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하늘을 가진 나라라니...

by 김필필

삶은 늘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던 호주가 나의 삶의 터전이 되고 그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는 순간, 이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마치 내 일인 냥 떠들썩 해지는 순간..... 이 또한 다르지 않은 나의 삶이 되었다.



호주는 그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 또한 상당히 먼 나라였다. 세계 여행지를 떠올릴 때 아래 언저리의 선택지에 위치하고 몇 번이고 들었던 호주의 수도는 또 몇 번이고 내 기억에서 지워지기 일쑤였다. 하나의 대륙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신기한 나라, 터무니없이 생긴 생물체들이 지천에 널린 나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신이 선물한 갖가지 광물들이 풍부한 나라, 코알라와 캥거루의 나라, 한 여름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곳, 그리고.... 또? 민주주의 일 것임이 분명하고 대통령제인가, 내각제인가? 지도를 보니 영연방인가? 아닌가? 시드니와 멜버른 말고 수도가 그 어디였더라........ 굳이 궁금한 점을 해소하지 않고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던 호주에 막상 들어와 그들과 살아가는 나의 삶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물론 그전에 궁금했지만 굳이 알아보지 않고도 충분히 아무렇지 않았던 수 많은 궁금증들은 여전히 궁금한 채로 남아 있다. 그중 일부는 생활 속에서 자연히 알게 되어 어엿한 호주 시골의 주민으로 살고 있지만, 이 곳에 오기 전에 꼭 알아봤어야 했을 것을 놓치고 말았다.



산불!!!! 호주는 신이 주신 자연경관과 아름다운 날씨로 유명한 반면 남극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 오존층 파괴로 인한 지구 환경 변화에 가장 민감한 나라이다. 또한 매년 크고 작은 산불과 엄청난 홍수, 태풍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겪지 않고서는 절대로 실감하지 못할 일이었다.



특히 호주의 남동부 빅토리아 지역은 매년 크고 작은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들은 '부쉬 파이어'라고 부르는 산불(엄밀히 산보다는 목초지나 초원을 태운다.)을 예방하기 위해 매년 어마어마한 예산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를 상징하는 유칼립투스 나무의 잎에 휘발성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고 나무껍질도 쉽게 벗겨져 작은 불씨에도 쉽게 자연 발화되고 불을 옮기기 용이해서 모든 산불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거기에 극악스러운 태풍과 바람이 동반되면 유칼립투스에서 자연 발화된 작은 불씨는 어마어마한 산불이 되고 이는 걷잡을 수 없는 자연재해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사회에 불만이 많은 반달리스트들은 태풍이 부는 밤마다 부쉬 주변을 돌아다니며 작은 불을 놓기도 한다고 하니 세상에 어디에도 평화로운 천국 같은 곳은 없나 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자연재해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호주인들에게 '블랙 세터데이'는 트라우마 같은 날이다. 2009년 2월 7일 빅토리아주에 기록적인 산불이 일었다. 10여 년 간 지속되어 온 가뭄과 연일 기록적으로 치솟아 오르는 기온 탓에 산불은 삽시간에 온 주로 번졌고 사람들은 대비할 틈도 없이 화염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다. 이 산불로 173명이 죽었고 2500여 가구와 어마어마한 토지가 불탔으며 가족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며칠 동안 가시지 않은 자욱한 연기 속에서 울부짖었다. 2500만여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호주에서 사상 최대의 산불이 발생했고 비극적인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겪은 후 이들은 산불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 날 이후 호주는 자연재해 예방과 피해 복구 등의 예산을 확대했고, 재해 발생에 관한 매뉴얼 개발과 컨트롤 타워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또 국민들의 재난 대응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신속한 정보 전달과 일괄적인 상황 안내 등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했다. 그렇지만 신만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불타는 하늘을 모두 제어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겪었다.


2019년 3월 2일.

