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버린 것들

‘다 때가 있다’

by 파랑새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을 때의 일이다. 300여만 원을 들여 호텔 인턴십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3개월 어학연수를 마치고 호텔에서 일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에서의 설명과 달리 막상 호주에 가보니 영어가 안 되면 바로 job을 잡을 수 없었다. 어학연수가 끝났는데도 영어가 생각만큼 늘지 않아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3개월 버틸 생활비만 챙겨갔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식당 알바’ 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넣고 연락을 기다렸다. 딱 한 곳에서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키 153cm, 몸무게 38kg, 딱 봐도 약해 보였겠지. 사장은 가재 눈을 뜨며 물었다.


“식당에서 일해 본 적은 있어요?”

“아니요~ 그냥 하면 되지 않을까요?”


당연히 사장으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호주나라 사이트를 통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PC방을 전전하며 일자리를 구하던 중 한 교민 신문사에서 기자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다. 대학 때 교내 방송국 기자로 활동했었고 졸업 후 잠깐 기자 준비를 했던 터라 이력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됐다. 이력서를 보내 놓고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기대감에 설레었다.


“한국에서 못한 기자를 호주에서 할 수 있다면 영어가 늘지 않아도,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아”


며칠 후 이력서를 낸 신문사의 편집국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앞으로 취재하게 될 분야를 설명하면서 ‘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전화 면접 후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한 달여가 지났다. 영어도 늘지 않았고 여전히 일도 구하지 못했다. 호텔 인턴십은 계속 미뤄졌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PC방을 찾았다. 그리고 한 달 전 전화면접을 봤던 신문사에서 여전히 기자를 채용하고 있다는 공고를 발견하고, 무료 어학코스 한 달 과정 수료한 내용을 추가해 다시 이력서를 보냈다. 다음날 ‘한번 와 보라’는 연락을 받았고 1개월은 아르바이트로, 1개월은 프리랜서로, 1개월은 계약직이란 이름으로 테스트를 거친 후 정식 기자가 됐고 그곳에서 7개월간 근무했다.


‘영어가 안 늘어도, 여행을 안 해도 좋다?’


1년 365일을 완벽히 채우고 ‘호주 교민 신문사 기자’라는 커리어 한 줄 만들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영어는 늘지 않았고, 여행도 못했다. 호텔 인턴십 프로그램에 300만 원을 냈는데, 호텔에서 일도 하지 못했으니 돈도 날린 셈이다.


‘영어 공부 안 한 거, 호주 여행 안 한 거 후회하지 않느냐고?’


기자로 일할 수만 있다면 영어고 여행이고 포기해도 좋다던 내 생각을 무척! 몹시! 후회하고 있다. 7개월간의 짧은 기자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 그때, 그 장소에서만 할 수 있었던 경험들을 포기하지 않고 챙겨 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마다 인생의 속도가 다르고, 다 때가 있다’는 말을 좋아하고 믿게 되면서 놓쳐버린 그 시간들이 아깝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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