 늙어가고 흰머리가 서리처럼 하얗게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다. 아무 행선지도 목적지도 없는 삶이 도시를 떠도는 유령처럼 민수 인생을 끌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기다림도 그리움도 말라붙은 지 오래된 강의 흔적처럼 찾을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가끔, 아주 가끔 비행기가 낮게 날아가며 큰 굉음을 내면 갑자기 뭔가 폭음에 귀가 멀어진 사람처럼 하늘을 보며 먹먹해지는 후유증만 간간이 일어났다.    

 

#4...     


“아이쿠, 또 오셨네! 김씨, 이제는 좀 몸 건강도 생각하고 그러셔야지...”

“속이 아파 죽겠어요. 선생님, 제발 약 좀 씨~게 지어주세요!”

“약만 아무리 쎄게 지으면 뭐해요? 맨날 빈속에 독한 소주를 마셔대니 속이 못 버티지요. 쯧쯧...”

“제가 뭔 낙이 있어요?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술이나 먹고 살다가 죽어 저 세상 가는 거지...”

“갈 땐 가더라도 안 아프게 살다 가야지요! 이렇게 아프면 못 견디면서 좀 덜 마시라는데...”

“사는 게 아무 재미도 없어요. 만나줄 사람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고... 그냥 빨리 죽는 약 있으면 좀 주시던지요. 불쌍한 인생 돕는 셈 치시고...”

“이거 시간 맞춰 꼭 먹고 술은 좀 당분간 끊어요! 안 그럼 정말 몇 배는 더 심한 통증으로 죽기보다 힘들 수도 있어요!”     


이 의사 선생님은 가난한 사람들, 특히 민수처럼 노숙과 쪽방을 들락거리며 사는 숱한 사람들에게 천사 같은 양반이다. 노숙자들은 말로는 다 죽어야지! 죽고 싶다고 달고 살면서도 병으로 고통만 오면 못 참고 달려왔다. 이 의사 양반은 그렇게 살려달라고 하는 말을 밉다고도 안 하고 다 들어 준다. 노숙자들은 짐작도 못 하는 뭔 생각이 있거나, 삶이 망가진 노숙자들 세상과 다른 어떤 고상한 결심이 있어 이런 지역에서 작은 의원을 할 거다. 그런 사정을 통 몰라도 이 근처 가난한 사람들이나 노숙자들에게 의사 선생은 신주단지처럼 귀하게 여기고 애용하는 구세주다.     


민수는 아직도 못 버리는 자존심이 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일을 못해 돈이 떨어져도 그냥 굶거나 어지간하면 일해서 먹을거리는 자기가 해결해가며 살았다. 자기보다 더 병들고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먹을 밥이라는 생각에 굶기를 자주 하면서도 무료급식소는 가능하면 안 찾아갔다. 한 번 두 번 자꾸 이용하다 보면 정말 생존을 그곳에 의지하고 버러지처럼 몸만 버티는 인생이라는 기분이 들까 봐 마지막 넘지 않을 마지노선처럼 살았다. 그런데... 온갖 몸 여기저기 고생의 흔적으로 남은 질병들이 몰려와 허드렛일도 못 하고 통증을 붙들고 시간을 버티는 이런 날은 참 힘들었다. 잠들거나 웅크리고 끙끙거리는 거 외에는 아무 것도 못 하는 날이 길어지면서 더 이상 굶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무료급식소를 가야만 하는 이런 날도 있었다.     


“저... 이씨, 요즘 어디서 무료급식을 하는지 좀 알려줘. 아무래도 몸이 아파 당분간 일을 못 할 거 같은데 밥은 좀 먹어야 약을 먹을 거 같아서”

“그러게 좀 술 줄여! 속 아프고 위장 빵구 난 사람이 그러다 길에서 죽는다고 애그...”

“잔소리는 당신 말고도 많이 들어, 밥 먹을 곳 좀 알려줘 시간도 알려주고!”

“음... 요즘 이쪽 친구들이 잘 가는 곳이 있어! 거기는 아무 잔소리 안 하고 교회 나와라! 예배드리고 밥 준다! 그런 조건도 안걸고 그래!”

“그래? 신기하네. 어디야 거기가?”

“거기 운영하는 아줌마가 우리 또래인데 디게 친절해! 어디 미국인가? 거기 큰 노숙자단체 같은 곳에서 일하다 들어오신 분이라 하던데”

“그런 분이 이 나라에는 뭐 하러 들어와? 그 크고 좋은 미국에서 그냥 사시지...”

“이 양반이! 우리나라가 어때서? 우리나 이 모양으로 살지 돈 있고 자리 잡은 사람들에게는 여기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데!”

