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삶과 호주에서의 삶은 그 지리적 물리적 거리감만큼이나 내 인생에서도 극단적인 전환점이 되었고 그들은 문자 그대로 그 결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쉼으로 대변되는 여행조차 나를 들여다보는 안식의 시간보다는 '갔다 왔다'의 인증을 위한 미션의 하나로, 또 다른 스트레스의 연장으로 여겨졌기에 호주에서의 삶에 대한 나의 궁금증과 기대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하지만 안타깝도록 놀랍게도 무궁한 가능성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호주에서의 일상은 한국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들과 알콩달콩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들을 연출하리라 생각했던 하루는 잔소리로 그 시작을 알렸고, 바쁘게 아이의 스케줄을 따라가며 도시락을 싸고 집안일을 하면서 여기가 한국인가, 호주인가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살림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었다. 어마어마한 사업을 하느라 너무 바쁜 것도 아니었고, 투 잡, 쓰리 잡을 뛰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드문드문 내 손을 거쳐갔던 살림은 엄마의 도움을 받아 안정을 찾고 정착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태생적으로 살림이 맞지 않고, 남성적인 기질이 타고나 운전이며 집 안 이곳저곳을 고치고 손질하는 게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집안 대소사를 진두지휘하거나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화장실 청소에 도리질을 해 대던 나였기에 살림은 그저 맞는 사람이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고 가끔은 설거지 따위로 나의 사회생활을 방해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다.
무튼 아이의 이유식 정도 겨우 내 손으로 만들고 간단한 정리정돈을 하는 수준으로 살림을 하고 청소며 요리는 거의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살아왔던 터라 호주에서의 야심 찬 내 살림은 거의 처음으로 독립하는 사회 초년생의 그것처럼 거의 날 것이었다. 그렇다고 요리며 청소를 동생과 친구에게 맡기고 나는 왕 노릇하며 운전이나 할 수도 없었고, '그까짓 거 하면 되지!'라는 근본 모를 자신감까지 끓어오르던 터라 자신만만하게 살림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툴지만 나이와 연륜은 속이지 못한다는 자신감과 세상 모든 일은 머리를 써야 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오만까지 더해지면서 오만방자한 나의 '오지 라이프'는 비극을 향해 치닫게 되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애들 뒤치다꺼리가 일이 되고, 낙이라고 해봤자 잠시 쉬는 틈에 마시는 롱 블랙커피 한 잔이 전부가 되는 순간...... 사회생활로 다져진 나의 자존감은 한 없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가증스럽게도 주부들의 노고도 사회생활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내가......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집안일 또한 그 자체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며 사회생활을 하는 가족 구성원의 인정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사회적 멘트를 연발해왔던 내가........ 실상은 청소보다는 눈에 보이는 실적을 중요시 여기고 거창한 요리보다 효율적인 무언가를 하는 것이 영양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낯 뜨거운 시간도 잠시 휘몰아치듯 요리와 청소를 헤대면서 나는 그렇게 오지 살림살이에 잠식당해가고 있었다.
매일매일 밀걸레로 드넓은 거실의 먼지를 모아 털어내고, 물걸레대에 걸레를 부착하여 아이들이 전 날 흘려놓은 초콜릿 아이스크림 자국을 찾아 헤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더러워지는 가스레인지 주변을 닦아내고 스테이크에 호주식으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공수해 온 멸치육수 팩을 요리 실패 확률이 높은 나에게 내어 주지 않던 동생과 친구도 물국수를 한다며 육수 팩 두 개를 물에 동동 띄우는 나를 제지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자, '요고요고 살짝 재미지다!' 라는 생각이 번뜩 지나갔다.
모래가 많이 섞여 있는 거실의 먼지를 보고 '아하, 요 녀석들 운동장에서 모래놀이했구나!' 라며 이야기가 그려졌고, 가스레인지 주변은 내 덕분에 늘 깨끗하다는 친구의 칭찬에 어깨를 들썩이며 가열차게 수세미질을 지속했다. 집이라는 공간을 시간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니 모서리, 모서리마다 내 눈을 피해 숨어 지내던 먼지더미들이 눈에 보이고 물걸레질로 미끄러워진 바닥에서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얼룩을 지워낼 정도의 물의 양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 가능해졌다. 얼룩 하나 없는 반짝반짝한 타일 바닥에 어렴풋이 비치는 가구의 모습과 말끔하게 철수세미로 닦아낸 스테인리스 냄비가 새초롬하니 고왔다. 걸레받이를 닦아낸 물티슈에 묻어난 검은 먼지의 자태는 '내가 바로 걸레받이다!!' 라며 그 존재감을 뽐냈고, 물뿌리개와 신문지로 우수수 떨어지던 방충망 틈의 오물들은 '앗! 들켰네!'라며 겸연쩍어했다. 팬트리가 이렇게 넓었던가를 깨닫고, 세탁기 위의 선반은 참 편리하게 잘 만들어졌구나는 알아가며 걸레질로 공간을 채웠다. 물 빠짐이 애매한 샤워부스 바닥의 기울기를 체감하며 타일 틈새를 공략하고 하루 종일 쓸어도 늘 한 가득 모이는 나뭇잎을 원망하며 차고를 정리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하루하루 나를 받아주고 안식을 주는 나의 집을 구석구석 알아가고 공간과 공간을 나의 움직임으로 채워가다 보니 사랑하게 되더라. 그냥 그렇게 거기 '떡'하니 있는 집이 아닌, 바닥과 벽과 지붕으로 햇빛을 막아주고 외로움을 안아주는... 뾰족하면 긁힐세라, 둔탁하면 다칠세라 세심하고 예민하게 존재하는 공간이 집이었다.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고, 과하거나 덜한 부분도 없었다. 무엇하나 허투루 취급하기엔 그 정성과 진심이 너무 큰 공간을 알아가고 가꾸는 일을 나는 그동안 그저 그런 집안일의 일부로 치부하며 무심하게 대해 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허지웅은 '친애하는 나의 적'이라는 책에서 청소를 집이라는 공간을 이해하는 행위이며 청소를 하게 되면 집의 체계나 원리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글을 읽을 때는 참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구 반대편 호주 땅에서 만난 나의 집은 그의 글을 공감하게 했으며 공간의 이해를 넘어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나의 공간을 채우는 행위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장착하고 즐겁게 걸레질을 하는 나를 보고 새로운 진로를 찾은 것 아니냐는 친구의 말에 밀대가 멈칫했다. 그동안 찾지 못해 헤매던 나의 적성이 아닐까, 직업을 잘못 잡았나, 이직을 해볼까, 투잡은 어떨까, 에고에고 우리 집 살림이나 잘하자...... 그래도 취미나 특기란에 청소를 적어봐야지 생각에 다시 밀대가 움직였다. 호주에서 나만의 공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후 다시 돌아온 한국의 나의 안식처는 과연 오늘 반짝반짝하고 있을까? 글쎄.... 궁금하지 않으신가?