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하철 타다 보면 나는 냄새 있어”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재건축이 예정된 3천500만 원짜리 전셋집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다. 10년 만에 이사 나오던 날, 이삿짐센터 아저씨는 “사람 수에 비해 짐이 적은데 집 크기에 비해서는 살림살이가 많다”고 했었다.
빚 살림에 논과 밭은 물론 살던 집까지 경매에 넘어갔다.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오면서 한 푼도 건져 나오지 못했지만 서울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한(비록 전세지만)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셨다. 밤마다 내 방 천장과 벽을 ‘싸악~ 싸악~’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나 역시 그 집은 우리에게 돈을 모아준 고마운 존재였다.
대출을 끼고 구매한 새집은 반지하다. 정문에서 보면 반지하, 집안으로 들어가면 1층이다. 지대가 높은 탓이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어떻게 이런 집을 구했느냐”고 집주인인 오빠를 치켜세우며 만족감을 표현한다. ‘빈손 털고 나와 그 누구의 도움 없이(은행의 도움을 받았지만) 서울에 집을 마련하다니..’ 참으로 기특하지 않은가.
“둘이 냄새가 똑같다”
“가끔 지하철 타다 보면 나는 냄새 있어”
가사도우미에서 ‘짤린’ 국문광(이정은)이 재등장할 때부터 급격히 당이 떨어졌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가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는 아예 몸을 뒤틀면서 영화를 봤다.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에서 그려낸 ‘밑바닥 인생’을 보고 그 적나라한 묘사에 한동안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피에타>가 보여준 ‘밑바닥 인생’이란 것은 나에게는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세계, 그리고 무엇보다 알고 싶지 않았던 우리 사회 이면에 대한 이물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기생충>이 준 불편함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나에게서도 ‘냄새’가 날지 모른다는 불편함이었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디테일하게 보여줬다. ‘다양성’을 배제하고 가난의 극단을 오려 붙였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박사장(이선균)이 기택(송강호)의 몸에서 ‘반지하 냄새(라 쓰고 가난 냄새라 읽는다)’를 맡고 코를 막는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던 그날, 내가 걷는 그 길에서 ‘지하철 타다 보면 나는’ 그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가 고파졌다. 집 반대쪽을 되돌아가 햄버거 가게로 갔다. 평소와 달리 감자튀김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배가 고팠던 걸까, 영화가 불편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