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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규 Sep 12. 2023

감옥에서 온 편지.. “법무부에 편지 써줄 수 있나요”

착했거나 세상 물정 몰라 살인자가 된 강도영(가명)이 여름 끝물에 교도소에서 편지를 보내왔다. 세 페이지 분량의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제가 가석방 기준이 될 때, 나가서 살 곳이 있으면 좋다 하더라구요. 기자님께서 제가 가석방 기준이 되었을 때 (내년 1월~2월 사이입니다) 법무부에 편지 한 통 써주실 수 있을까요? 


기자님께서 제 주거 지원 해주신다 하셨던 거랑 경제적지원, 그외의 것들 적어서 보내 주시면 도움이 될 거라 하시더라구요. (주임님께서요). 내년에 제가 기준이 됐을 때 부탁드리겠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져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돌보다 끝내 사망에 이르게 한 간병살인 청년 강도영. 그가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당시 아버지의 병원비는 약 2000만 원이 넘었다. 군입대를 앞둔 22세 강도영이 감당할 수 없는 돈이었다.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방치하고 나몰라라 도망이라도 갔다면, 패륜아는 될지언정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는 되지 않을 터. 


하지만 가난한 강도영은 집에서 아버지를 돌보겠다는 무모한 길로 나섰다. 똥 오줌을 치우고, 경관급식을 하고, 1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 그 일을 하다 월세를 밀리고, 도시가스가 끊기고, 휴대폰과 인터넷마저 끊기다, 결국 쌀마저 떨어져 2만 원을 타인에게 빌렸던 청년. 


[관련 기사 보기 - "쌀 사먹게 2만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결국 아버지는 안방에서 방치돼 사망했고, 강도영은 아버지와 살던 집에서 살인자로 체포됐다. 나는 그의 사연을 2021년 기획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를 통해 보도했다. 


이듬해 봄날, 국가인권위원회는 내게 인권보도상 본상을 줬다. 상금은 150만 원이었다. 


기쁘고 영광스런 일일까? 부정하기 어렵다. 근데, 오래전부터 이런 상과 상금을 받을 때면 뭔가 어색하고 찜찜하고 그랬다.(믿거나 말거나 여러 번 받아봤다) 


타인의 슬픔과 눈물이 기자에게 현금으로 돌아오는 기막힌 순간, 이게 마냥 웃을 일인가. 무엇보다 기자가 박수를 받는 그 순간에도 핵심 취재원이 감옥에 있는 현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시상식 때 나는 “상금은 강도영 출소 후 그가 살 집을 구하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내가 가질 돈이 아니었다. 그때 그 순간, 강도영 주머니에 150만 원이 있었으면 그는 살인자가 안 됐을 거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원작 중 하나인 신민영 변호사 쓴 책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수사의 왕은 자백, 자백의 왕은 합의, 그렇다면 합의의 왕은 뭘까? 합의가 난항을 겪고 있는 피고인에게 항상 엄마가 있냐 물오보곤 한다. 합의가 되지 않을 때 피고인의 엄마가 등판하면 합의가 잘 된다. 피고인 본인보다 훨씬 더 합의에 절박하게 매달리고 피해자에게는 피고인 본인이 찾아가는 것보다 더 큰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상당수 국선 피고인에게는 엄마가 없다. 가족도 면회 오는 지인도 없는 경우가 많다.”


강도영 역시 그렇다. 그의 곁에 누군가 있었다면, 그는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자는 되지 않았을 거다. 그가 출소 이후의 삶을 막막해 하는 건 당연하다. 편지로 몇 차례 “출소하면 살 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도, 강도영은 기회 있을 때마다 편지로 이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강도영이 구속된 지 2년. 우린 여전히 편지로 소통하고 있다. 

법무부에 편지 한 통 써야겠다.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경북 모 교도소로 면회도 한 번 가야겠다. 강도영에겐 면회 오는 가족이 없으니 말이다. 


<셜록>이 지향하는 솔루션 저널리즘. 말이 쉽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 문제도 대개가 결심에서 끝나 해결이 난망한데, 무슨 수로 세상과 타인을 바꾸겠는가. 


누군가의 곁에 남는 한 사람이 된다는 것, 어쩌면 이게 훨씬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거라도 하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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