벌써 1여 년 전의 일을 회상하면서도 울컥하는 심정이 드는 것은 예상치 못한 극한의 경험에서 오는 트라우마 라는 것인가. 아니면 의지의 한국인으로서 남반구의 외딴 나라에서 겪은 어려움마저 극복한 긍지에서 오는 것인가. 무튼 이야기는 1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요일 저녁이었다. 한창 노을이 지는 하늘이 그 날따라 유난히 붉었다. 말 그대로 하늘이 불타고 있었다. 당시 텔레비전 수신기도 설치되어 있지 않던 호주 시골의 우리 집에서 보는 노을 진 하늘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유난히 붉었던 그 날의 하늘 또한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늦은 밤 호주 사는 친구에게서 호주 산불이나 자연재해 등을 알려주는 앱을 깔고 소식을 좀 들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산불이 난 것 같다는 친구의 말에 그저 그런 불이려니 생각하고 인터넷 뉴스와 빅토리아주의 자연재해 등을 알려주는 앱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앱에서 마구마구 뜨는 알람 표시등과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인터넷 뉴스들이 심상치 않았다. 그때부터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고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그때쯤 매캐한 냄새가 창문과 문 틈 등을 타고 집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애꿎은 핸드폰 앱만 새로고침 하면서 시간은 흘러갔고 어둠이 밀려오는 시간임에도 잠은 오히려 달아났다. 친구는 우선 인터넷과 앱을 잘 보고 탈출 경고 알람이 뜨면 어디로든 가야 한다고 했다.



뭐.... 라.... 고? 탈출????

탈출이라니.....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상황에 우리는 눈만 껌뻑거렸고 이색적인 상황에 들뜬 아이들은 내심 신기한 눈치였다. 우리는 호주에 온 지 겨우 한 달 남짓이었고, 좌우가 바뀐 운전과 전혀 다른 신호체계에 운전도 미숙한 처지였다. 게다가 낯선 환경에 적응도 하지 못했는데 탈출이라니... 어디로? 언제?

집에 가고 싶었다. 호주 집이 아니라 머나먼 한국의 집에 가서 안락한 침대에 몸을 누이고 뜨끈한 차라도 마시고 싶었다. 엄마들의 불안하고 초조한 표정과 행동에 아이들도 불안해 하기 시작했고,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느냐는 답도 없는 질문을 해댔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 날은 이미 너무 늦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다행히 우리 집 근처에 빅토리아 주에서 지정해 놓은 대피소가 있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경찰서도 있고, 호주 사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도 될 것 같았다. 사실.... 아침이 되면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말하며 일어날 것 같았다. 아니,,,, 호주에 가는 꿈을 꿨다고 한국의 집에서 산뜻하게 일어나고 싶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렇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일요일 아침 일찍 밖을 살펴보았지만 해가 뜨지 않았다. 이미 해가 나와야 할 시간인데 하늘이 이상했다. 적벽돌에 시멘트를 뒤섞어 아무렇게나 덧발라 놓은 듯이 군데군데 불긋불긋한 회색 하늘이 사방을 뒤덮었고 매캐한 냄새는 좀 더 노골적이고 공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언가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시간이었다. 앱에서는 위험을 알리는 빨간색 반경이 우리 집 주변을 감싸 오고 있었고, 인터넷 뉴스에서는 집을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들과 불타버린 숲들, 화염에 휩싸인 초원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은 노란색 반경에 위치한 곳에 살고 있는 친구는 때를 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바다 주변 또는 멜버른 시티로 갈 것을 추천했다. 버스나 기차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한 탈출로는 이미 막혀 있었다. 밖은 경적을 울려대며 떠나는 차량들로 들썩였다. 사람 구경하기 어렵던 조용한 우리 동네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차들이 쏟아져 나왔다. 떠나야 했다.



