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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새 Feb 17. 2019

[서평]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선생님은 이 병을 잘 몰라요..."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읽었다.

책의 저자인 20여 년간 우울증을 치료해 온 정신과 의사 임세원 씨는 "선생님은 이 병을 잘 몰라요..."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예고 없이 만성 통증이 발병했고 그 고통은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이 그렇듯 그도 '자살'을 생각했다. '자살'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살아가기로 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그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을 써 내려간 책이다. 그는 이제 "저도 그 병 잘 알아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지난 몇 년 간 내가 겪은 감정들이 우울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닌가',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싶었을 때가 있었다. 저자가 책에서 기술한 '조기 각성 증상'을 비슷하게 나도 겪었다. 바로 불면증이었다. 잠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째깍대는 시계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거슬렸고,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쿵쾅댔다. 나를 괴롭히던 고민거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맴돌았다. 생각을 끊어내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 날을 꼬빡 새고 출근해야 했고 회사에서는 피곤에 절어 무기력했다.


그런 시간들이 2년 정도 계속됐다. 그 증상에서 지금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다만 '생각 멈추기'는 가능해진 상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는 우울한 생각의 굴에 들어서려 할 때 즉시 그 생각을 차단함으로써 내 마음을 지켜내고 있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저자 역시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끝나게 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트라우마는 과거에 끝나 버린 사건이므로, 현재의 자신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다 잘될 거야"라는 막연한 낙관은 오히려 화를 부른다고 했다. "긍정적인 기대가 한 번, 두 번 무너져 내리면, 오히려 부정적 예견을 했을 때보다 훨씬 더 빨리 몸과 마음이 상하게 된다"는 것.


대신 '희망의 근거를 찾으라'고 조언했는데, '신념(나아질 것을 믿으며 오늘을 산다)'과 '현실 직시(답이 없음이 답일 때)', '인내(한계를 인정하면서 한계를 넓히기)', '지금 그리고 여기(미래와의 관계 형성하기)'.. 이 4가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정신과 의사가 자신도 우울증을 겪어봤으니 이를 극복한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다. 예상과는 달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위로가 됐다. 우울증은 완치 가능한 증상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스스로 밑바닥까지 마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살피고, 다스리고,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정신과 전문의가 우울증을 겪은 한 인간으로서 수평적인 위치에서 바로 그 경험을 나누고 있는 책이다.


저자 임세원 씨는 2018년의 마지막 날, 진료시간을 넘겨 찾아온 자신의 환자를 상담하다, 그가 휘두른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정신질환 속에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들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던 그의 삶은 죽음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그 시점에 구입한 책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생전 이 책에 남긴 소망을 이곳에 옮겨본다.


"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계속해서 내 희망을 이야기하며 나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언제까지라고 기한을 정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 믿으면서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설령 나아지지 않는다 해도, 죽는 날까지 평생을 고통에 시달린다고 해도, 수많은 오늘을 견디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살다 간다면,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는 아니 최소한 나의 가족들은 나를 어느 순간 찾아온 불행으로 인해 괴로움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삶을 마무리한 만성 통증 환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열심히 인생을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라 기대한다." (P142~143)

<사진출처=연합뉴스>


p.s 고 임세원 씨의 유족들은 의료진의 안전을 보장하고 정신질환자가 편히 치료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 고인의 뜻을 기려 조의금의 절반은 그가 생전 근무한 강북삼성병원에, 나머지 절반은 고인이 못다 한 일을 이루기 위해 동료들에게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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