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서 ‘술독’이 빠졌다

나는 이제 엄마를 닮아가고 싶다

by 파랑새

엄마의 말이 귀에 걸리지 않았다. 술기운을 빌려 엄마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을 또 했다.


생선 장사를 하는 할머니 대신 동생들을 챙겨야 했기에 엄마는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스물한 살 부잣집인 줄 알고 만난 지 1일주일 만에 아빠와 결혼했지만 빚 살림이었다. 엄마 또는 아빠를 잃은 앞뒷집의 조카들까지 거두고, 사사건건 잔소리하는 시어머니와 고령의 시아버지를 모셨다. 자식 셋에 농사도 지어야 했고 가축도 키웠다. 바깥일을 좋아하는 남편은 무심했다. 엄마는 술로 자신을 위로했다. 맥주 컵에 소주 반 병을 따라 단숨에 털어 마시고, 안주는 물 한 모금이면 족했다. 그렇게 소주 한 병, 두 병으로 고단한 하루를 죽여 나갔다.

그런 엄마에게 탈이 난 건 환갑이 지나서였다. 유독 내 생일이 되면 몸살을 앓는 엄마는 그해 겨울에도 몸살을 앓았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보다 소주 한 잔을 진통제 삼아 버티던 엄마는 자진에서 병원에 가겠다고 나섰다. 감기인 줄 알고 찾은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죽을 때까지 끊지 못할 것 같던 술은 죽음의 경고 앞에서 힘없이 끊어져 나갔다.


엄마에게서 술독이 빠져나가자 온전한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예민한 아빠의 성격을 스펀지처럼 받아주는 긍정적인 성격에다, 허리 아픈 과일장수 할머니가 안쓰러워 가까운 마트보다는 노점상을 찾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 바로 나의 엄마였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대신 엄마는 술을 담근다. 종류는 석류, 매실, 앵두, 포도, 꽃사과, 쑥, 모과, 대추, 귤, 양파 등 실로 다양하다. 엄마가 담근 술을 가족들이 나눠 마시며 이제 엄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술을 마셔야만 속마음을 꺼내놓았던 엄마는 이제 술 없이도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술 때문이 아니라 원래 맘속에 담긴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엄마가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말이 귓가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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