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가족과 살며 생기는 반짝이는 파편들
언제인가부터 내겐 3시간남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건 나의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시간을 기준으로 생긴 것이다. 3시간 그 이상은 오래도 멀리도 가서는 안 된다는 선고.
그러나 삶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하루살이 생명이다. 날마다 아침이면 살기 시작해서, 밤이면 죽는 것과 같은 하루살이. 내일 계획을 세울 처지도 안 되고, 세운대로 해낼 여력도 없다. 그 하루살이의 곁에 또 다른 하루살이가 있다. 언제까지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은 병든 아내...
도무지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희귀난치병 중증 환자 가족으로 산다는 것도 온통 미지수다. 마치 미확인 비행물체가 어디로 갈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방광을 담당하는 신경이 마비되어 스스로는 나오지도 못하는 소변은 세 시간마다 남의 손을 빌려야만 살아지는 사람인데 나쁜 소식이 하나 더 보태졌다. 장애등급이 5년째 1급이던 것이 마지막 재심사에서 한 방에 5급으로 추락했다. 그나마 생존비로 나오던 장애수당도 중단시키고 1급으로 퇴원 후 가능하던 장애활동보조지원시간도 박탈당했다.
업친데 덥친다던가? 신용불량자가 된 아내에게 또 최후 통보라면서 제2금융사에서 채권을 넘겨받은 돈받는 전문회사에서 채무 강제집행 경고장이 날아왔다. 발병초기에 진 병원비로 감당이 안 되었던 두 곳의 카드대금이 10년 새 눈덩이처럼 불었다. 망하지도 갚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자만 계속 늘어갔고...
사는 동안 이런 일들에 파묻히면 웃고 못산다. 웃는 건 고사하고 하루도 못 견딘다. 살 이유보다 죽을 이유가 더 흔하게 널려있고, 신날일보다 우울할 일들이 더 사람을 목을 조를테니!
그렇다고 삶이 나를 괴롭힌다고 나도 자조와 자학으로 생존을 패면서 괴롭힐 수야 없다. 그게 더 나를 비참하고 우울하게 할테니. 더구나 내가 괴로워하면 내 삶을 담보로 생명을 버텨가는 아내는 또 얼마나 더 울게 될까? 그래서 처음에는 몰려서 하루살이가 되었고, 이제는 며칠 쯤 안죽고 살만한 여유만 생겨도 부자처럼 태평이 되려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 하루살이가 되기로 했다.
내 안의 눈물 – 아내여,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이 말이 하고싶은 운명 때문인지 내가 쓴 간병일기 책의 제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