“아, 알았어! 나 지금 따지고 싸울 힘도 없는 사람이야. 제발 좀 거기 알려줘”     


민수는 정말 그냥 이참에 죽어버릴까? 어떤 때는 너무 귀찮고 아파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몰려오는 뻔한 추락에 막장길을 살다가 결국은 끝에 가서는 몇 날 며칠 끙끙매다가 울다가 갈꺼, 좀 덜 아플 때 가는 게 더 잘하는 선택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자살의 유혹...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일찍 데려갔는지 눈에 선했다. 민수의 노숙 동료들도 참 많이 데려갔다. 남들은 그냥 굶거나 얼어서 죽은 자연사라고 보고도 하고 뉴스 처리도 했지만... 민수는 안다. 그들이 작정하고 안 먹고 안 피하고 그냥 죽기로 결심하고 죽어 간 것이라는 걸. 그건 의도적 자연사로 위장된 자살이다. 보기 흉하게 목매거나 물에 빠지거나 하지 않았을 뿐, 생명을 포기한 자체는 다른 자살과 다를 게 없는 똑같은 자살이라는 것을.    

 

‘아직은 버틸만 하잖아? 조금만 더 살아 보고... 안 되면 그때 가지 뭐‘ 민수는 그런 생각으로 번번이 주섬주섬 챙기고 일어나 곤했다. 이날도 민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가방을 메고 이씨가 가르쳐 준 무료급식소로 걸어 갔다. 평소 안 아플 때면 성큼성큼 오래도 안 걸릴 거리를 이날은 무지 힘들게 걸었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위장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프고 신물이 넘어오는 통증이 괴로웠다. 땅은 흔들리고 몸은 오한으로 오싹 쪼그라들어 줄었다 퉁퉁 불어 늘었다 한다고 느꼈다. 계속 땅은 빙빙 옮겨가며 어지럽고...      

 

“여기가 밥 주는 곳 맞아요? 지금 이 줄이 기다리는 건가요?”

“예! 맞아요. 이 뒤로 줄 서요. 아직 한 시간 남았는 데... 그래도 일찍 기다려야 밥 안 떨어지고 받아 갈 수 있으니”

“아, 그렇게 많이 와요?”

“이 근처 무료 급식소가 가까운 곳에 없기도 하지만 여기가 맘 편히 맛있게 잘 해준다는 소문이 나서요”

“그렇군요. 난 이곳에 처음 와서 잘 몰랐어요”     


무려 한 시간, 물론 용돈까지 조금 주는 다른 어떤 곳은 무려 다섯 시간도 일찍 와서 줄을 선다고 했다. 뒤에 늦게 오는 사람들은 번호표도 없고 밥도 못 먹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니 한 시간 정도야 뭐 아무것도 아닐지도. 민수는 어지러움을 참고 이를 악물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온몸에서는 여러 증상이 교차하고 땀이 나다가 춥다가, 아프다가 멀쩡해져 편하다가... 그렇게 오락가락했다. 한참 지났을까? 조금씩 줄이 움직이고 앞으로 이동한다 싶었는데... 민수는 어느 순간 갑자기 하늘의 커다란 먹구름이 확! 땅으로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천둥이 동시에 귀를 때리고,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큰 하얀 조명이 번쩍 켜지고 자주 가던 한의원의 자외선 치료받을 때처럼 등짝이 후끈 뜨거웠다. 잠시 후 감각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아득해졌다. 민수는 지금 이게 무슨 일일까? 궁금하였는데 말이, 자꾸 입안에서 맴돌고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뱅글뱅글 말이 입안에서 어지럽게 도는 희한한 느낌… 눈앞도 하얗게 변했다. 방금까지 줄 앞에 뒤에 있던 사람들이 다 안 보이고 사라져버렸다.   

 

#5...     


“여보세요! 아저씨!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에구, 이제 살았네! 살았어!”

“엄청 놀랐는데 다행이구만!”

“그러게, 얼마나 굶으셨으면... 정신을 다 잃을 정도였을까? 에구 딱해라...”     


두어 사람이 자기들끼리 주고받으며 물어보는 소리에 민수는 조금 정신이 들었다. 사람 목소리가 들리면 일단 죽지는 않은 것이라는 걸 민수는 지난날 여러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저... 여기가 어딘가요?”

“아! 줄 서 계시다가 쓰러져서 놀라서 여기 옮겨 왔지요!”

“뭐 크게 다친 곳도 아니고 달리 증상도 없어서 좀 쉬게 하면 될거라고 맏언니가 말해주셔서 이 방으로 옮겨 눕혔지요!”

“이제 보이세요? 정신도 들고요?”

“예... 갑자기 앞이 캄캄해져서, 그 뒤가 기억이 안나네요. 고맙습니다!”

“조금 더 쉬었다가 괜찮아지면 식당으로 나오세요! 뭘 좀 먹어야 기운을 차리시지”

“그럼 우린 일도 있어서 나갈테니 좀 쉬었다 나오셔요!”     


그렇게 두 사람이 나가고 난 뒤 민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좀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치 젊은 날 술을 많이 마시고 필름이 끊어진 그때처럼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뿌옇기만 했다. 그러다 민수는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꽤 먼 길을 무료급식소를 찾아 걷느라 너무 지쳐있던 민수는 따뜻하고 밝은 방에서 누워있자 몸이 풀리면서 잠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빈속에 먹었던 약 기운도 한몫하는 것 같다.    

