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폭력으로 자라게 놔두지 말자
스스로를 착하다고 착각해왔지만 ‘천사 콤플렉스’에 빠진 건 아닐까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고등학생 때 미용실에서 “학생, 참 착하게 생겼네”라는 말을 듣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일종의 ‘착함’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내 감정보다는 상대의 감정을 살피는 게 중요했고 ‘착한 이미지’를 유지하고자 했다. 부작용도 따랐는데 상대가 타협할 수 없는 선을 넘어올 경우, 그 자리에서 경고하지 않고 혼자 카운트를 세다가 ‘3’이란 숫자가 채워지면 일방적으로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말했다가 날 싫어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방어기제가 되어 굳어버린 습관이다.
어느 날 친구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놨고 상대방에게도 기회를 주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혼자 판단하고 정리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이를 알리고 바로 잡을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 사람을 마음에서 정리했다. 나이가 한참 어린 후배다. 나의 친절이 ‘만만하게 봐도 되는 사람’으로 여기도록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그 후배는 말로는 나를 ‘정신적 지주’라고 치켜세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깎아내렸다. 소주 한 병을 마시고 후배에게 전화해 내 감정을 쏟아냈다. 그 후 1년 넘게 말을 섞지 않고 있다.
술을 마시고 준비되지 않은 후배에게 내 감정을 쏟아낸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 그 후배와 다시 잘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한다. 나의 ‘사전 경고’가 더 단호했더라면 지금 같은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거라는 자책도 한다. 설사 관계가 틀어진 근본적인 책임이 상대에게 있다고 해도 ‘말의 폭력’은 내가 먼저 시작했다. 나의 표출되지 않은 감정이 분노로 자라 칼이 되어 상대방을 찔렀다. 여기서 나는 할 말이 없다.
감정이 ‘폭력’으로 자라기 전에 상대에게 ‘단호한’ 사인을 주자.
내가 가진 것 이상의 ‘착함’을 발휘하려 애쓰지 말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혹시 ‘천사 콤플렉스’에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