간단한 옷가지와 현금, 카드, 충전기 등 중요한 것들을 챙겨 차에 실었다. 두 대의 차가 동시에 움직이면서도 서로 흩어지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써야 했다. 간단한 음식과 물도 챙기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여권과 신분증도 배낭에 넣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밤을 지새우는 것인지 그렇다면 숙소는 어디로 해야 하는지, 외부와 연락은 어떻게 누구와 해야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손이 달달달 떨려왔다. 운전대를 부여잡아 보았지만 운전대마저 떨릴 지경이었다. 침착해야 했다. 동생과 아이들을 실은 차를 운전해야 했고, 지도를 검색하고 살펴야 했다. 어디로든 가야 하는 상황에 빠른 결정만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었다. 위험하고 복잡하여 멜버른 사람들도 피한다는 시티 내 운전은 자신이 없어 우선 멜버른 시티 외곽에 있는 교회를 가서 사람들의 도움을 구해 볼 생각이었다. 혹시 집에 불이 붙을 수도 있으니 가스를 잠그고 전기도 모두 내리고 떠나라는 친구의 충고에 눈 앞이 캄캄했다. 극단의 순간에야 인간은 신을 찾는다고 했던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한 치 앞도 모르고 불타는 하늘 아래 던져진 나라는 존재가 너무 나약하게 느껴졌다.



집 앞 주유소에는 피난을 위해 연료를 채우려는 차량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주유소 주변의 불쾌한 적회색 하늘은 시간과 공간을 가늠할 수 없게 하였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불안한 시선은 오갈 데를 모르고 서로 부딪혀 떨어졌다. 이 모든 상황이 곧 다가올 불길한 운명의 복선이 아니길 바랐다. 기름을 가득 넣었다. 언제,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피난 행렬의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았다. 얼추 그 행렬에 가세하여 멜버른 시티로 향했다. 동생은 옆에서 계속 인터넷 뉴스와 알람을 살폈고 아이들은 상황을 주시하느라 늘 있는 작은 다툼이나 장난 조차 하지 않았다.

고속도로는 이미 폐쇄됐고 드문드문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들이 우회로를 알려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욱하고 매큼한 연기들이 주변을 채웠고 하늘은 검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남반구의 3월은 찌는 듯이 더웠고, 연기로 인해 창문을 열 수도 에어컨을 켤 수도 없었다. 어딘가에서 치솟고 있을 산불의 열기와 수온주를 뚫을 듯한 여름의 기운이 차 안을 뒤덮었고 머릿속까지 뒤범벅된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눈꺼풀에 맺혔다. 땀을 따라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이 눈 앞을 가리고 코 끝과 입고리 주변까지 흘러내렸지만 운전대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갈라지고 새어버린 건조한 목소리로 동생에게 머리카락을 넘겨달라고 하면서 얼음 막대처럼 꼿꼿하게 굳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처연해 헛웃음이 나왔다. 신기하게도 그 웃음으로 긴장이 풀리고 곧추 세웠던 허리에 힘이 빠졌다.



천천히 움직이는 차량들이 가득한 길 양 옆의 작은 마을에 아직 미처 떠나지 못한 사람들과 머물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정처 없이 떠나는 우리를 걱정과 부러움과 불안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도로는 까맣게 타버린 예전에 초원이었을 벌판을 지나고 아직도 연기 속 불씨가 까무룩 살아있는 덤불을 비껴가며 다시 연결된 고속도로까지 이어져 있었다. 어디선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와 경적 소리를 뚫고 고속도로로 나왔다. 화염 때문인지, 아니면 타오르는 태양 때문인지 바람마저 숨을 헐떡이게 만들었지만, 부글거리는 차 안의 열기를 식히기에는 충분했다. 뜨뜻 미지근한 바람에 불안과 초조와 긴장감을 어느 정도 날려 보내고 평소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려 교회에 도착했다. 시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교회에서는 아무도 시골 언저리 '부쉬 파이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지속적으로 티브이를 강타하는 브레이킹 뉴스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인지 아무리 우리가 피난을 나왔다고 설명해도 그다지 놀란 모양새가 아니었다. 시내로 차량을 직접 운전하기 겁이 났지만 그렇다고 교회 근처에 숙소를 잡기도 애매했다. 교회 사람들은 '그러게요... 어떻게 하죠? 걱정이네요'를 연발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들에게 뭐 특별한 해결책을 바랐던 건 아니었지만, 겨우 두세 번 교회에 나간 게 다였지만, 어쩐지 홀로 남겨진 우리가 안쓰러워 그들이 얄밉기도 했다.



