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현상, 갖가지 해석 양상에 대한 고찰

by 김필필

어제는 한글날,,, 사회생활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부터는 휴일이나 국경일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단지 쉰다는 - 월급과 상관없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 것 자체에 감사하다 보니 한글날 또한 한글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기기보다는 휴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휴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고민하던 중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효도를 하기로 하고 - 근데 왜 이렇게 슬펐던가 - 시부모님과 신랑과 아들과 순천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생태수도를 자칭하는 순천은 아름다운 정원과 순천만, 동천과 송광사 등 다양한 볼거리와 맛있는 먹거리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물론 비슷한 시기의 작년에 똑같은 장소를 이미 다 돌아보고 감탄했다는 전제가 있어 뭔가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효도의 날로 정한 이상 나는 어제 순천에 처음 온 것인 양 감탄과 탄사와 찬사를 연발했어야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본능이란 참으로 무서운 적응능력을 가진 고로.....


이야기가 자꾸 산으로 가므로...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갖가지 정원들을 방문하던 중 한방체험을 할 수 있는 한옥마을 비스름한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민속놀이인 투호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아직 그런 것에 재미를 느낄만한 어린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도 두 돌이 지나고 30개월을 살아가고 있는 어린 사람으로서 처음 보는 그것에 호기심이 발동했음은 당연지사,,, 마침 옆에서 열심히 살을 날려 항아리에 넣으려 애쓰던 비슷한 또래의 아가와 함께 놀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네 어머님들의 친화력은 어찌 그리 빠른지 - 외교사절단으로서 손색이 없겠다 - 그 아이의 할머니와 우리 시어머님이 어느덧 말을 트고 이런저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항아리 두 개에 십여 개의 살을 넣어가며 투호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두 손자의 두 할머니는 어느덧 필연처럼 손자 이야기로 넘어가 주시고, 손자들의 작은 몸놀림에 '어이쿠~!, 그렇지'라든가 '잘하네' '하이고~놓쳤네' 등 판소리 추임새 같은 멘트를 날리신다.


가만히 관찰해보니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성향을 가졌더라. 우리 아들은 항아리에 살이 들어가지 못할 것이 두려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조심해서 그냥 넣다시피 하면서도 멀리 날아간 살은 반드시 가서 짚어오고 있었다. 반면 다른 아이는 들어가든 말든 멀리서 그냥 던지기 바빴고 멀리 떨어져 버린 살은 상관하지 않았다.


요 장면을 한 참 바라보던 두 할머니는 갑자기 서로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손자가 거침이 없구먼~ 친구가 우리 손자를 따라 하네 그려... 똑똑하단 말이 시~ 저 봐봐... 친구가 따라하자네..."


이에 질세라 "아이고, 우리 손자 침착한 거 보소 조심해서 넣는 거 봐봐봐~ 으메 착한 거, 친구가 던져 분거를 지가 가져다가 넣어주구먼~"


이렇게 시작된 두 할머니의 기싸움은 그들이 그 날 처음 만났다는 사실에 대한 이성의 끈이 없었다면 서로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움켜쥘 것 같은 약간은 험악하고 불편한 분위기로 번졌다. 옆에서 모든 상황을 보고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나는 눈에 보이는 하나의 장면에 요렇게 서로 다른 해석 양상이 나타날 수 있음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는 아가들의 놀이 장면에 갖가지 미사여구와 찬탄이 난무하면서 우리 시어머님이 일격을 날리셨다. 아주아주 객관적이고 상대방을 한 방에 제압할 정도로 위력 있는....


"개월 수가 같은데 우리 아기가 겁나 크네... 키도 크고 몸도 좋고.. 말도 잘해~"


순간... 헉.... 상대방 할머니의 얼굴에 예상치 못한 일격으로 인한 당혹감, 난처함, 민망함, 손자에 대한 걱정, 약간의 수치심, 갈등과 의연함, 며느리에게로의 약간의 책임전가, 뭔가 다른 칭찬거리를 찾고자 하는 분주함, 찾을 거리가 마땅찮은 초조함, 김장감, 처연함,, 에라 모르겠다 하는 해방감,,,,, 등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 시어머님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날린 자신의 민첩함, 자신감, 당당함, 손자에 대한 자랑스러움, 밥 안 먹는 손자를 먹이기 위해 지내왔던 고통의 나날의 보상에 대한 당연함, 어디 또 덤빌 테면 덤벼 봐라 하는 약간의 오만함, 승리의 깃발을 가진 자만이 누리는 자유와 승리에의 도취, 성장과 발육이 뛰어난 손자의 할머니만이 가질 수 있는 풍모와 우아함, 이쯤 해서 그만해야지 하는 약간의 미안함으로 얼굴 가득 거룩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다.


"긍께... 우리 손자가 밥을 잘 안 먹어... 어린이집 댕겨~ 나는 못 봐 힘들어서~"

혼잣말처럼 얼버무리시며 무안한 듯,,, 아니면 우리가 초면임을 방금에야 깨달은 듯 총총걸음을 옮기신다.


"우리 아들이 크긴 하네요~" 할 말이 없어 한 마디 거들었던 내게 시어머님은 못다 한 멘트를 날리신다. "우리 애기가 크제~ 쩌그는 봐라, 할머니도 쬐~ 깐해갖고 애기 크도 않겄다. 글고 저 애기는 못 봐주겄구만,, 하는 것이 부잡해서.... 우리 애기는 안 그래야~ 근께... 내가 봤제~"


어머님.... 승.....


마지막 멘트를 그 할머니에게 못 날리신 게 아쉬우신 듯 쩝쩝 입맛을 다시시다가 행복감에 젓어 손주를 얼르시면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신다.


30개월 아가들의 노는 장면 하나로도 절대 객관적일 수 없는 갖가지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는 이 시대에 어찌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대의를 논하며 국론을 통일하는 일이 쉬울 수 있겠는가.

정말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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