 

민수가 다시 잠이 깨어 창을 통해 쏟아지는 따뜻하고 밝은 햇살로 수십 년 전 그때를 회상하는 동안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니폼인지 수도복인지 단정한 옷을 입은 나이 든 아주머니였다. 그냥 평상복은 아닌 느낌으로 보아 이곳 무료급식소를 운영한다는 분 같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온 사람을 보면서 낯이 익다고 생각하며 민수는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자기가 너무 굶고 병들어 허약해서 헛 사람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시침을 떼고 내색하지 않으며 생각을 다잡으려는 순간... 들려온 말에 다시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민수씨! 저 알아보겠어요? 어쩌다 이렇게 아픈 사람이 되었어요?”

“..........”

“저 현서입니다.”

“..........”     


민수는 원래부터 말을 못 하는 벙어리였던 사람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듣기만 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입이 닫히고 목이 잠긴다는 말을 들었지만 자기가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 이렇게 사람이 넋이 나간다는 말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현서는 말을 이어갔다.   

  

“식사를 나누어주느라 바쁜데 바깥에 줄에서 누가 쓰러졌다고, 그래서 병원으로 연락할까 하다가 당신 얼굴을 보고 놀라서... 큰 상처나 증상도 없어 보이고 그래서 우선 내 방으로 옮겨 쉬게 해드리자고 했어요.”    

 

민수는 눈이 뜨거워졌다. 금새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흐를 것 같은데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팔소매로 눈물을 닦는다던가 별일 아닌 것처럼 포장된 내색을 한다거나 뭐 그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얼음 땡 놀이에서 걸린 사람처럼... 현서는 창문을 조금 열어 방안을 환기하고 가지고 온 죽을 식히느라 저으면서 말했다.   

  

“저도 많이 놀랐어요. 긴가민가 민수씨가 맞나 다시 보고 또 보고...”     


현서도 그제야 밖에서 참으며 표 안 내던 감정을 열고 조금 얼굴이 피어나 상기되고 있었다. 민수도 이렇게 놀라는데 현서라고 놀라지 않을까? 그 얼마나 오랜 세월이 비록 흘러서 강산이 몇 번을 바꾸어 놓았지만, 사람에게는 그 긴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는 모양이다.     


“많이 보고 싶었어...”

“나두요. 먼 타국에서 이쪽 하늘을 보며 자주 울기도 했어요”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갔네요. 벌써 40년 가까운 세월이...”

“안 죽고 살아서 현서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워! 신이 내 평생에 딱 한 번 나에게 선심을 쓰는 것 같네”

“그러게요. 우리 두 사람을 오랫동안 떨어지게 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살았어? 그 세월을...”

“그때 민수씨가 교도소에 있을 때 아버지가 강제로 우리 가족을 데리고 이민을 갔어요. 어떻게 연락을 하거나 한 번 더 만나러 갈 시간도 안 주고...”

“난 뒤에 현서가 살던 집을 찾아 갔는데... 아무도 모르더라”

“그랬구나... 미안해요. 어디 연락처를 남길 사람이 없어서”

“가족들은 미국에 있는 거야?”

“아뇨, 미국 들어가 세탁소를 차렸는데... 일년도 채 안되어 흑인 폭동이 일어나 그 통에 가게는 불타고 부모님은 총격으로 돌아가셨어요”

“어쩌다 그런 일이...”

“돌아올 길도 없고 몇 년을 버티고 살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랑 결혼을 했는데... 오래 못 갔어요. 알콜중독에 바람을 피우고 폭언도 심해서 이혼했어요”

“많이 힘들었겠다... 낯선 외국에서”

그러다 복지단체에 들어가 공부를 더 해서 그곳에 오래 살았는데... 고향 생각도 너무 나고 지쳐서 안 되겠더라구요. 마침 한국에 일할 사람도 파견한다고 해서 자원했지요“

”잘했네. 내게는 너무 늦었지만... 이렇게 얼굴 한 번이라도 보고 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민수는 피로가 다시 몰려왔다. 감정이 격해지고 이전의 기억들이 소용돌이치는 시간은 비록 짧아도 에너지가 많이 바닥나는 것 같았다. 현서는 민수의 얼굴을 보고 전문가답게 좀 더 자고 쉬어야 할 것 같다며 창을 다시 닫아주고 커튼도 쳐주고 나가면서 말을 남겼다.     


”여기는 제 방이니 편하게 쉬어요. 죽도 좀 먹고 약은 그다음에 먹어야 속이 안 쓰릴 겁니다“     


민수는 자꾸 그치지 않는 눈물이 볼을 타고 목을 지나 옷속으로 들어가는데도 내버려 두었다. 너무 늦은 재회를 만들어 준 신이 야속도 하고, 이 처참한 몰골로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 게다가 그냥 빈 몸도 아닌 병든 몸으로 현서를 다시 만나게 한 신은 더 야속했다. 한편 이제 현서를 보았으니 세상을 하직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럼 자기는 후회가 없을지, 현서는 맘이 편할지 여러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에 눈을 뜰 때는 이전 같지 않은 이 세상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잠이 들면서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 온 것은 한쪽 벽에 걸린 작은 액자였다. 굵지만 간결한 캘리그래피 글씨체로 쓰인 성구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 마태복음 11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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