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선생님!”
화가 잔뜩 낀 하이톤의 목소리에 다짜고짜 자기 말만 쏟아내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 때문에 이런 류의 사람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무슨 사연인지 ‘측은지심’을 발휘해 고개를 끄덕여가며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좋은 말도 한두 번’이라지 않은가. 누군가의 하소연을 반복적으로 듣는 일은 참으로 지치는 일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또 내가 받아야겠지. 전화 한 대 더 놔주지. 내가 전화상담원도 아니고. 전화는 매번 나만 받아야 하나?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지, 이게 내 일은 아니지. 선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더니. 딱 그 짝이다.
“거기 OOOOOO죠? OOO 씨 좀 바꿔주세요.”
한 달 전에 통화했던 ‘하이톤’의 그 아저씨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용건만 간단히 전달받고 끊어버려야지. 제 때 끊지 않으면 스트레스에 못 이겨 나도 언성을 높이게 될 것이 자명하다.
“아니, 지금 그 분하고 통화하실 수 없다니까요. 오늘 말씀해주신 것까지 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중요한 사항이란 말입니다. 제가 직접 전해야겠습니다. 중요한 일이라는데 왜 전화번호를 안 가르쳐줍니까?” “전화번호는 개인정보라서 제 마음대로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선생님 말씀 제가 잘 알아들었고요. 오늘 얘기해주신 것까지 빠짐없이 전달하겠다니까요.”
“허어. 참. 이해를 못하겠네. 아니 그러니까…”
30분 넘게 전화통을 붙잡고 있다. 이 전화 때문에 다른 업무를 못하고 있다.
“저기요, 선생님!”
내 입에서 이 말이 나오면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난번에는 김 OO라고 하시더니, 오늘은 김 O라고 하시네요? 그리고 그분이 그 사람을 직접 보셨답니까? 선생님도 누구에게 전해 들으신 거 아닙니까?”
이 아저씨 당황한 듯 말을 얼버무리더니. 그제 서야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때 선량한 시민들이 얼마나 죽었습니까? 같은 동네 사람들을 배신하고 그 놈들한테 모의 장소를 제공하다니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근데 그놈은 지금 미국에 사업체 여러 개를 차리고서는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가 바뀌었으니 처벌받아야 하지 않겠냐고요.”
35분간 통화하면서 25분은 실랑이를 벌였다. 나머지 10분 동안 온전히 그 아저씨 말에 귀 기울였고 진심으로 공감했다. 그때서야 아저씨는 “메모를 잘 전달하겠다”는 내 말을 믿고 순순히 전화를 끊어주었다.
전화받기 전부터 이미 나는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었고, 하이톤의 그 목소리는 짜증지수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니 상대의 말에 반응할 여유조차 없다. 내 마음이 비어있으니 상대의 말을 들을 수가 없구나. 내 마음을 먼저 채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