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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Sep 07. 2021

치과도 수면마취의 시대

앞광고뒷광고아님


어릴 적부터 치과에 가면 무섭다기보다는, 입에 무언가 들어오면 무의식적으로 혀에 힘이 들어가는 체질이라 치과를 멀리하게 되었다. 

민폐를 끼치는 게 싫어서 더욱 그랬다.


스케일링을 하든 충치 치료를 하든, 입 안에 핀셋 같은 도구가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일종의 반사 신경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도록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사랑니 발치도, 스케일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중간에 뛰쳐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 주더라도,


“혀에 힘을 주지 마세요.”

“잠깐만 참아 보시겠어요?”


이런 말들이 반복될 때마다 마음이 상했다.


게다가 석션으로 침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아 침이 꼴딱꼴딱 넘어갈 뻔한 적도 있었다. 

여러 좋지 않은 경험들 때문에 치과라는 곳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건강 프로그램을 보다가, 요즘 치과에서는 수면 마취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집 근처인 천안에서 수면 마취를 제공하는 치과를 찾아보기로 했다.


반신반의하며 한 치과를 검색했는데, 다행히도 해당 치과의 모토가 나의 발걸음을 끌어들였다.



우선 치과에 도착하자마자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하고 입 안을 보여드렸다.


아무리 수면 마취를 한다고 해도, 우선 치아 상태를 직접 확인해야 하니 당연한 절차였다. 

그런데 역시나, 입 안에 뭔가 들어오자마자 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 이래서 힘드셨군요. 알겠습니다.”


원장님의 말을 들은 뒤 치아 엑스레이를 찍고 치료 계획, 즉 견적을 받았다.

 • 사랑니 2개 발치

 • 잇몸 뿌리가 거의 없는 흔들리는 치아 2개 발치

 • 충치 치료

 • 신경 치료

 • 스케일링


그야말로 대공사였다. 제대로 된 치과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터라, 그 규모에 놀랐다. 

이후 원장님과 마취과 선생님, 간호사분들이 잠시 회의를 시작하셨다. 

아마도 치료가 복잡하다 보니 여러 가지를 논의하셨던 것 같다.


잠시 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학병원처럼 전신 마취를 하는 게 아니어서 여러 번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매번 수면 마취를 하게 될 듯합니다.”


나는 비용은 상관없으니 그렇게 해달라고 대답했다.


결국 치료는 최대한 비용과 수고를 줄이는 방향으로, 총 4회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했다:

 1. 스케일링 + 충치 치료 (수면 마취)

 2. 오른쪽 사랑니 1개와 흔들리는 치아 1개 발치 (수면 마취)

 3. 왼쪽 사랑니 1개와 흔들리는 치아 1개 발치 + 신경 치료 (수면 마취)

 4. 4개월 뒤 2개 임플란트 작업


내게 중요한 것은 치료 방식이 아니라, 수면 마취가 제대로 될 것인가였다. 

입 안에 무언가 들어온 상태로 30분 이상 버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료는 대부분 1시간이 넘게 걸릴 예정이었다.


첫 번째 치료로 스케일링과 충치 치료가 진행되었다.


병원은 건물 전체가 치과 병원이었고, 마취 치료를 위한 별도 층이 있었다. 

마취 구역으로 들어갈 때는 에어 부스를 통과해야 했고, 마취과 선생님도 과하리만큼 친절했다. 

섬세하게 하나하나 체크해 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팔에 주사를 맞고 입을 벌렸는데, 이상하게도 마취가 전혀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치료가 끝난 뒤 나는 물었다.


“아무래도 마취가 안 된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저희가 혹시나 맥박이 떨어질까 봐 조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1시간이 지나 있었다. 분명 또렷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시간이 그렇게 지나 있었다니 이상했다. 

아마도 일반 내시경 수면 마취와는 다른 약물을 사용한 듯했다. 

내시경 마취처럼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걸면 반응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생애 처음으로 충치 치료와 스케일링을 1시간 넘게 아무 불편함 없이 받아냈다.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뻔했다.


다음 날에는 사랑니 2개 발치를 진행했다. 

이번에도 마취가 안 되는 것 같다고 투덜댔지만, 시계를 보니 1시간 30분이 지나 있었다.


점점 치과 치료에 익숙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소독 치료 시간에, 혀의 반사 신경이 살아나서 소독 작업을 방해하는 나를 보며 수면 마취가 잘 되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치료가 진행될수록 나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충치 치료, 발치… 이제는 치과에 오는 것이 예전만큼 두렵지 않았다.


세상이 많이 좋아진 덕에 이렇게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


P.S. 뒷광고 아님, 앞광고도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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