멜버른 중심 업무지구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훅턴'이라는 우회전(우리와 반대 방향이므로 우리의 좌회전 정도 되겠다) 교통신호가 있다. 우회전을 해야 하는 차량을 굳이 왼쪽 끝으로 유도해서 신호들이 바뀌는 틈에 잽싸게 빙 돌아 우회전을 해야 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교통신호가 그것이다. 게다가 빅토리아 주의 자랑인 트램들은 쉴 새 없이 지나다니고 수많은 차량들과 사람들이 두려운 초보 운전자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아무리 시티 중심이라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수많은 차량 운전자가 안전하게 운전하는 곳이라는 이성과 아무래도 무섭고 살 떨리고 부담스럽다는 감성이 부딪혀 머릿속이 복잡했다. 에라 모르겠다. 구글맵이 나를 안내하리라. 멜버른 시티 내에 숙소를 예약하고 운명의 숙적을 대면하러 떠났다. 길고 복잡한 여정의 끝무렵, 인터넷 게임 스테이지를 하나하나 클리어하고 마지막 단계에 대마왕을 마주 선 게이머의 심정으로 또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익숙했지만 무시무시했던 하늘로 휩싸였던 시골길 위를 달리던 긴장감과는 또 다른 중압감이 어깨에 내려앉았다. 거북이걸음으로, 아니 거북이 운행으로 시티에 다가갔다. 오감이 쉴 새 없이 바빴다. 눈과 귀를 열어 사람과 차와 교통신호와 구글맵까지 커버하고 혹시 모를 위급한 징후까지 감지하지 위해 벌름 거리며 코를 열었다. 긴 여행에 지칠 대로 지친 아이들의 짜증과 노닥거림을 재압하기 위해 끊임없이 입을 놀려 협박과 회유와 사탕발림을 계속했다.

역시 인간승리란 말은 이럴 때 하는 것인가. 나의 오감과 지성과 온갖 잡다한 상식까지 동원된 멜버른 시티로의 초행길 운전은 숙소 주차장을 찾아 다섯 바퀴쯤 주변을 돈 후 안전하게 마무리되었다. 물론 땀과 기름으로 범벅된 얼굴들과 떡지고 산발된 머리카락만이 우리의 긴 여정을 떠올리게 했다. 번잡스럽고 활기 넘치는 도시의 풍경은 작은 시골에서 올라온 우리를 주눅 들게 했지만, 시티의 밤은.......... 아름다웠다.



그 후로도 산불은 일주일 가까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이틀 밤을 시티에 머무르며 호주 체류자에서 관광객 모드로 전환했고, 여행은 불길에 대한 걱정을 잠시 잠재우리만큼 즐거웠다. 이틀 후 다시 복구된 고속도로를 달려 위험을 무릅쓰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근처까지 머물렀던 불길은 소강상태였고, 더 이상의 비상 알람은 없었다. 일주일이 걸려 일상으로 돌아왔고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늘은 타는 듯이 뜨겁고 파랗고 높았다. 이제 하늘은 가을과 겨울을 돌아 다시 여름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작년 10월부터 다시 시작된 산불 시즌에 유례없이 큰 산불이 번져 빅토리아 주 일부와 뉴사우스 웨일스, 퀸즐랜드의 산야와 초원을 태우고 수천만 마리의 야생동물을 죽였다. 갑자기 삭감된 예산 문제를 토론하고, 죽어가는 야생동물들과 적절하지 않은 구호물품을 거부하는 빅토리아 주지사의 모습이 뉴스 화면을 채웠다. 온 세계 사람들이 호주 산불을 걱정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의 가족들이 안위를 물어오자 문득 작년의 짧지만 강렬했던 피난 여행이 떠올랐다. 무엇하나 익숙한 것도 없고 서툴고 긴장되고 진지했던 날들이.......... 오늘도 하늘은 불타 듯 아름다운 노을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7, 14 그리고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